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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라 무덤의 비밀

고고학 발굴의 현장을 여러분의 안방으로 모셔다 드립니다.

by 책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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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도서와 영화를 전문으로 리뷰하는 책거미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대상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인 <사카라 무덤의 비밀(Secrets of the Saqqara Tomb)>입니다. 알고 보면, 넷플릭스에는 드라마나 영화 이외에도 볼 만한 다큐멘터리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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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문명의 유구한 역사를 요약한 짤


제가 이 다큐를 접하게 된 계기는 최근 설민석 강사가 진행하는 <벌거벗은 세계사: 이집트 편>을 시청하고 난 뒤에 이집트 역사에 대해 다시금 흥미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집트라는 시공간적 배경은 누구에게나 모험과 숨겨진 비밀, 신비로움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물론 영화나 다큐,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대중매체에서 한 번쯤 다루었을 소재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인류사적으로도 5000년 이상 존속한 문명이라는 점에서 더 경이롭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많은 고고학자들을 매료시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다큐의 공간적 배경은 사카라(Saqqara)에 위치한 부바스테이온(Bubasteion) 네크로폴리스 유적지입니다.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로부터 30km 남쪽에 위치한 거대한 매장지이죠. 여전히 수많은 비밀들을 간직한 채 잠들어 있는 고고학의 요람과도 같은 땅입니다. 시간적 배경은 2019년 3월로, 라마단(이슬람이 이집트 종교의 9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을 6주 앞둔 시점입니다. 라마단 기간에는 발굴 작업을 할 수 없기에 발굴단은 촉박한 기간 내에 의미 있는 발굴 성과를 거둬야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꽤나 흥미로운 배경 설정이라 어떻게 흘러갈 지 초반부터 기대됩니다.


screencapture-netflix-watch-81064069-2020-12-30-11_59_41.png 와흐티에 무덤의 석상들


2018년 봄부터 발굴하기 시작한 유적지에서 와흐티에(Wahtye)의 무덤을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 와흐티에 라는 인물의 정체는 무엇인지, 왜 이 무덤을 만든 것인지를 밝혀내야 하는 것이 발굴단에게 주어진 임무입니다. 유적지에서 출토된 미이라와 부장품, 유골 등을 바탕으로 이 무덤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발굴작업을 하는 인부 및 감독자의 역할과 작업과정들을 보면 흡사 건설현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만, 고고학 분야의 다양한 학자들의 참여를 통해 미스테리가 하나 둘씩 풀려나간다는 점에서 색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의 단서를 통해 어떤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해나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다가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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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작업은 순전히 인간의 노동력에 의존합니다.



조사 결과, 와흐티에는 당대 이집트의 최고위 사제계급이었던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의 무덤 곳곳에서 발견되는 그의 이름과 수많은 조각상을 통해서 에고이스트적 기질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유추해내죠. 내세보다 사후세계에서 화려한 영생을 누리고자 하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바람이 드러나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이 무덤에서 중요한 의문점을 발견하고 마는데요, 모종의 '음모의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screencapture-netflix-watch-81064069-2020-12-30-11_58_21.png 과연 그들이 발견한 사실은 무엇일까요?



이어 학자들은 중요한 발견하게 되는데, 벽화에 그려진 인물이 와흐티에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어쩌면 이 무덤이 도둑맞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정확한 정황은 파악할 수 없지만 그동안 알아낸 단서를 가지고 여러 가지 있을 법한 가설들을 제시합니다. 이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흥미롭기에 영상을 직접 시청하면서 함께 단서를 따라가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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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있어, 이 다큐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바로 고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의구심이 해소되는 순간을 목도한 것이었습니다. 미지의 유물을 발견하고 그 정체를 알게 된 순간, 조각조각 따로 떨어져 있던 조각상을 하나로 맞추어 완성한 그 순간에서 오는 희열들이 시청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보고 있던 저마저 입꼬리가 함께 올라가더군요. 이 순간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만 하더라도 다큐를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지 않을까요?


한편으로는, 이 다큐를 통해 실제 발굴작업에 임하는 현장 인부들의 작업과정과 그들의 삶의 편린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로서의 면모나, 직접 죽음의 순간과 마주해야 하는 직업인으로서의 태도도 드러납니다. 이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사용했던 도구들과 별반 다를바 없는 장비들로 지금도 유물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3대째 발굴업을 가업으로 삼고자 하는 부자지간의 모습도 인상에 남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유적발굴이 삶 그 자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screencapture-netflix-watch-81064069-2020-12-30-12_19_58.png 발굴업을 생계로 이어가는 아버지 가리브와 그의 아들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과 고고학 지식의 축적으로 인해 오늘날에는 유골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사인을 알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유골의 주인이 어떠한 삶을 살았을지 추정도 가능한 수준이죠. 생전에 어떤 질병을 앓았는지, 체구는 어느 정도였으며, 어떠한 장애를 지니고 살았는지 등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현대 고고학이 어떤 기술을 이용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진행되는지 간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알아낸 정보들은 고고학 지식으로 축적되고 고대인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혀줍니다. 영화 속에서 전문가들은 단순히 유물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그것이 설명하는 정보에 더 큰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활양식과 죽음을 대하는 방식 등을 미루어 알 수 있다는 것이죠. 와흐티에의 무덤에서는 어린 아이를 비롯한 성인의 유골을 발굴해 그들의 사인을 추적해 나갑니다.


screencapture-netflix-watch-81064069-2020-12-30-12_25_58.png 고고학자들은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과거를 들여다 봅니다.


라마단 기일이 점점 다가오는 가운데 총 4개의 갱도 중 3개의 갱도를 파냈지만 기대했던 만큼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합니다. 마지막 갱도 발굴을 앞두고 여전히 와흐티에의 묘실은 발견되지 않았죠. 점점 현장 책임자와 작업 인부들간의 대화 속에서 초조함이 뭍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도중, 사흘전 외부에서 발견한 석상 조각들이 원래 하나의 석상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복원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힘입은 덕분인지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인부들은 긴장감 속에서 마지막 갱도를 파헤쳐 나갑니다. 과연 이들은 와흐티에의 묘실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screencapture-netflix-watch-81064069-2020-12-30-12_38_59.png 라마단을 한 주 앞둔 시점, 이제는 발굴 현장을 정리해야만 합니다.


라마단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발굴사업을 총책임지는 와지리 박사(고고학 최고위 사무총장)로부터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더 이상 정부의 지원예산을 받을 수 없어서 발굴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소식입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동안 발굴한 유물들을 저장고로 옮기기 시작하는 인부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과연 현장에 있던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든 사건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직접 영상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영상을 다 시청하고 나서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다큐라는 측면에서 사실 그대로의 기록으로서 충실하고, 영화적인 호흡을 통해 재미도 갖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와흐티에 무덤의 발견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 여기에 담긴 미스터리를 새로운 인물들의 등장과 함께 풀어나갑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이집트의 고고학 발굴 현장을 경험할 수 있고, 이집트 사람들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유구한 이집트 역사가 갖는 인류사적 의미를 차치하고서라도 가장 현실적인 미스테리물이라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합니다. 지식을 함께 쌓아나갈 수 있다는 것은 덤입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H.카(Edward Hallett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저는 이 다큐를 보고 난 후에 저 표현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말미에서도 고대인과 우리들의 삶의 본질적인 모습은 다르지 않다고 언급됩니다. 그들이 남긴 단서들을 토대로 하나씩 파헤치다보면 결국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고민과 아픔을 겪고 살았다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잔재를 통해 과거를 들여다보고 우리의 현재를 비춰볼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준다는 점에 고고학의 매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도 이번 기회를 빌어, 넷플릭스에서 <사카라 비밀의 무덤>을 통해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리뷰어 책거미였습니다.



책거미의 추천

1. 사카라 유적지 발굴 뉴스 알아보기(BBC 뉴스 같은 곳에서 최근까지도 기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2. 게임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에서 제공하는 고대 이집트 '디스커버리 투어' 콘텐츠를 이용하기

3. 유튜브에 있는 관련 영상들을 찾아보기

https://youtu.be/y1Uy5ThFT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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