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1-3 _ 레프 톨스토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그 안에서 결국 나 자신의 삶을 비추는 거울 앞에 서는 일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1–3권은 한 여인의 비극과 한 남자의 성찰을 보여주지만, 그 너머에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선택과 사유의 자리가 숨어 있다.
안나는 사랑을 전부로 삼았다.
남편과의 차갑고 형식적인 관계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감각을 잃고 있었고, 브론스키와의 만남은 새로운 불꽃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그 불꽃은 곧 그녀를 삼키는 불안으로 변했다.
사랑이 전부가 되는 순간, 그것은 해방이 아니라 속박이 된다.
상대의 작은 시선 변화에도 삶 전체가 흔들리고, 불안은 집착으로 바뀌며 사랑은 그녀를 고립과 파국으로 이끌었다.
나 역시 때로는 사랑이나 성취, 인정 같은 것에 내 삶의 무게를 모두 실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것이 흔들리면 나 자신까지 무너지는 두려움을 경험했다.
안나의 모습은 극적인 비극이지만, 그 안에는 내가 가진 연약함의 그림자도 비친다.
레빈은 다른 길을 걸었다. 좌절과 실패를 겪었지만, 그는 불완전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길을 찾으려 했다.
농민들과 함께 흙을 일구며 땀 흘리는 순간, 그는 처음으로 이 모든 노동이 허무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삶의 본질이 있음을 깨닫는다.
삶은 완전해야 의미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완전함을 견디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할 때 삶은 단단해진다.
내 일상도 늘 완벽하지 않다.
불안과 부족함, 때로는 실패가 쌓인다.
그러나 묵묵히 감당하는 작은 성실 속에서 내가 버틸 힘을 얻는다.
레빈의 깨달음은 소설 속의 한 장면을 넘어, 내 삶을 지탱하는 원리와도 닮아 있었다.
죽음 또한 그에게 더 큰 성찰을 열어주었다.
형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그는 삶의 유한성 앞에 섰다. 죽음은 두려움이었지만 동시에 삶을 새롭게 일깨우는 시작이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그는 오히려 지금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더 분명히 묻게 되었다.
나 역시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마주하며 삶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된 순간들이 있었다.
죽음은 늘 두렵지만, 그 앞에서야 비로소 오늘이라는 날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긴 사유 끝에 레빈은 단순하지만 깊은 결론에 도달한다.
“인생의 참된 의미는 선을 행하는 데 있다.”
그가 말하는 선은 위대한 업적이나 거창한 윤리가 아니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일, 맡겨진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태도,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여 주는 작은 선택. 이런 소박한 실천들이 모여 삶을 흔들림 없이 지탱한다.
이 말은 곧 나에게 던져진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 어떤 작은 선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성취나 열정의 불꽃은 쉽게 꺼질 수 있지만, 작은 선의 행위는 내 삶을 끝까지 지탱하는 뿌리가 된다.
[안나 카레니나] 전반부는 결국 두 갈래 길을 보여준다.
사랑을 절대화하다 무너지는 길, 그리고 불완전함 속에서도 선을 행하며 의미를 발견하는 길. 이것은 단순히 소설 속 대비가 아니라, 내가 매일 맞닥뜨리는 선택이기도 하다.
삶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선을 향해 걸어갈 때, 우리는 흔들림을 넘어서는 의미를 얻게 된다.
사랑도, 성취도, 관계도 불안정하지만, 그것들을 넘어서는 힘은 결국 선을 행하려는 작은 실천에서 비롯된다.
톨스토이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삶은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속에서 선을 행할 때,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그것이 우리를 끝내 무너지지 않게 하는 단단한 뿌리다.
안나의 불완전함에 맞서는 용기,
불완전함을 사유와 성찰, 사랑으로 단단해지는 레빈을 보며 오늘도 우리의 삶에 가장 좋은 선택으로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
“삶은 불완전하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속에서 선을 행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