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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Dec 20. 2024

<토지> 내 근본을 믿고 사는 사람

스스로 빛나는,

내 근본.


'근본'이란 단어를 스스로에게 비춰 보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자아'나 '나 다움'과는 다르게 ....  타인에 의해 규정짓는 나를 표현하는 단어 같았거든요.

어르신들에게는 족보나 가문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이미 결정된 근본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우리는 타고난 근본때문에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오랜 기간 우리 조상들은 신분제의 틀 자신과 타인의 가치를 가두어 놓고 살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누구는 백정이 되고 노비가 되고, 누구는 양반이 되고 왕족이 되면서 그렇게 내 근본은 타인에 의해 정해져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근본을 바라보는 두 명의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적어도 당시 기준으로 본다면, 이들 둘은 모두  내세울 것없는 근본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한 명은 자신의 근본에 떳떳하고, 또 한명은 자신의 근본 때문에 괴롭습니다.



토지가 품은 문장


<토지> 8권, 마로니에 북스


p.76
"이리 뵈야도 나는 내 근본 믿고 사는 사람, 세상에는 제 근본이 제일이어라우.
지 애비 지에미가 제일 아녀? 개천에 빠졌거나 용상에 자빠졌거나, 하늘 밑에서 땅 위에서 사는 거는 다 마찬가지란 말시.
마찬가지랄 것 같은면은 제 근본이 남만 못한 것 없는 거여."


 '주갑'이라는 떠돌이 사내의 말입니다.

그야말로 근본을 알 수 없는 그는 가족도, 집도, 직업도 없이 산천을 헤매며 그저 닥치는 형편대로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의 거친 말과 행동에 묘하게 뼈가 있어 자꾸 곱씹게 되곤 합니다.



나는 내 근본 믿고 사람 사람,
세상에는 제 근본이 제일이어라우.



무엇이 보잘 것없어 보이는 주갑이를 이렇게 당당하게 하는 걸까요?

그가 믿는 근본은 제 부모라 합니다. 자신의 아버지, 어미님이 제일의 근본.


부모의 직업도, 신분도, 재산도, 명예도 아니고 부모 자체가 내 근본이라는 그의 말에 마음이 머뭅니다.  


생명을 주신 이, 부모가 나의 근본이지 백정이나 노비, 양반이나 임금같은 신분따위가 근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이 아닌, 자신이 결정하고 선택근본으로 자신을 보았기에, 주갑이는 세상에  당당히 맞설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반면, 길상은 자신의 근본을 괴롭게 바라봅니다.  서희 집안의 하인으로 있다가 양반인 서희와 결혼 그는 자신의 근본이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p.141

양반도 아니요 상민도 될 수 없었던 김길상, 남편도 하인도 될 수 없었던 김길상, 부자도 빈자도 될 수 없었던 김길상, 애국도 반역자도 될 수 없었던,  왜 김길상은 허공에 떠 버렸는가?

그것은 서희의 가진 것과 서희의 소망의 무게 탓이다.



양반으로 보일 뿐, 여전히 내면은 하인의 근본에 매여있었던 걸까요?

혼인 후 길상은 자신의 삶을 잃어버렸습니다.

서희의 가진 것을 지키고,  서희 집안을 몰락케한 무리들의 원수를 갚고, 빼앗긴  땅을 되찾는, 그것은 서희의 소망이기도 했기에 결국 서희를 위한 삶이었습니다. 


왜 김길상은 허공에 떠 버렸는가?
그것은 서희의 가진 것과 서희의 소망의 무게 탓이다.


비참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신의 근본을 결정했기에 내 근본이 남과 다를 것이 없다는 당당함으로 상대적인 박탈감을 이겨낸 주갑이와는 달리, 길상은 양반과 혼인하여 얻게 된 유익함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지도 못했고,  주체적인 삶을 살지도 못했기에 자신의 근본에 대한 계속되는 갈등과 분열을 겪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화려하고 잘난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대, 그래서 내면의 단단함이 더 절실해진 시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든 나는 내 근본 믿고 사는 사람, 내 근본이 제일이다!라고 말하던 주갑이의 당당함을 마음에 담아 봅니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토지 한번 읽어볼까?> 1편 연재를 마칩니다 아름답고 설레는 귀한 문장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이렇게 꾹꾹 눌러 담을 수 있는 시간들에 감사했습니다. 내년에도 <토지>와 함꼐 하는 긴 여정을 계속 이어가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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