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서 빛을 보는 순간의 기억
아빠는 방사선 치료를 받는 중간에도 진료 시간이 따로 정해졌어요. 그때는 엄마를 모시고 아빠와 함께 진료를 보았어요.
종양내과, 이비인후과, 방사선과.. 그중 직접적인 치료를 받는 방사선과 담당의 선생님이 전담의사라고 하셨어요.
치료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날, 방사선과 진료를 받고 소견을 듣는 날이었어요. 몸의 암 덩어리가 얼마나 줄어들었나 확인을 해주시는데.. 표정이 심각하셨어요.
암 덩어리가 위쪽으로 커져서 위험한 상태라고 하셨어요. 뇌를 막고 있는 뼈까지 닿아서 거의 녹았다고 암이 뇌로 퍼지면 생명을 장담할 수 없는데,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신다고 하셨어요.
아빠가 드시고 싶은 걸 다 드시게 하고, 하고 싶은 걸 다 하게 해드리라고 했어요.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기에, 엄마와 저는 그 날 또 한번 마음이 무너졌어요. 아빠 앞에서는 울지 않았지만 집에 가서 많이 울었어요.
아빠는 절대 죽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으셨는데, 안되는 건가.. 그렇게 힘든 치료를 받으셨는데도 안되는건가 절망감이 들었어요.
그날 진료를 마치고 며칠이 지나서 아빠가 가족이 모두 함께 제주도를 가고 싶다고 하셨어요. 해외 업무를 많이 다니셔서 외국도 많이 가시고, 부모님 모시고 해외여행도 여러번 다녔지만 가족이 모두 함께였던 적은 없었어요.
동생과 함께 넷이 다녀오거나, 제가 아이와 함께 부모님 모시고 다녀오거나 했었어요. 가족 모두가 다녀온건 2박 3일이 최대인 국내 여행이었어요.
그때 여행 일정을 잡은건 정말 온 가족이 손발이 척척 맞고 일사천리로 숙소까지 다 정해진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다들 같은 마음이었어요. 부모님, 저희 부부와 아이, 동생네 부부와 아이들의 대식구 였지만, 숙소부터 일정과 식당까지 분담해서 며칠만에 모든게 정해졌었어요.
계획되어 있던 방사선 치료 일정을 며칠 뒤로 미루고 의사 선생님과 상담 후에 우리 가족은 제주도를 다녀왔어요.
더 먼 해외가 아니라 제주도 였기에 가능했고, 아빠의 방사선 치료가 막바지였기에 가능했고, 하시고 싶은걸 다 해드리라는 생각에서 였을 수도 있지만 이야기가 나오고 며칠 후에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다녀온 후 방사선 치료 받고 방사선과 선생님을 다시 만났을 때, 앞으로 조심해야 할 음식들을 신명나게 이야기해주시던 의사 선생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의 표정도 의사 선생님의 표정과 같았고, 그것은 아빠가 이제 조금은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의미였어요.
저는 그 날을 기적과 같았던 날이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족이 함께했던 시간이 아빠의 의지를 높이고 그로인해 빠른 속도로 뇌를 침범하던 암이 주춤하게 했던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치료의 효과가 다시 나타난 순간이었어요.
4기는 완치가 없다고 했습니다. 치료가 잘 된것이 조금이라도 크기를 줄이고 멈추게 되는 것이라고 했어요. 그 여행이 아빠의 생을 늘려준 건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는 그 날 빛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