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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림 Aug 28. 2022

희생이 관계를 지킬 수 있을까?

당신은 발매트가 아닙니다 . 밟게 두지 마세요

오랜만에 후배와 장시간 통화를 했다. 후배는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인간관계가 너무 힘들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쾌활한 성격에 성품도 착해 주변에 늘 사람이 많은 아이였기에  그런 고민을 갖고 있는 게 좀 의아했다. 친구들도 많았고, 직장 동료, 선배도 그녀를 무척이나 아끼고 좋아했다.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어서 항상 친구들을 먼저 생각하는 편이에요. 음식을 선택할 때도 친구가 먹고 싶은 걸로 하고, 아무리 피곤하고 할 일이 많아도 어디 가자고 하면 시간을 내서 같이 가는 편이에요. 고민이 있다면 하면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생일이나 특별한 날은 잊지 않고 선물도 챙겨 주죠. 그런데 가끔은 저도 너무 힘드니까 뭘 하자고 할 때 싫다고 거절하거나 귀찮은 표정을 지으면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 변했어’ 그러면서 많이 섭섭해해요.”


사회심리학에서는 자신에 대한 판단 유형을 공적 자기의식(public self-consciousness)과 사적 자기의식(private self-consciousness)으로 나눈다.

공적 자기의식은 타인의 판단이나 시각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타입이라서 말을 할 때나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자신의 의견보다는 타인의 눈치를 많이 살피는 스타일이다. 고민을 털어놓았던 후배의 경우는 공적 자기의식이 강한 경우다.

사적 자기의식은 공적 자기의식과는 반대로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나 생각대로 판단하고 일을 추진하는 스타일이다.


대체로 공적 자기의식이 강한 사람은 예의도 바르고 타인과 잘 어울리는 듯 보여 인간관계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공적 자기의식이 강하면 타인과의 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말하기에 자신감이 부족하고 불안하다. 또한 활발한 듯 보이지만 낯가림도 심하고 사람과 관계 맺기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더 친한 척하거나 괜찮은 척하기 쉽다.  타인에게는 배려심 넘치는 좋은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스스로는 너무 피곤하다.     


희생은 관계를 지킬 수 없다

도어매트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다.

도어매트는 문 앞에 놓는 발매트로 신발에 묻은 더러움을 털거나 오가면서 아무렇지 않게 밟는다. 발매트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건너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도어매트 신드롬은 자신을 도어매트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항상 타인을 위해 희생해야 하고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삶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관계에는 친구, 연인처럼 남과의 관계도 있지만, 피를 나눈 가족과의 관계도 있다.

가족 사이에서도 누군가 한 명의 희생이 큰 상황이라면 올바른 관계라고 할 수 없다. 부모라고 해서 자식에게 무조건 희생해야 할 필요 없고, 무능력한 부모를 위해 자식이 무조건적으로 희생을 감수해야 할 필요도 없다.


나는 다른 사람이 밟고 지나가는 발매트가 아니다. 나와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다. 희생은 관계 맺기를 조금 편하게 해 줄 수는 있지만 관계를 영원히 지킬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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