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_ 박민규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자주 멈춰 서게 되었다.
문장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익숙한 장면들 앞에서 발걸음이 느려졌기 때문이다.
외모로 평가받는 세계, 그 시선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쉽게 축소시키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비판은 바깥을 향하지 않고 나에게로 되돌아왔다.
우리는 흔히 차별을 이야기할 때 누가 가해자인지, 사회가 얼마나 불공정한지를 먼저 말한다.
하지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그보다 더 조용하고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나는 과연 사람을 끝까지 보고 있었는가.
이 소설 속의 그녀는 무기력하거나 삶을 포기한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열심히 공부했고, 노력했고,
자기 삶을 책임지려 애썼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을 쉽게 믿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그 사랑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지탱해 주리라 확신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그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사회가 너무 오래 그녀를 한눈에 판단 가능한 기준으로만 읽어왔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자신에게 향한 시선을 내면화한다.
“그래도 외모는 아니잖아.”
이 말이 반복되면, 아무리 다른 조건들을 쌓아 올려도 마음 한편에는 늘 이런 문장이 남는다.
나는 언제나 예외일 것이다.
나는 언제나 설명해야 하는 존재일 것이다.
이 지점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외모라는 것은, 어쩌면 이 사회가 사람을 가장 빠르게 판단하고 가장 쉽게 분류하기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언어는 아니었을까.
시간을 들여야 보이는 가치,
관계 속에서만 드러나는 태도,
천천히 증명되는 성실함은 너무 자주 기다려주지 않는 세계에서 쉽게 뒤로 밀려난다.
그녀의 상처는 외모 그 자체라기보다,
사람을 즉각적인 기준으로만 판단하려는
이 사회의 조급함에 더 가까워 보였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뉴스 속 가벼운 표현들,
농담처럼 소비되는 말들,
사람을 설명하는 것 같지만 실은 판단을 앞세우는 문장들 말이다.
그 말이 사실이냐 아니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언어 속에서 사람은 사라지고
설명하기 쉬운 조건만 남는다는 사실이다.
차별은 언제나 큰 목소리로 오지 않는다.
요즘의 차별은 정보의 얼굴을 하고,
유머의 얼굴을 하고, 아무렇지 않은 말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더 쉽게 스며든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나는 한 가지 질문 앞에 오래 머물렀다.
나는 누군가를 부끄러워한 적이 있었을까.
그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그 시선을 함께 받는 것이 두려워서,
혹은 그 사람의 다름이 내가 속한 세계의 기준에서 어색해 보였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먼저 거리를 둔 적은 없었을까.
이 질문은 누군가를 고발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이 질문은 내가 평소 어떤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정직하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질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직함은 옳은 말을 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보다는 내가 어떤 기준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는지를 인정하는 태도에 가깝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다름을 인정하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사람의 무엇을 보고 있는가.
외모는 가장 먼저 보이지만 가장 마지막에 말해져야 할 조건이다.
사람은 외모 이전에 이미 하나의 결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말투, 침묵, 태도,
관계를 맺는 방식,
사랑을 대하는 자세,
상처를 견디는 방식.
그 모든 것이 쌓여 그 사람이라는 존재를 만든다.
그래서 이 소설이 나에게 남긴 것은
새로운 주장이나 정답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하나의 방향이었다.
사람을 말할 때 외모부터 떠올리지 않는 일,
설명하기 쉬운 기준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가 살아온 시간을 먼저 떠올려보는 일.
그건 누군가를 특별히 이해하겠다는 결심이라기보다, 사람을 너무 빨리 요약하지 않겠다는
조용한 선택에 가깝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사람을 외모로 부르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보다 느린 언어로, 그 사람이 살아온 결을
끝까지 읽어보라고 권할 뿐이다.
그 권유를 기억하는 한, 이 소설은 책장 속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을 만나는 순간마다 내 시선을 조금 늦추는 이야기로 오래 남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