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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스톤 Oct 22. 2021

생활의 대변자 '와인'을 찾아서

<트렌드 노트 2022> 프롤로그 중에서

식(食)은 생활의 대변자다. 사람들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 관측하는 것은 우리 생활의 변화를 이해하기 가장 좋은 출발점이다. 사람들이 카페에서 3000~4000원 하는 아메리카노를 테 이크아웃해서 먹은 것은 우리 사회가 일상의 여유를 중시하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이었다. 퇴근 후,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즐기 며 맥주 한 캔을 마시는 혼술의 장면은 모든 세대의 로망이 된 ‘자기만의 시간’의 증거다. 2010년부터 소셜 빅데이터를 분석한 이래 한국의 주종은 맥주, 소주, 와인, 막걸리 순이었다. 한 번도 그 순서가 역전된 적이 없다. 하지만 2020년, 우리 모두 잊지 못할 이 해부터 와인이 급상승했고 몇몇 장면에서는 맥주, 소주를 역전했다. 맥주, 소주보다 와인이 높게 나타나는 장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재난지원금 소비처로서. 재난지원금 사용처는 약간의 여윳돈이 생겼을 때 사람들이 어떤 소비를 하는지 보여주었다. 소고기, 이국적 과일과 디저트, 와인 등 약간만 무리하면 언제든 구매할 수 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항목들이 공돈이 생기자 기분 좋게 지르는 소비 품목으로 등장했다. 이렇듯 와인은 알고 있으나 선뜻 손이 가지 않던 주종으로, 고기로 치자면 소고기, 과일로 치자면 애플망고 같은 존재다.


둘째, 파인다이닝 짝꿍으로. 어렵게만 느껴졌던 파인다이닝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익숙한 한식을 와인과 페어링해서 코스 요리 형태로 즐기고, 셰프의 이름을 찾아 레스토랑에 방문한다. 호캉스에 이어 ‘누림의 대중화’ 흐름을 보여주는 파인다이닝, 이때 등장하는 술 역시 소주, 맥주가 아닌 단연 와인이다.


셋째, 연말 파티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며 회사 동료들과 회식을 하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송년회를 하던 연말의 모습이 2020 년 코로나를 기점으로 확연하게 바뀌었다. 핫플 맛집이나 근사한 레스토랑을 예약해 모이던 모습은 배달음식 및 직접 만든 요리를 올린 홈파티로 대체되었다. 삼겹살에 소맥을 말아먹던 모습은 각자 집에서 제철음식(방어, 딸기 등)과 와인을 곁들이는 것으로 변화했다. 예전에도 와인은 연말에 상승하는 술이었지만, 집에서 제철음 식과 함께 소비되는 와인은 2020년에 새롭게 등장한 이래 꾸준히 지속되고 있는 새로운 장면이다.


넷째, 술상스타그램에서. 코로나로 단절된 만남, 줄어든 술자리는 어떤 방법으로 해소되고 있을까? 최근 4년간 우위를 차지하던 ‘술자리’가 2020년 코로나 이후 ‘술상’에 역전되었다. ‘술상’ 언급량은 전년도의 2.1배가 되었다. ‘술상’의 연관어로 소주, 맥주는 감소하고 막걸리, 와인은 증가한다. 많은 사람이 같은 안주와 같은 술 을 먹는 상황이 아니라, 소수가 매일 다른 음식으로 플레이팅할 때 는 다양한 색과 다양한 맛을 지닌 와인이 유리하다.


와인이 소주, 맥주를 역전한 장면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담고 있 다. 크게 두 가지다. 줄어드는 무리의 숫자 다수가 취하기 위해 모일 때는 방바닥, 자기 스스로 굽는, 몇 번이고 추가 주문하는 ‘고깃집’이라는 플랫폼이 최적이다. 하지만 모이는 사람이 줄고 취하는 게 목적이 아닐 때는 만남의 시간도 짧아지 고, 음식도 고급화되어 각자의 취향을 세심하게 배려할 수 있다. 설령 회식이라 해도 참여 인원이 4인 이하라면 채식을 시작한 사원을 배려하여 회식 장소로 한남동 시금치 피자 맛집을 선택하고, 바로 앞 와인숍에서 시금치 피자에 어울리는 스파클링 와인을 구매해 콜키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인원이 10명만 넘어가도 이런 선택은 불가능하다.


와인은 어떤 음식과 함께하는지의 조합이 가장 중요하다. 모이는 무리의 숫자가 줄어들 때 구성원 각자의 취향을 물을 수 있고, 그 취향에 맞게 술을 고를 수 있다. 와인은 개개인의 취향과 상황에 맞 출 수 있는 술이자, 개개인의 취향을 주장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술이다. 쉽고 거대한 정보 공동체 와인은 전형적으로 공부하는 술이다. 와인은 입문하는 술이고, 계속 알아가는 술이고, 알아도 알아도 끝이 없는 술이다. 와인에 관해서는 품종, 색깔, 산미, 원산지를 따진다. 그에 따라 가격대가 천차만별이고, 어울리는 음식 및 선물 가능 여부가 결정된다. 한마디 로 알아야 할 것이 많은 술이다. 그렇다고 해서 접근성이 낮은 술은 아니다. 개개인의 지식은 부족할지라도 간단한 검색만으로 오늘 식사 자리에 적합한 와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와인은 활발하게 추천하고 추천받는 술이다. 개인이 물리적으로 만나는 사람의 숫자는 줄었지만 정보를 주고받는 사람의 숫자는 훨씬 더 크다. 개개인이 100명의 공동체 속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100만 명이 모인 플랫폼에서 개개인이 살아 있는 형태로 움직인다. 무엇이 뜨겠는가? 와인처럼 파도 파도 끝이 없는 영역, ‘뉴비’와 고수가 함께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거대 플랫폼이 뜬다. 그 대표주자가 와인이다.


코로나가 끝나면 달라질까? 다시 많은 인원이 모이고, 지속적으로 공부하기보다 짧게 체험하는 영역이 뜰까? 뉴비와 고수가 함께 정보를 공유하기보다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까? 코로나가 쉽게 끝날 것 같지도 않지만 섬세함은 뭉툭함으로 돌아갈 수 없다. 무리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고, 정보 공동체는 더 쉽고 더 거대해질 것이다. 타깃은 좁게, 호흡은 길게, 방법은 개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올해도 흥미진진한 분석과 데이터로 독자 분들을 찾아왔습니다!

기록, 남자, 현실, 열정, 연대, 과금........ 트렌드가 아닌 더 나은 생각을 나누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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