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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림 Sep 01. 2022

신경과 14년 차 환자입니다

내 나이 보다 20년 늙은 뇌

처음 신경과에 간 것은 14년 전이다. 한 달에 한 번 마감이 있는 직업의 특성상 마감 때가 되면 야근과 철야가 잦았다.

온종일 사무실에 있다 보면 머리가 아파서 가방과 책상서랍 속에는 항상 두통약이 있었다. 20대부터 두통약과 함께 살았던 터라 두통을 특별한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두통과 함께 구역질이 동반되었다. 한 번은 퇴근길에 심한 두통느껴 눈에 띄는 한의원에 뛰어 들어갔다.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했더니 침을 놔주었는데 침을 다 꽂기도 전에 구역질이 올라와 화장실에 가서 토해야 다.


이 일로 심각성을 느낀 나는 처음으로 신경과에 가 난생처음 MRI를 찍었다. 내 머리는 건강한 사람의 뇌와 달리 눈이 뿌린 것처럼 희끗희끗했고 간간히 흰 점도 보였다.

의사는 나의 가 실제 연령보다 20살 많다며 뇌졸중에 위험이 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몇 년에 한 번씩 MRI를 찍었고 나는 한 달에 한두 번, 많게는 세네 번 두통에 시달리며 살았다.

두통약을 먹으면 몇 시간 만에 통증이 해소되기도 하지만 길게는 하루를 넘기고 다음날에도 약을 먹어야 할 때도 있다.

나의 이러한 건강 상태에 대해 내 주변 사람들은 매우 걱정한다. 그런데 정작 본인인 나는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매일 비를 맞으면 몸이 축축한 것이 별스럽지 않은 처럼, 나는 머리가 아프거나 잠을 잘 못 자는 일상에 어느덧 길들여진 것이다.


생각 많이 하지 마세요

코로나가 막 시작되었을 무렵 나는 잠시 일을 쉰 적이 있다.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사회생활을 했던 터라 막상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더 힘들고 스트레스받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두통도 심해젔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시간도 있으니 이참에 병원에 입원해 정밀 검사를 받아 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해 난생처음 병원복을 입었다.

여러가 검사를 다고 해서 두통이  것은 아니다. 그럴 병이면 벌써 고쳤다. 그나마 다행은 14년전에 비해 두통 빈도가 줄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항상 두통약을 갖고 다닌다. 갑자기 두통이 나타나기 때문에 약없이는 곤란하다. 일반 두통약이 듣지 않기 때문에 처방받은 두통약이 필요하다.

의사는 늘 말한다.

"힘들게 살지 마세요"

"스트레스받지 마세요"

"생각 많이 하지 마세요"

"좀 쉬면 안 돼요?"

지금처럼 쓸데없이 많이 생각하고, 아무거나 먹고, 힘들게 살지 않으면 두통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며 생활을, 생각을 바꾸라고 따뜻한 잔소리를 한다.


그런데 나는 오늘도 의사 선생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잠들기 전까지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머리를 비워야 아플 일도 줄어 들텐데...

이미 지난 일을 곱씹고 후회하고, 벌어지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 하느라 머리가 또 복잡해진다.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건 두통약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약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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