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의 임종면회
생에서 멀어지고 죽음의 길로 가까워 지는 삶의 경계...
이제 더 이상 생에의 끈을 잡고 있을 수 없다는 확인을 하는 만남..
이제 곧 삶의 끈을 놓고 경계를 넘어 죽음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확인..
아빠의 임종 면회는 두번이었어요.
일요일 저녁 엄마로부터 전화가 울렸어요. 이때의 우리는 모두 밤 시간에 오는 전화가 굉장히 무서웠던 시기라, 저녁을 다 먹은 늦은 시간의 전화는 마음을 불안하게 했어요.
"아빠 마지막일 수 있다고 인사하고 싶으면 오래."
"아빠 그 정도인거야? 이렇게 추운데... 아빠 추운거 싫어하는데.."
"조금만 더 버티지. 이제 곧 봄인데, 좀 따뜻해지면 가시지."
날씨가 며칠째 풀리지 않고 제일 춥다는 뉴스가 연일 나오던 날, 아빠는 빠르게 마지막을 향해 걷고 있었어요.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병원으로 향했어요.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시간.. 그 사이에 갑자기 가버리시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 날씨가 너무 추워서 이렇게 추울수가 있나 하던... 계절상으로도 가장 추웠던 시기.. 날씨가 좀 풀리면 연락드리려고 아빠 형제들께도 아직 이야기를 안해서 아직 마지막 인사를 한 형제분들도 없는데... 작은아빠들 보고 싶으시다고 했던 아빠가 의식을 잃으시기 전에 한 번 더 만나게 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
믿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순식간에 지나갔어요. 아빠가 봄까지는 계셔주겠지하는 악착같은 기대가 자꾸 미루게 했었던 시간이었어요.
당직 의료진은 아빠의 몸에 죽음의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고, 호흡과 혈압이 떨어져서 올라가지 않고 있던 상황이라 오늘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고, 원하시면 오라고 불렀다고 하셨어요. 가까이 살던 우리는 바로 오고, 춘천에 살고 있던 동생네는 늦게까지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왔어요. 그날 하필 제부가 일이 있어 집에 없었던 상황이라 급하게 온 동생을 남편이 데리러 다녀왔어요.
제부도 못만나고 동생들도 못만나고 아직은 안되는데 생각이 너무나 간절했던 시간이었어요. 아빠 고생많으셨다고, 사랑한다고 아프지 않은 곳에서 이제는 고통도 없이 지내시라고 계속 이야기 했어요. 우리도 여기서 열심히 살다가 아빠 만나러 갈 거라고, 그때 다시 만나자고 계속 이야기 했어요. 위기의 순간은 그날 자정을 넘어가며 안정을 찾으셨어요. 아직 만나지 못하고 인사하지 못한 가족들을 만나고 가시려고 아빠가 한번 더 버티시고 견디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잠시간의 유예지만 그렇게라도 버텨주신 아빠가 고마웠어요. 그 밤을 지나고 바로 사촌 형제들과 작은아빠들께 연락을 했어요. 이모들도 작은아빠,작은 엄마들도 올수있는 사촌들도 아빠의 마지막길 인사를 나누어주었어요. 그래도 몇주더, 조금만 더 계셔주길 바라는 마음...
두번째 임종면회는 아프신 작은아빠를 제외한 모든 가족을 다 만나고 난 다음날이었어요. 그 날은 제부도 함께 있어서 우리는 함께 아빠와 인사를 나누었어요. 그 병실에 아빠보다 늦게왔다 먼저 가신 분들을 보면서 사람의 힘으로 어쩔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걸 다시한번 느끼고, 우리는 다시 고생많으셨다고 감사하다고, 아빠가 우리 지켜줘서 우리가 이렇게 잘 자랄 수 있었다고 계속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그날은 목요일 이었어요. 다음날 오전에 수업이 있었고, 오후에는 새로운 학년을 위한 면접이 있었어요. 저는 아빠가 그렇게 며칠 더 버텨주실거라고 믿었는지.. 믿고 싶었던 건지..
고민이 되었지만 아빠에게 면접 보고 바로 오겠다고 이야기하고 오전 수업을 갔어요. 동생네도 아침에 다시 집으로 돌아갔어요. 첫번째 임종면회처럼 이렇게 위기를 넘기고 다시 며칠을 더 계실거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아빠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셨어요.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엄마에게 온 전화는 아빠가 이 생을 놓고 떠나셨다는 전화였어요. 계속 너무나 추워서 심장까지 얼어버릴 것 같던 날을 지나.. 갑자기 온 봄인듯 따스했던 금요일.. 제 생일을 하루 앞둔 날에 아빠는 무거운 몸을 놓고 차원을 넘어 떠나셨어요.
아빠는 어쩌면 큰 딸의 생일에 떠나고 싶지 않아서 서두르셨나.. 어쩌면 더 버티지 못하고 이제 떠나야겠다... 생각을 하셨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빠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눈을 뜨고 더이상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마지막까지 귀는 들리고, 마지막까지 의식은 있으셨을 아빠이기에 저는 그 사실도 마음이 아팠어요.
아빠가 돌아가신 날은 제 생일 하루 전날... 생일날 제사를 지내지도, 생일날 아빠가 돌아가신 날이라는 기억도 아빠는 주고 싶지 않으셨던 걸까요... 위기를 넘겼다고 했던 날.. 면접이 끝나고 난 이후에 아빠는 그렇게 떠나셨어요.
저는 지금도 어떤것이 옳았는지 모르겠어요. 아빠가 그렇게 가실 줄 알았다면 수업이고 면접이고 가지 않았을 텐데.. 그랬다면 아빠가 떠나는 순간에 엄마만 곁에 두지 않았을 텐데... 돌이킬 수 없는 후회는 종종 제 마음을 흔들고 갑니다.
면접지에서 버스를 타고 바로 간 병원에서, 이제 막 병실에서 옮겨온 아빠가 있었어요. 돌아가신 분들이 잠시 머무시는 공간이래요. 아빠의 침대 위, 창문 사이로 햇살이 비춰 들어왔어요. 적막한 순간을 움직이는 것은 햇살 뿐인 그 공간이 마치 아빠가 빛을 타고 올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아빠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