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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

차원의 틈을 살고 있다.

by 여울

아빠가 옮겨간 호스피스 병원은 호스피스 병실과 일반 병실이 있었어요. 호스피스 병실에 입원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일반 병실... 병명은 다양했지만 그 곳에 입원해 있는 환자분들은 모두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조금 더 편안하게 마지막을 기다리기 위한 또 다른 기다림.


그 병실에서 식사를 못하고 링겔에만 의지하고 있는 분은 우리 아빠 뿐이었어요. 그래서 그런가 더 안쓰럽고 속상하고, 마지막 길 배 고프지 않고 보내드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는 현실이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식사를 못하신다고 식사를 잘 드신다고, 더 빨리 가시고 더 늦게 가시고의 차이는 없었어요. 아빠 면회를 가서 뵈었던 같은 병실의 건너편 침대의 어르신이 다음날 갔을 때는 안계시고 빈 침대인 것을 보며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해졌어요. 그 침대는 또 다른 날이 되면 어느새 다른 어르신이 입원을 하셨어요.


삶을 마무리 짓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걸.. 병원에 있으면서 보았어요. 아빠와 가장 멀리 있는 창가의 침대에 새로 입원하셨던 분은 초등학생 자녀 두명을 둔 가장이었어요. 우리 아이보다 어린 아이들.. 나보다 젊었던 나이의 환자분은 우리 아빠보다 늦게 들어오셔서 며칠 있지 않고 차원을 넘어 갔어요.


아직 어린 아이들이 아빠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얼마나 고될까.. 저 아내분은 마음이 얼마나 막막할까.. 슬픔과 더불어 찾아오는 감정들과 현실들... 나는 아빠인데도 이렇게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인데...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또한 허망한지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가시는 분도 이제 평안하시길.. 남아있는 사람들도 모두 강건해지길.. 아빠가 없이 살아갈 아이들이 용기를 내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그림책 인사에는 그런 마음도 담았어요. 그 때 이미 저 아이들이 용감하고 씩씩하게 절망하지 않고 잘 살아가고, 훗날 다시 아빠를 만났을 때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을 그렸어요.


나와 우리 가족 역시 할 이야기를 많이 만들도록 내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죽음을 기다리는 분들이 두려워하지 않기를.. 남겨진 사람이 절망으로 삶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만날 가족을 생각하며 용감하게 살아가길...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던 아빠를 보면서, 아빠가 이 생을 행복하게 살다 가셨기를.. 죽음 넘어의 삶은 고통도 아픔도 없기를.. 아빠가 두려움과 고통으로 그 길을 가지 않기를 소망하는 마음이었어요.


"아빠 마지막일 수 있다고 인사하고 싶으면 오래."

"아빠 그 정도인거야? 이렇게 추운데... 아빠 추운거 싫어하는데.."


아빠의 생신이 있던 12월을 보내고, 해가 바뀌었어요. 의식이 없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누워만 계시던 아빠한테 새해가 되었다는 인사를 해주며, 아빠를 보고 집으로 돌아갈 때 일어나지는 못하지만 말씀은 못하지만 얼굴을 돌리고 손을 들어 잘가라며 인사를 해 주던 아빠를 기억했어요.


눈을 뜨고 나를 보고 손을 꽉 잡아주고 손을 들어 의사표현을 했던 아빠는.. 내일 또 온다는 말에 잘가라고 손을 들어 인사를 해주던 아빠는 더 이상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해주지 못했어요. 그래도 그 자리에 가면 계시는 아빠는 아직 차원을 넘어가지 않기를 바랬어요. 추운 계절을 지나 따사로운 봄까지만 더 버텨주시길 바랬어요. 하지만 아빠는 더이상 버틸수 없으셨나봐요. 병원에 계시던 엄마의 전화..


남편도 아이도 동생네도 모두 다급하게 병원을 찾았어요. 아직 일반병실이었는데 호스피스 병실을 가는 순번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빠의 마지막이 더 가까워졌어요.


당직 간호사는 아빠의 발끝이 푸르스름해지고 있다고 임종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어요. 평소에 달고 있지 않은 기계가 아빠의 침대 발치에 놓여 있었어요.

믿고 싶지 않았지만 아빠는 그 차원의 틈에서 생에서 멀어지고 사를 향해 조금 더 걸어가고 계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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