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_올리버 색스
작년 12월, 나는 무릎 연골 수술을 받았다.
그 후 3개월 동안 목발에 의지해 살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움직일 수 없다 ‘는 불편함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몸이 불편하다는 건 단지 이동의 제약이 아니라, 내가 나인 것 같은 감각까지 흐려지게 만든다는 것.
목발에 의지하던 그 겨울, 거울에 비친 나는 분명 나였지만,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움직임이 느려지고, 몸을 신경 쓰는 에너지를 빼앗기면서 나는 자꾸만 ‘나는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읽은 책이 바로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였다.
이 책은 신경학적인 장애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의 사례를 올리버 색스의 글로 소개되고 있었다.
그 안에 등장하는 ‘크리스티너‘라는 짧은 여성은 어느 날 갑자기 몸의 감각을 모두 잃어버린다.
그녀는 말하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느끼는지,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를 묘사하며 색스는 이렇게 말한다.
‘자아란 무엇보다 육체적인 것이다. ’
‘어떤 의미로는 그녀는 ‘척수를 빼내버린 ‘ 상태였고 몸을 잃은 혼과 같았다. 고유감각과 함께 근본적인 것을 잃은 것이다.
정체성을 기질적으로 유지해 주는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성공한 사람이자 동시에 실패자이기도 하다. 몸은 움직이는 데 성공했지만 정체성을 가지고 ’ 존재하는 것’에는 실패한 것이다.‘
나는 이 문장들을 소리 내어 읽었다. 몇 번이고……
우리는 보통 자아를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억, 감정, 가치관, 생각.
그런데 크리스티너는 몸의 감각을 잃자 자아 자체가 흔들렸다.
몸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존재를 느낄 수 없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나도 종종 몸을 잃고 산다. 물론 그들과는 다른 상태이긴 하지만……
일에 몰두하거나 스트레스를 견딜 때면 내 몸은 ‘불편하다’는 신호를 보내지만, 나는 그걸 ‘비효율;이나 ;게으름’으로 해석한다.
그렇게 몸을 자꾸 무시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나 자신이 아닌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감정도 무뎌지고 나를 돌보는 마음도 점점 사라진다.
그럴 때마다 떠오을 것 같다.
자아는 마음속 어딘가에 가만히 떠있는 게 아니라, 내 몸의 안쪽에서 조용히 나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요즘 나는 작은 실천하고 있다.
하루 한 번, 눈을 감고 내 몸의 감각을 느껴보는 것, 지금 손끝은 어떤가, 어깨는 뻣뻣한가, 숨은 어디까지 내려오는가…..
아주 잠깐이라도 몸을 느끼는 순간, 어쩐지 내가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 같다.
책 속 크리스티너는 몸을 잃고도 살아가려 했다. 낯선 감각 속에서도 존재를 붙잡으려 애썼다.
나는 아직 몸을 가지고 있다. 감각도 있다.
그렇다면 자아를 지키는 첫걸음은 어쩌면 내 몸을 잊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