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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Dec 13. 2024

<토지> 묵을 만치 하고 사는 기이 제일 좋다

그랬이믄 싶다.



부모는 자식에게 어디까지, 얼마만큼을 바랄 수 있는 걸까요?

정해진 바는 없지만,  자식에 대한 기대와 욕심을 전혀 갖지 않고 사는 부모는 없을 것 같습니다.


월선은 무당의 딸로 태어난 탓에  혼인도 못한  살아가지만 마음 깊이 연모하는 남자 용이가 있었습니다.


비록 자신이 낳은 아들은 아니지만 용이의 아들  '홍'이를  생모보다 더 깊은 사랑으로 키웁니다.


 그녀가 암으로 곧 죽음을 맞게 되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가끔씩 정신이 들때면 '홍'이를 찾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월선은 어린 홍이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유언같은 대화를 나눕니다.



토지가 품은 문장 


<토지> 8권, 마로이네북스 p.241


"홍아."
"응."
"니는 후제 커서 이사(*)가 됐이믄 좋겄다."  (*의사)

"공불 많이 해야지 내가 어떻게?"

"그렇구나. 공불 많이 해야겄제? 공부 많이 하는 것도 그리 좋은 거는 아니다.
공부도 할라 카믄 피가 마를 긴께.
그라믄 니는 그만 하동가서 장시를 하는 기이 좋겄다. 베상시, 비단장시 말이다.
난리가 나도 짊어지고 달아나믄은 팔아감시로 굶지는 않을 긴께 안 그렇나? 그런제?"

"옴마는 참, "

"부자도 안 좋을 기고 너무 기찹아도(가난해도) 못 살 기고
그냥저냥 묵을 만치 하고 사는 기이 젤 좋다.
식구들이 화목하고 자식은 서넛 낳아서 나는 똑 그랬이믄, 우리 홍이가 그랬이믄 싶다."



처음 월선이가 홍이에게  '이사(의사)'가 됐음 좋겠다고 말했을때 조금 놀랐습니다.

아마도 최근 우리사회가 휩싸인 의대 열풍 때문이었나 봅니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월선의 대답은 저를 더욱 놀라게 했습니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라는 그녀의 목소리는 참 잔잔했을것이라 느껴집니다.


월선은 공부를 많이 해야한다는 홍이의 말이 어쩌면 의사가 되고 싶지 않는 마음의 표현임을 알아차렸는지도 모릅니다.

기대와 전혀 다른 자녀의 말과 행동을 마주했을 때, 이렇게 말해주는 것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습니다.  대뜸 실망이나 분노, 불안과 걱정 등의 감정이 먼저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자녀의 말을 "인정"해 주는 일은 참 쉽지가 않은것 같습니다.  

"의사되려면 당연히 공부를 많이 해야지!!"

자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가르치기'가 시작되니까요.





그러나 월선은 조용하게 홍이의 말을 인정해 주면서 홍이 편에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렇구나. 공불 많이 해야겄제? 공부 많이 하는 것도 그리 좋은 거는 아니다. 공부도 할라 카믄 피가 마를 긴께."   


그렇게 충분히 홍이의 마음을 받아준 후에야, 그렇다면 차라리 장사꾼이 되기를 바라는  자신의 마음을 조심히 건네보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 자녀교육이나 육아서 보다도 월선의 대화, 말의 흐름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녀의 말을 인정하고, 마음을 이해하고, 그 마음을 품으면서 동시에 부모 자신의 바램을 전달하는 지혜로운 대화법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말에서 월선은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지 않는 삶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귀한 일임을 들려줍니다.


"부자도 안 좋을 기고 너무 기찹아도(가난해도) 못 살 기고

그냥저냥 묵을 만치 하고 사는 기이 젤 좋다.

식구들이 화목하고 자식은 서넛 낳아서 나는 똑 그랬이믄, 우리 홍이가 그랬이믄 싶다."


"그냥저냥 묵을 만치 하고 사는 기에 젤 좋다."

이 얼마나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적당한 삶인가요?


'평범한 것이 젤 좋은 건 뭐람? 억지스러운데??'

또한 어른들이 하는 말이 뭔가에 대한 변명인듯 하여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더 이상 성공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어른들이 자기 위로차람 하는 말로만 들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좀 알겠습니다.

살아보니 돈과 명예는 있다가도 사라지고, 사라지다가도 오는 것인데, 왔다 갔다 할 때의 변덕이 우리를 너무나 휘청이게 합니다.  그 휘청거림이, 인생의 희노애락이 때로는 위태롭고 잔인해서 본래 그 사람을 본성, 영혼을 해치기도 합니다.


마지막 순간이라면, 저 또한 결국은 월선과 같은 바램을 가질 같습니다.


성공의 중심,  피라미드의 높은 곳을 뼈앗기지 않으려 절박하게 살기 보다는 햇살좋은 곳, 흐르는 강물처럼 살아가기를...


평안한 일상이 잔잔하고 평온하게 러가는 그런 삶을 살수 있기를 바랄것 같습니다


마음과 뜻을  다해 심으로 사랑했던 아들, '홍'이에게 그녀가 남긴 막지막 말들을 곱씹어 봅니다.  


부모의 욕심과 이기심을 완전히 버린, 소박하지만 가장 귀한 삶에 대한 문장들을 기억해 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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