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고 싶어한 아빠...
"아빠 응급실이야. 너무 아프다해서 일단 응급실 왔어."
"갑자기? 언제부터 아프셨던 건데?"
"아프다고 한건 벌써 몇 주 되었어. 통원치료해도 계속 아프다고 하고 차도가 없어서 병원 입원해서 찍어봤더니 안좋대."
"그럼 여행 가셨을 때 부터 아프셨던 거야? 왜 말 안했어?"
"말하면 뭐하니. 올해 들어서 아빠가 계속 이상하긴 했어. 넘어지면서 삐끗 한 줄 알았더니 아니라네. 전이가 되고 있었대."
"여행을 가지 말걸."
"아니지, 그때 아니면 또 언제 가니. 후회 안되게 잘 다녀 온거야."
아빠는 그렇게 병원 응급실에 입원했어요. 늘 두려워하던 일이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었어요. 산소호흡기와 링겔이 없이는 안되는 상황이었어요. 잠시 병실에 가셨지만 다시 집중치료실로 돌아와 계속 산소를 공급 받아야 하는.. 혈관이 약해서 팔 속에 링겔을 꽂을 수 있는 관을 시술하고 영양제를 투여해야 했고, 산소의 농도를 올렸다가 내렸다가 조절하지만 산소호흡기를 떼고 있을 수는 없었어요. 아빠는 금식을 처방받았고 위에 이상이 있어서 못드시는게 아니었기에 음식을 못드시고 링겔로 버티고 계시는 것을 보는 것도 안쓰럽고 하루하루 말라가는 것도 안타까웠어요.
병원에서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퇴원을 해야 하는데, 아빠는 집에 돌아올 수는 없었어요. 근처 요양병원에 입원을 하셨지만 그곳에서도 일반 병실에 계실 수는 없었고, 시술을 한 관을 주무시면서 무의식 중에 잡아당겨서 재시술을 하면서 팔도 묶어 놔야 한다는 현실이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입원인걸까? 완치가 없는 암 4기였지만, 5년이 지나면 암환자 기록에서 지워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암이 전이가 된것같지만 처음 암 진단 받을 때처럼 대형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야 확실히 말할 수 있대요. 그런데 아빠는 산소호흡기가 없으면 버틸 수가 없어서 그 검사를 받으러 갈 수도 없었어요.
아빠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쉬고 싶어하셨어요.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셨어요.
"아빠, 힘들지. 호흡이 안되서 산소 호흡기 껴야 한대."
"집에 가고 싶다."
"아빠 집에 가고 싶어? 집에 가고 싶지. 병원에 계속 있으면 얼마나 힘들어. 근데 의사 선생님이 집에 가면 위험하대. 병원에 있어야 한대."
병원 생활이 힘든걸 알았지만,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할 수 없었어요. 잠깐은 호흡기를 떼고 있을 수 있지만, 계속 안쓸수 없는 상황. 집으로 산소 호흡기와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해서 놔주는 기관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고통을 덜 받았으면, 잠시라도 더 곁에 머물러 주셨으면 하는 어쩌면 이기적일 가족의 마음이었어요.
아빠는 병원에서 해를 넘기며 점점 더 안좋아지기만 했어요. 아빠는 계속 상태가 나빠지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막막함과 절망감이 무력하게 만들었어요. 그 무력함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