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빈자리는 슬픔이 아닌 삶의 초대

아이들이 떠난 집, 공허한 식탁

by 서수정

아이들이 서울로 올라간 뒤, 집은 변한 게 없었다. 같은 가구, 같은 식탁, 같은 소리. 그러나 집 안의 공기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저녁을 차려도 예전처럼 식탁에 둘러앉아 나누던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숟가락을 드는 순간마다 허전함이 먼저 다가왔다.

아이들 고등학교 시절, 나는 하루의 리듬을 그들과 맞추며 살았다. 아침에 학교에 데려다주고, 늦은 밤 야자가 끝나면 다시 차를 몰고 가서 아이들을 태워왔다. 그 시간은 단순한 픽업이 아니었다.

차 안에서 흘러나오던 라디오 소리, 졸린 눈으로 툭 던지던 아이들의 말, 시험 걱정과 친구 이야기를 들으며 나누던 대화가 내게는 하루를 가장 빛나게 하는 순간이었다.

짧지만 그 시간 속에서 아이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떠난 뒤 그 시간이 통째로 사라졌다. 밤이 깊어도 더 이상 나를 기다리는 약속이 없었다. 할 일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처럼, 나는 멍하니 남겨졌다.

아이들이 자기 길을 찾아 떠난 것이 자랑스럽고 기쁜 일이었음에도, 마음은 쉽게 따라주지 않았다. 부모로서의 역할이 줄어들자, 내 삶의 정체성도 함께 흔들렸다. 그 공허함은 단순히 아이들이 없는 식탁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는 책에 더욱 기대었다. 활자는 무심한 듯 보였지만, 책 속 이야기는 내 삶을 위로해 주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며, 삶의 무게와 가벼움이 동시에 주어진다는 사실에 마음이 머물렀다. 아이들이 떠난 빈자리는 무겁게 다가왔지만, 동시에 나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자유와 가능성은 가볍게 느껴졌다. 모순된 감정 속에서 흔들렸지만, 책은 그 흔들림조차 삶의 일부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화려하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묵묵히 강단과 책을 지켰던 스토너의 모습은 나와 겹쳐졌다. 화려한 성취가 없어도, 하루의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삶은 의미가 있다는 사실. 아이들이 떠난 뒤 텅 빈 집에서 나는 그 단순한 진실을 배웠다. 식탁 대신 책장을 붙잡으며 하루를 살아냈다.
책을 읽고 기록하는 일은 조금씩 나를 회복시켰다. SNS에 책 읽기를 기록으로 남기며 사람들과 연결되었고, 뜻밖에도 그곳에서 비슷한 취향과 고민을 가진 이들을 만났다.

서로의 글에 댓글을 남기고, 짧은 응원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팔로워 수가 늘어난 것은 덤이었지만, 무엇보다 그들과의 소통이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서 책과 사람을 통해 새로운 관계가 싹튼 것이다.

아이들이 떠난 집은 분명 비어 있다. 그러나 그 빈자리를 통해 나는 다른 길을 찾고 있다. 부모로서의 역할이 줄어든 자리에, 독자로서의 나, 배우는 사람으로서의 내가 서서히 자리 잡아가고 있다. 공허했던 식탁은 여전히 낯설지만, 책과 대화가 그 자리를 조금씩 채워주고 있다.
아이들이 떠난 빈자리는 내 삶에 구멍을 냈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의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그 자리를 통해 다시 나 자신과 마주하고 있다. 책은 나를 위로했고, 사람들과의 소통은 내 마음을 덮어주었다. 이제 식탁은 단순히 밥을 먹는 공간이 아니라, 나를 단단히 지켜주는 자리로 변해가고 있다.

"공허가 나를 무너뜨렸지만, 그 공허 덕분에 나는 다시 나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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