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心 의 색, 無心의 색
비가 오는 날 지하철 안은 다소 좀 심란하다.
비에 젖은 우산들, 사람들 사이에서 내 몸이 젖지 않을 공간을 찾아야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순환역에 닿자 그 많던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고, 순식간에 드넓은 공간이 드러났다.
휴우~~~.....
그제야 자리에 앉아 한숨 돌리던 나는 내 바로 앞에 앉은 승객,
세상에서 가장 단아한 자태로 앉아있던 그녀를 바라볼 수 있었다.
화장기 전혀 없이도 맑은 피부 위에 이목구비가 반듯하게 놓인 모습으로 그녀는
책을 읽고 있었다. 언뜻 보이는 제목을 보니 "인생 피정"이라는 책이다.
왠지 모르게 나는 핸드폰 메모장에 <인생피정>이라 메모를 했다.
말갛게 표정 없이 책을 읽고 있는 그녀가 너무나 앳되었기 때문일까?
'저 수녀님에게도 엄마가 있겠지...'
수녀인 딸을 보는 엄마의 마음에 짠해진 나는
이내 그녀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회색빛 수녀복을 보자 갑자기 울컥해졌다.
회색옷뿐만이 아니다. 검은색 크로스백을 메고, 또 회색 보부상 가방을 지니고 있다.
그녀의 작은 발에 신겨진 신발 또한 회색빛 굽이 전혀 없는 운동화이다.
그녀가 무채색인 것이 왜 그다지도 슬프게 느껴졌을까?...
무채색은 색감과 채도가 없이 '명도'만 있는 색깔이다.
색감과 채도가 없다는 것은 색상의 다채로움은 전혀 없이 검정과 흰색, 그리고 그 중간의 무수한 회색 덩어리들을 의미한다. 무채색이 유일하게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것은 명도의 조절뿐이다.
나를 슬프게 한 이유는 이 점이었던 것 같다.
저렇게도 맑고 앳된 나이.
그 자체만으로도 화려한 색감으로 빛나는 청춘의 나이에
모든 밝고 화려한 빛깔을 버리고 오직 무채색의 밝거나 어둡거나의 삶을 살고 있을 그녀.
어쩌면 이것은 내 착각이고 오지랖일지도 모른다.
신과 인간에 대한 벅찬 소명의식과 나름의 강한 열정으로
그녀는 누구보다 뜨거운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삶이 아무리 눈부시게 밝아 높은 명도를 가졌다 해도
무채색의 명도는 나를 슬프게 했다.
더 정확하게는 그녀의 무채색이 아니라,
무채색의 삶을 살던 나에 대한 기억 때문에 슬펐다.
나 또한 그리 살던 시간이 있었다.
내 속에 웅크리고 있던 자아가 온통 회색빛 덩어리로만 느껴지던 시절이.
조금은 더 밝을 때가, 조금은 더 어두울 때가 있었을 뿐,
나는 어디에 있든지 모든 색깔에 묻혀 내 색깔이 드러나지 않기를 스스로 바랬다.
어떤 희로애락 앞에서도, 바뀌는 계절 앞에서도 내 마음은 그저 시큰둥하기만 했다.
無心.
마음을 잃어버린, 무채색의 삶이었다.
삶에 색감을 가지게 되는 것은 나를 사랑하기 시작할 때이다.
평범한 보통의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닫기 시작할 때이다.
나를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도 내 시간을 오롯이 사용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임을 인정하기 시작할 때이다.
내 삶에 밝고 따뜻한 햇살을 느끼면서 내 삶도 빛을 받아 여러 가지 색깔로 변하곤 했다.
어떤 희로애락 앞에서도 시큰둥하고 무심했던 가슴이 기쁘고 설레고, 화나고, 슬프고
놀라고 분노하고, 사랑하고 질투하고... 그 모든 감정들로 살아 움직일 때의 놀라움이란!
삶이 주는 변화와 그 다채로운 색깔들이 그저 감사하게 느껴졌다.
有心.
마음이 살아있는 삶, 유채색의 삶이었다.
오늘따라 회색빛 하늘과 공기로 가득했던 하루, 마침 또 만난 회색빛 수녀님 덕분일까?
나는 내 삶의 색감을 들여다본다.
어느새 내 일상이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한 감사와 감탄을 잃어버리고
기계적인 반복, 지루함으로 불평하고 있지는 않은지.
무채색의 어두운 명도가 드리워지고 있는지 않은지.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에서 보석 같은 기쁨과 가슴 뛰는 감정을 건져내며
다채로운 색감을 드러내는 유채색의 삶을 살고 있는지 말이다.
이렇듯 온통 회색 빛인 오늘 하루에도 내 삶의 색을 찾으려는 걸 보니,
적어도 아직은 유채색의 스펙트럼을 잃지 않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