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세우는 힘
작은 루틴이라 썼다가
'작고, 사소한' 루틴이라 고쳐 적었다.
아들은 몇 가지 자신의 관심있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좋게 말해 자유롭고, 나쁘게 말해 제멋대로, 예측불가였다.
'좋은 부모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부모'라는
누군가의 조언에 따라 나는 아들의 이런 성향이 일상의 꾸준함을 해칠세라
좋은 습관을 가지게 해 주려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많이 했던 것 같다.
특히 기상시간이 그랬다.
남편은 전형적인 올빼미형이고, 나는 전형적인 새벽형이라 내 입장에서 올빼미형은 일상의 시간 대비 아웃풋에 대한 가성비가 매우 떨어져 보였다.
때문에 아들은 새벽형까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올빼미형은 만들지 않으려고
취침시간과 기상시간을 정해놓고 습관으로 만들어 주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
결과는 허사였다.
어렸을 때는 그나마 반강제적으로 끌려 오는 듯 했으나,
사춘기를 전후해서는 그동안의 내 노력은 무엇이었나 싶게
모래성같이 사라져가는게 보였다.
습관 vs 루틴
예상보다 빨랐던 아들의 독립을 지켜보면서
의도했던 많은 습관들이 아니라, 단 한 가지라도 자신만의 '루틴'을 갖도록 해 주신 못한 것을 후회한다.
나 또한 일상을 살면서 많은 상황에 일상이 흔들린다.
감정이 요동치는 날은 모닝콜이 들려도, 내 슬픔에 파묻혀 이불을 걷어내지 못한다.
무력해지는 날엔 집안 일은 물론이고 꼼짝도 하고 싶지 않다.
괜시리 가만히 내 옆에 있는 책들, 글쓰기에도 심통이 난다.
'글은 써서 뭐하게?' '책이 지금 상황을 해결해 줄 건가?' 등등
그런데, 이런 흔들리는 일상을 붙잡아 주는 것이 루틴이다.
요동치고, 땅 속으로 꺼져도 어떻게든 나를 하드캐리해 주는 무엇.
그리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기상하는 일.
혹은 일어나서 이불을 정리하는 일.
혹은 하루 20분 운동 하는 일.
혹은 하루 20분 책을 읽는 일, 최소 3줄 글을 쓰는 일.
혹은 매일 달걀 1개과 견과류 한 줌을 먹는 일 등등.
매일 달걀 1개와 견과류 한 줌 먹는 루틴이 무기력에서 일으켜 줄 수 있는가?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 작고 사소한 루틴이 내게 '보통의 일상을 살았다'는 성공의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흔들리고 쓰러질 것 같지만,
최소한 내가 쓰러지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달걀 1개와 견과류 한 줌을 먹었다는 것이 말이다.
이번 주 아들은 중간고사를 끝내고 기숙사에서 돌아왔다.
힘든 시험을 마친 해방감도 있었겠지만 시험이 끝난 이후 그렇게 열정을 쏟던 연구과제에 대한 의욕이 오히려 사라진것 같다고 한다.
일종의 번아웃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학기초부터 연구과제를 세팅하고, 여러 교내활동이며 클럽, 운동부 등등의 많은 일들이 몰아쳤으니...
어떤 날 하루는 완전히 일상을 놓아버렸다고 말하는 아들의 말에
마음이 쿵, 내려 앉는 듯했다.
이 기간이 길어지면 어쩌나, 도와줄 부모도 가까이 없는데 혼자서 이런 상태를 어떻게 이겨낼까?
염려도 되었다.
"하루를 완전히 놓아버리는 않게 잡아주는 일"
나는 루틴의 역할을 떠올렸다.
루틴이 습관과는 다른 이유.
습관은 우리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효율적인 패턴이라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여 준다.
그런데 루틴은 내가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패턴이다.
습관과 비슷한 경계에 있지만, 내 의식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그래서 이것을 지켰을 때, 작은 성공을 체험할 수 있다.
루틴을 지킨다는 것은 자기 존중감을 쌓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하루를 놓아 버리고 싶을 때,
아들에게 지켜야할 루틴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힘들지만 보통의 일상에서 아주 벗어나지는 않았기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더 쉽지 않았을까?...
눈감고도 반복적으로 하게 되는 습관대신에
작지만, 사소한 것이라도 "자신만의 루틴"을 가지도록 도와주었다면
이러한 흔들림을 스스로 지켜내기에도 조금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마음이 아팠다.
<선배엄마가 후배엄마 에게>
'루틴'은 매우 중요한 성공요인 중 하나로 거의 모든 자기계발서에서 언급됩니다.
그런데 제가 이 루틴을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이것의 중요성을 미쳐 깨닫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루틴을 꾸준히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절대 큰 것으로 시작해선 안 되더군요.
저는 처음 매일 5시 기상, 성경 1장과 글쓰기 1페이지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기에 이것조차 꽤 컸습니다.
그래서 지키지 못한 날은 자신에 대한 실망감도 크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 5절, 글쓰기 5줄로 (이름을 붙이니 효과가 좋았습니다^^ '5-5 루틴')
줄였고,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단위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하루가 엉망인것 처럼 보여도, 이것을 지킨 하루는 최악은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지킨 나는 아주 절망은 아니었습니다.
루틴이 주는 자기 효능감, 자기 존중감이 있었습니다.
자녀들과도 '루틴'의 중요성을 함께 이야기도 해 보고,
지킬 수 있는 루틴을 만들어 가 보는 경험을 해 봐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영재교나 특목고같은 기숙학교 생활에서 자신의 루틴이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점이라 생각됩니다.
겉으론 세고 강해보여도, 아직은 미성년자이고 마음도 약합니다.
그래서 흔들림과 유혹에 쉽게 쓰러질 수 있는 나이구요.
부모가 곁에서 강제로라도 잡아줄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덜 흔들릴 수 있게, 흔들리더라도 아주 쓰러지지는 않도록
자신을 붙잡을 수 있는 무기 하나쯤은 꼭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