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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추억을 쌓아가다.

by 여울

아빠랑 한강 시민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공놀이를 하고 꽃을 구경했어요. 날씨가 좋은 날에는 얕은 강가에 텐트를 치고 다슬기도 잡고, 고기를 구워 먹었어요. 너무 더운 여름에는 가까운 계곡에 발을 담그고 아빠가 주워주는 도토리로 공기놀이도 했어요. 나뭇잎에 도토리 올려놓고 할아버지와 손녀는 소꿉놀이도 했어요. 집 뒷산 약수터로 산책겸 운동겸 등산도 했어요. 단풍이 고운 가을에는 화담숲으로 동구릉으로 단풍 구경을 다녀왔어요. 산정호수 둘레를 함께 걸으며 돌담병원 촬영장 앞에서 사진도 찍었어요. 언제 가보겠나 싶어 가족이 다 함께 청와대 구경도 다녀왔어요. 양귀비 꽃이 예쁘게 피었다는 물의 정원도 다녀왔어요.


함께 싸온 음식을 나눠먹고 쉬어가는 시간이 좋았어요.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담았어요. 우리에게 주어진 기적과 같은 시간들을 갈 수 있는 곳에 기회가 될 때마다 다녀왔어요. 그래도 아쉬운 건 아직 함께 다녀오고 싶은 곳이 더 많고, 아직은 함께 하고 싶은게 더 많은, 아빠가 너무 그리운 딸입니다.


방사선 치료로 아빠 목소리가 변해버렸지만, 그 목소리마저 들을 수 없는 순간이 온다는 걸 너무나 많이 느꼈기에 아빠 목소리도 많이 담았어요.


삶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것, 아빠의 마지막 시간을 준비하면서 매 순간 감사하는 마음이었어요. 부모님을 뵙고 돌아가는 시간이면 이렇게 보고 가서 다음이 아빠를 병실에서 보면 어떻하지 하는 생각을 늘 했던거 같아요. 그만큼 아빠가 가지고 있던 암이 크기가 컸어요. 왼쪽 귀에서 머리 뼈를 닿아 오른쪽 목까지 이어져 있었기에 언제 다시 커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다시 커지게 되면 그 때는 치료를 할 수 없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어요.


마지막일 수도 있는 시간을 아빠는 후회가 없으셨을까요? 조금이라도 건강해지시기 위해 뒷산 약수터에 올라 약수물도 떠오시고 가볍게 등산도 하시던 아빠였어요.


아빠도 그렇게 함께 했던 시간이 소중하셨던 걸까요? 어디를 가자고 하면 부정적인 말 한 마디 없이 그저 즐거워 하시며 따라 나서던 아버지였어요. 가장 먼저 준비하고 쇼파에 앉아 계시던 아빠는 언제나 그 자리에 앉아 계실 것만 같았어요.


아빠와 마지막으로 떠났던 여행지에서도 그렇게 아프셨으면서 좀 걷기가 불편하다는 이야기만 하시고 의자에 앉아있다가 가자고만 하셨을 뿐, 아프다고 짜증 한마디 안하셨던 아빠였어요.


조금만 멍이 들어도 아프고, 조금만 살이 찢어져도 쓰라리고 견디기가 어려운데.. 아빠는 그 고통을 어떻게 견디신 걸까요? 평생을 아빠가 불평을 말하거나 짜증을 내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아빠는 자식들 앞에서 그렇게 본을 보이셨고, 그렇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하시면서 보여주셨어요.


아빠의 흔적이 남아 있는 본가에서, 아이는 지금도 할머니 집에 가면 할아버지가 계실 것 같다고 해요. 아직은 마음에서 아빠를 완전히 보내지 못한... 생채기, 우리는 모두 조금씩 아빠의 흔적을 되밟아 가며 추억하고 있어요. 언제든 같은 자리에서 든든한 울타리 같이 지켜주던 아빠였는데, 이제는 그 울타리가 없어져버린 기분입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청소년이 되도록 나의 시간이 흘러도 아버지 앞에서는 늘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었나봐요. 마음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어느 순간 넘쳐 흐르는 둑처럼 예고없이 울컥울컥 슬픔이 몰려 들어요. 그 슬픔에 끝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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