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더 잘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제게는 아들이 그러했습니다.
이렇게 멀리 있고, 한 달에 한 번 나올 수 있는 기숙학교를 다니게 될 것이라
생각을 못했기에 너무 일찍 아들과 떨어져 있게 되었습니다.
<영재교 보낸 엄마의 뒤늦은 후회>는 이 덕분에 시작된 것 같습니다.
아들이 보이지 않자,
저는 아들의 모습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통해 제 모습 또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바라봄의 장면들이 아프고, 아팠고
자녀를 키우는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네요.
19회까지 글 하나하나가 모두 실제 저와 아들이 겪은 상황들이기에
다시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마치 영화의 한 장면들처럼 보였고,
아들과 제가 등장인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아들의 눈빛과 마음과 작은 행동들,
그때는 볼 수 없었던 나의 얼굴과, 목소리, 행동, 진짜 속마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시선에서는 등장인물의 이런 것들이 보이겠지요.
마치 그런 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연재 글을 마치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좀 더 사랑해 줄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많은 것들에 고맙다고 말해 줄 것을...
결국은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랑한다 생각했던 그 많은 마음과 생각들이 대부분은
진짜 아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나"를 사랑했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
나의 욕심과 이기심으로부터 아이가 이런 모습이 되기를 갈망했던
내 욕망을 사랑했다는 사실.
이것은 저를 가장 괴롭게 합니다.
그리고 내 품에서 내가 아이를 전적으로, 온전히 키울 수 있는 시간이
고작 15년밖에 없었구나라는 점이었습니다.
100세 시대라지만, 저와 아이의 인생 80세 중 고작 15년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아이에게도 저에게도 그렇게 몸과 마음의 밀착된 관계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나를 전적으로 의존하고 온 힘을 다해 사랑을 표현하려 했던 작은 아이를 보며
기쁘고 행복하기도 했지만, 힘들다고 징징대고, 왜 나한테만 이럴까 투덜댔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귀한 시간들이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죽음의 목전에 닿았을 때,
자녀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최후의 한 마디는 무엇일까요?
너는 꼭 하버드 대학을 가거라?
나사(NASA)에 꼭 취직해서 나라를 대표하는 훌륭한 과학자가 되어라?
니 인생에 최대한 높은 곳까지 올라가 보아라, 성공을 경험해 보아라?
모두 부질없게 생각됩니다.
저는 이 말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J야, 고맙다...
....
엄마 아들이라 고마왔다. 사랑한다.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는데, 제 마지막 남은 숨을 사용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이 현실에서 이렇게 못할 이유가 있을까요?
무엇보다 우선으로 이런 말을 해 주고, 진심으로 내 욕심이 아닌, 그 아이를 사랑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부모가 되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처음과 끝이 있는 사건이 아니라,
언제나 현재진행형의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한 인격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진정한 감사와 사랑이 무엇인가를 배우는
그런 과정 말입니다.
연재글을 마친 후에도 저의 후회와 반성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부모로서, 어른으로서의 진심 어린 성장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저의 부끄러운 고백이
자녀분과의 행복한 성장을 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진심으로 기쁘겠습니다.
풀꽃 1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