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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Dec 16. 2024

<토지> 관두껑에 못을 박아야만

그것이 내 인생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참 묘합니다.

태어나는 순간,  각자의 삶이 시작되지만 그것은 동시에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인생의 몫을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살면서 기를 쓰고 움켜쥐었던 물질, 명예, 그 무엇 하나 갖지 못한 채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태어난 김에 사는 것 치고는 너무 열심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내 몫의 인생은 왜 이리 무거운지, 희미한지, 허망한지 가슴 한 구석이 텅 비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직 제대로 꽉 붙잡은 것도 없는데,  올 한 해도 저만치  달아나 있습니다.  이번에도 어리둥절하게 한 해를 보내는가, 숨 가쁘게 다음 해를 달려야 할까... 마음속은 번잡합니다. 



토지가 품은 문장


<토지> 8권, p.137. 마로니에북스


두 사내는 우두커니 서로를 바라본다.
뾰족한 수가 없다.
힌 해, 두 해 책장 넘기듯 쉽게 가버리고 설마 설마 하며 보낸 세월 배불리 먹은 일 별로 없고,
일 안 하며 놀아본 것도 아니지만 이들 눈앞에는 황혼의 서리가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 문장이 마치 올해 끝자락에 서 있는 제 이야기 같아 조금은 서글펐음을 고백합니다. 


'설마 설마'하며 보낸 세월이 '역시나'였다는 생각 때문일까요?

원하는 만큼 맘껏 욕심내서 쉬어 본 적도, 가져 본 적도,  감히 하던 일을 손 놓아 버린 적도 없는데, 여전히 그만그만하게 살고 있습니다.  허리 때 졸라매듯 열심히 노력했던 시간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두 손 위엔 아무것도 없는 듯 가볍기만 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문장은 '그렇지 않다, 아직은...'이라고 말해 주는 듯합니다.


옛말에 사람이란 관뚜껑에 못을 박아야만 그 사람이 어떻다는 말을 할 수 있다 했는데 그 말이 맞는 말이야. 내 조카딸도 따지고 보면 못살다 간 것도 아닌 성싶네.
그리고 이서방도 복 없단 말은 못 할 것 같아. 

흔히 사람들은 팔자 치레하는 말을 하는데 따지고 볼 것 같은면, 육례를 갖추고 만난 부부라도 필경엔 남남이 아니겠느냐 그거지.

(....)

그러나 만났다간 헤어지고 헤어졌다간 또 만나고 그 끈질긴 인연하고 기구한 세월이 반드시 음,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 맘이 더 굳게 떨어질 수 없게 되었다면은 반드시 박복했다 할 수만도 없을 것 같애."
<토지> 8권, p. 248




관뚜껑에 못을 박아야만 그 사람이 어떻다고 말할 수 있다 하는군요.

긴 세월을 살아오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혜안을 보는 듯한 문장입니다. 


평생 무당 딸이라는 굴레 속에서 외롭게 살다 간 조카딸이지만 누구보다 풍성하고 진심이 오갔던 장례식장을 바라보며 누군가가 이렇게 말해 보는 것입니다.  그동안 베풀며 살았던 덕에 많은 이웃들이 그녀가 떠나는 길에 함께 했고, 진심으로 울어 주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돌아가시고 보니 아지매가 얼마나 우리에게 위로를 누는 사람이었던가 그게 깨달아지는군요. 나도 울적할 땐 그분을 찾아가곤 했었는데, 이젠...... 누글 찾아가서,"


"애기씨도, 아, 아니 최참판댁 그분도 눈물을 흘리시던데, 누구 그거를 생각할 수나 있었겠나. (...)나는 세상에 그분 눈에 눈물이 있다는 건 참말로 이제 생각해본 일이 없었구마" 


만주 벌판 보다 더 차갑고 꽁꽁 얼어붙었던 서희마저도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죽고 나서 받는 칭송? 그거 어디다 쓰려고... 다 소용없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칭송이 내 삶을 의미를 완성해 주는 마침표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이 세상, 혼자 살아온 것도 아니고 함께 하는 사람들, 크고 작은 인연들, 행/불행들 속에서 얽혀 살았으니 그들에게 남긴 것이 또한 내 일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토지>에서 만난 문장 덕에 제 인생의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최소한 오늘의 망친 일 때문에, 올해 부족했던 일 때문에, 당장 내년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내 인생은 이 정도...라고 섣불리 단정 지을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관뚜껑에 못 박기 전'까지는 어떤 것도 마지막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부정적인 말로 성급히 내 삶을 단정 짓지 않으려 합니다. 

번듯하게 해낸 일도 없이 책장 넘기듯 쉽게 시간만 버렸다고 자책하려 했던 마음 또한 거두어 봅니다.

하지만 한 번의 시험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입시시험과는 달라서 우리 인생은 지금 당장 보이는 결과가 전부가 아니니 감사한 일입니다.


일희일비하며 오늘 찍은 마침표 때문에 휘청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제 관뚜껑이 덮일 때 써지는 문장,  문장이 진정한 내 인생일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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