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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좋아한 아빠

비자림 숲을 걷다

by 여울

우리의 제주도 여행 일정은 숲길을 걸을 수 있는 여행지로 정해졌어요. 에코랜드, 비자림, 절물 자연 휴양림 같은 숲길과 폭포를 볼 수 있는 관광지, 바다를 볼 수 있는 함덕 해수욕장이었어요.


코스가 많이 힘들지 않고 천천히 편안하게 쉼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찾았어요. 사람이 많아도 넓어서 복잡하지 않거나 한적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아빠가 원하고 좋아하는 곳이었어요.


아빠는 그 길 중 비자림숲을 가장 좋아하셨어요. 자연그대로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숲길, 공기도 깨끗하고 숲 향기가 많이 나서 걷는게 힘들지 않으셨대요.


숲 향기 속을 걷고 있다보면 내 몸이 숲과 하나가 되는 느낌.. 가장 제주스럽고 가장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겠다 싶어 선택한 코스였는데 그 길을 아빠도 좋아하셨어요.


아이들은 5세, 6세, 7세로 한참 뛰어다닐 나이였지만 아이들 놀거리 위주로 찾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그 때 아이들도 숲길을 다니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주었어요.


9명이 탈 차를 대여하고, 9명이 쉴 수 있는 숙소를 찾았어요. 아빠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단체가 잘 수 있는 리조트를 찾았고, 큰 차를 렌트해서 함께 움직였어요.


쉽지 않은 인원이었는데, 그 모든것이 짧은 시간안에 착착 진행된 건 지금 생각해도 기적 같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이 모인 간절함이 기적을 일으켰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남편과 제부는 갑작스럽게 휴가를 내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일정 중 주말은 함께 했고, 앞쪽은 제부가 뒤쪽은 남편이 함께 해주었어요.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자 일정을 조율해 준 남편과 제부에게도 고마웠던 시간이었어요. 9인승이었기에 저는 운전을 하기가 어려웠고, 동생은 면허증이 없었기에 남편과 제부가 기꺼이 움직여주지 않았다면 성사되기 어려운 일정이기도 했습니다.


방사선 치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여서 아빠는 피고름이 계속 목 안에 있어서 힘드셨을텐데, 가족 모두가 함께 한 시간이 즐거우셨나봐요. 숲길을 걷는 아빠의 발걸음이 가벼워보였어요. 식사도 드실 수 있는 만큼 많이 드시고, 행복해 보이셨어요.


몸의 병은 마음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그 때 했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함께 한 시간이 아빠의 삶을 이어주었다고 느꼈습니다.


마지막일 수도 있는 가족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눈을 빛내며 조심해야 할 음식을 나열하시는 의사 선생님을 뵙고 그 생각은 확신이 되었습니다.


그 날처럼 길게 일정을 잡아서 여행을 다니진 못했지만, 그 후로 우리 가족은 모든 날이 마지막인 것처럼 시간을 내서 주말에라도 함께 모여 여행을 다녔어요. 가까운 공원에 축제를 가거나 하루 숙소를 잡아서 조금 멀리 나들이를 가거나 기념일을 넘기지 않고 아빠가 움직이기 무리가 되지 않는 거리 안으로 여행을 다녔어요.


세 가족이 다 시간을 맞추기 어려우니, 부모님을 모시고 시간 나는 대로 우리 가족, 동생네 가족이 따로 움직이기도 했어요.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추억 만들기를 후회되지 않을 만큼 함께 나누었어요.


아빠는 완치가 없는 4기 암환자였고, 그 암은 멈춰 있는 거지 없어진 것이 아니었기에 어느 순간에 다시 암이 진행되고 위독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었어요.


그런 시간으로 아빠가 더 오래 우리의 곁에 머물렀던 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주도를 떠나던 날의 마음은 잊을 수가 없었어요. 아이가 어리다고 바쁘다고 핑계대지 말고 좀 더 많이 모시고 다닐걸...


아빠가 아프시고 나서는 일을 하실 수 없으시니 주말을 이용하여 여름에는 계곡, 봄 가을에는 꽃 축제를 다녔어요. 그것으로도 좋았어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었어요. 기적같이 허락된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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