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두부

by 북극성 문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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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두부

엄마 따라 시장에 가면 떡볶이, 순대, 어묵, 핫도그, 붕어빵, 호떡 등 주변은 온통 간식 천지. 그러나 모두 두부만큼 부드럽진 않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두부 가게에 가면 엄마는 반찬으로 먹을 두부도 사고, 집 가는 길에 가면서 내가 먹을 수 있도록 한 모도 더 사주셨다.


사장님은 큼지막한 두부에 칼자국을 내어 먹기 좋게 잘라 주셨고 비닐봉지에 그걸 담아서 호호 불면서 먹었다. 겨울은 춥고 손도 시리지만 말랑말랑한 두부를 따듯하게 손에 쥐고 집에 가는 길이 좋았다. 눈송이를 뭉친 것만 같은 하얀 두부가 내 손안에서 말캉.


따듯한 두부. 머리부터 발끝까지 까만 꿔꿔를 볼 때 하얀 두부가 떠오른다. 까만 꿔꿔는 검정깨 두부가 어울리려나. 불독, 짧은 다리, 다소 험상궂게 생긴 꿔꿔. 그러나 작고 앙증맞은 앞니가 톡 튀어나와 있는 귀여운 강아지다. 친구에게 건너 들은 꿔꿔의 견생은 기구한 면이 있으나 그 사연이 정말 꿔꿔의 것이 맞는지도 의심이 갈 정도로 사람을 매우 좋아한다.


꿔꿔 이전에도 라온이, 별이, 누스 등 여러 동물 친구들과 만난 적 있지만, 꿔꿔만큼 천진난만한 강아지를 본 적 없다. 돌격! 처음 날 만난 날, 품속으로 막 달려드는 꿔꿔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데서나 배를 드러내고 누구에게나 달려간다. 매 순간 사랑이 필요하기에 예뻐해달라고 주변을 맴돌며 응석 부린다. 관심을 위해서라면 부끄러움도 없다. 사람 많은 자리에 둘러싸이면 너무 흥분한 나머지 소변을 계속 보는 꿔꿔를 보며 당황하기도 했다.


친구가 여행을 떠난 지인의 강아지를 잠깐 맡아준다며, 동물을 좋아하는 나를 집으로 초대해줘서 꿔꿔를 알게 됐다. 반려동물과 살아본 적 없어서 강아지나 고양이와 함께 사는 친구가 집 초대를 해주면 무한한 영광으로 알고 그들을 보러 갔다. 그렇게 꿔꿔와의 한 번의 강렬한 만남은 이후 ‘남의 집 강아지’를 이렇게 애타게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두부를 직접 만들어본 적 있다. 콩을 불리고, 갈고, 끓이다가 간수를 넣는다. 면보에 콩즙을 넣고 물기를 빼내면 완성. 물기가 빠지고 시간이 지나면 응고된 두부를 볼 수 있는데, 두부는 여전히 말랑말랑함을 유지하고 있다. 단단하지만 연약한 존재.


꿔꿔의 두부 같은 연약한 면모는 사랑을 있는 그대로 표현함에 있다. 재고 따지지 않고 표현하는 법을 안다. 자신을 지킬 유일한 수단인 토끼 이빨로는 귀여움만 어필하고, 한없이 부드러운 혀로는 덧없이 핥아대기만 한다. 꿔꿔가 강아지가 아니라 사람이었으면 온종일 꿔꿔 걱정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을 테지.


누군가에게 온 마음을 다해 표현하면 상대방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을까, 내가 다치진 않을까. 나는 그것부터 걱정한다. 사랑이 내게 넘치게 있어도, 아주 작은 부분만 깎고 다듬고 마지막까지 확인해서 상대에게 전한다. 정성스럽게 전달한 마음을 열어본 상대가

내가 거기에 눌러 담은 마음보다 그 이상의 의미를 찾아봐 주기를 바라면서.


나는 네가 너무 좋아, 나랑 친구가 되면 좋겠어. 우리의 만남이 너에게도 소중했으면 해! 우리 같이 재미있게 놀자. 곧이곧대로 말하는 용기. 그대로 드러난 마음은 연약하지만, 그래서 조금만 힘을 주면 형체가 없어지는 두부를 떠올리게 되더라도 너무 귀하다는 마음이 든다. 지켜주고 싶고 그 용맹함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가만히 손을 대고 있으면 부드럽고 포근하다. 난로 앞에 손을 쬐고 있을 때의 노곤함. 함께 있으면 눈꺼풀이 감긴다. 두부판이 온기를 머금고 모락모락 김이 올라올 때처럼 꿔꿔의 몸도 사람보다 온도 높은 따듯함을 유지한다.


커다란 진주 목걸이를 걸고 있는 꿔꿔는 다행히 사랑을 왕창 받고 산다. 꿔꿔의 지금 보호자는 꿔꿔의 첫 번째 보호자가 아니다. 불독 순종으로 태어나, 그 순종을 원하는 사람들로 인해 잦은 출산을 겪어야만 했다고 한다. 시린 계절을 버티면서도 꿔꿔는 고유한 따듯함을 놓지 않았다.


순도 100퍼센트 이 연약함의 생명체는 자신이 두부처럼 무른 존재임을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두부를 떠올리지도 않는다. 애초에 연약함을 떠올리지도 않는다. 마음은 오로지 단 하나. 주저하지 않고 온몸으로 부딪혀 사랑받을 것.


꿔꿔의 몸에서 작은 털들이 빠져나온다

꿔꿔의 눈에서 작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꿔꿔의 입에서 적은 침이 고였다 사라진다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들은 그가 무른 존재임을 끝없이 상기하게 하지만 그래도 꿔꿔는 신경 쓰지 않는다. 애초에 그의 마음엔 오로지 한 가지의 목표만이 있을 뿐이다. 그에게는 온통 연약함뿐이지만 그건 그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콩즙에서 두부라는 여정을 거치는 동안 고소함은 언제나 콩의 변치 않는 고유한 것이었다. 나 자신으로 살기.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또렷이 알고 표현하기. 나는 그런 꿔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동경의 마음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 콩의 고소함처럼 꿔꿔의 고유함에는 애정이 있다.


물기가 빠져나간 자리엔 단단함이 남는다. 물렁거리는 와중에도 형태는 또렷하다. 사는 내내 연약하고 단단할 꿔꿔. 꿔꿔의 안녕과 사랑과 에너지와 열정과 애정을 응원한다. 춥기만한 겨울에도 변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고. 저 멀리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따듯해지는 두부 같은 존재가 나에게 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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