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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Dec 09. 2024

<토지> 하나하나의 인생이 다 기차다.

당신의 이야기책



세월이 쌓이면서 달라지는 점 중의 하나는 평범하게 보였던 것들이 평범하지 않게 보일 때가 종종 생긴다는 점입니다.




저의 경우 어떤 사람들의 "무리"를 보았을 때가 그러합니다.

등원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유치원생들 , 하교 시간에 교문을 우르르 몰려나오는 학생들, 훈련 중인 젊은 군인들의 모습....  

이런 우르르~ 모인 무리를 볼 때면 그저 말 그대로 "군집"이구나, 슬쩍 돌아보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이런 군집가운데 각자의 얼굴과 몸짓이 따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머리 위에 색색의 풍선이 떠오르는 것처럼, 각자 한 명, 한 명이 자기의 우주를, 꿈을 품고 있는 귀한 존재로도 보입니다. 현재 사람의 상태가 어떠하든 간에,  이 세상에서 존재 자체가 '오롯하다' 느껴지곤 합니다.

(오롯하다 : 모자람이 없이 온전한다)




토지가 품은 문장


<토지> 8권, p.59, 마로니에북스


사람들 말이, 얘기책은 거짓말이지마는 노래는 거짓말 아니라고,
아니지이,
얘기책 그게 다 참말인 기라.
그러고 보니 우리가 모두 얘기책 속에서 살고 있다 안 할 수 없구먼.

공노인은 두메며 길상이며 월선이 봉순이 모두 기찬 얘기 책 속의 인물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하나의 인생이 모두 다 기차다.

'뜻대로 안 되는 것을 뜻대로 살아볼려니까 피투성이가 되는게야.
인간의 인연같이 무서운 거이 어디 있나.'



일기를 쓸 때면, 더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오늘 하루가 나의 한 페이지"라는 사실.


하루를 살았으니, 이렇게 또 한 페이지가 쓰이는구나.

이 페이지들이 쌓이면, 내 인생이 책 한 권으로 남는 셈이겠구나...

아마 방금 읽은 <토지>에서 말한 이야기책이 이런 것인가 봅니다.

누군가 읽어 보고 싶을 정도로 흥미로울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혹은 그저 서가 한쪽에 꽂혀 있을 수도 있는 그런 책...




비슷한 나이에 이미 베스트셀러가 된 인생책을 가진 지인도, 친구도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내 이야기들은 참 재미도 없고, 누구나가 겪는 일처럼 밋밋하고 드라마틱하지도 않아서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이야기책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맘대로 멈출 수는 없어서, 생각 없이 하루를 살아도 모든 페이지는 차곡차곡 쌓입니다.  마음에 안 든다고 찢어버릴 수도 없고, 쓰기 싫다고 내 맘대로 안 쓸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토지> 속 공노인의 말은 저에게도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너의 인생도 기가 막힌 이야기책이다.



그렇게 불편하게 버티는 날이면,  감사한 선물처럼 이 문장이 제 손에 놓였으면 좋겠습니다.



얘기책, 그게 다 참말인기라...

하나하나의 인생이 모두 다 기차다.




제 인생의 이야기는 제 뜻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그 스토리를 어떤 문장으로 적을 것인가는 제 몫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매일 아침을 기쁘고 설레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일,

매일 저녁을 감사하는 문장으로 마무리하는 일.. 이런 것들은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임에 또한 감사합니다.


누군가가 불쑥 제 인생 얘기책의 어떤 페이지를 넘기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내용이도록, 담담히 공감하며 밑줄 하나 정도는 그을 수 있는 이야기였으면 좋겠습니다.


온전한 의미를 가진 문장으로 정성스레 오늘 하루의 페이지를 꾹꾹 적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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