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를 찾다.
내가 아이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던 건 꽤 시간이 지난 후였다. 우리 아이는 엄마를 참 좋아했고, 혼자 있는걸 싫어하고, 어두운게 무섭고, 잠이 예민했던 아이라 초등학교 중학년 까지도 나랑 같이 잤다.
학교에 다녀와서도 집에 엄마가 없는걸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가 엄마가 집에 있는 걸 원하니 나도 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시간이 흘렀다.
요즘 아이들은 사춘기가 중학생이 되어 오지 않는다. 그 이전에 미리 부릉부릉 발동을 걸다 고학년이 되면 빵 터트리는것 같다. 나의 아이 경우가 그랬다.
고학년이 되면서 아이의 눈빛이 달라지더니 자기 혼자 큰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사춘기는 그런 것이었다. 내가 두번째로 길을 잃었던 순간이었다.
나는 경력단절이라는 올가미에 묶여서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무슨일을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나의 마음에 찾아온 건 두려움이었다.
그런 나에게 학교 안내문으로 초등학교 봉사자 모임 교육이 보였다. 지역 교육청 주관이었고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거였다.
그 해에 교육을 위해 모집을 했던 건 전래놀이와 동화구연이었다. 두가지가 다 관심이 있었지만 선택을 해야 한다면 동화구연이었다.
교육이 정말 재미있었다. 오랫만에 내가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나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교육날 나의 두려움, 걱정을 공에 적어서 던지는 활동이 있었다. 내가 바라는 일도 다른 공에 적어두고 발표를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경력단절, 내가 무엇을 할지 두렵다는 걸 적었다. 그리고 제 4의 인생을 시작하고 싶다고 적었다. 학생때의 나, 청년때의 나, 육아를 하면서의 나를 거쳐와 이제 다시 나의 삶을 시작하고 싶다고 적었다.
말 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은 진리다. 난 동화구연가로 초등학교 봉사를 다녔고, 그 자리가 내 자리구나 싶었다. 이력서를 작성하여 넣을 수 있는 곳은 다 넣었다.
그리고 난 정말 내 자리를 찾았다. 그림책으로 하브루타 독서, 책놀이, 토론, 인형극 수업을 하는 강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