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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Nov 22. 2021

할머니의 섹스『어떻게 늙을까』

『어떻게 늙을까』다이애너 애실, 2016

출근길, 똑같은 패딩을 입은 남자아이 둘과 유치원 등원을 시키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똑같은 옷을 입히는 게 좋을까, 다르게 입히는 게 좋을까? 이제는 뱃속의 아이까지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나는 또 이상한 잡념에 빠진다. 이미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나도 이렇게 해보지 않은 일이 여전히 낯선데 이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들은 얼마나 세상이 생경할까. 내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단어들을 새는 발음으로 어설프게 말하는 세 살 딸의 모습을 또 생경하게 바라본다.  


90의 나이에 쓴 다이애너 애실의 책『어떻게 늙을까』를 읽으며 늙는다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노화를 막는다'는 화려한 선전문구는 이 세상에 무수하다. 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를 천천히 자라게 하는 방법 따위는 없듯이, 노화를 막는 방법이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내 삶에 드리워졌듯이, 노화도 내 삶에 드리워진 것뿐이다. 또박또박 말을 하려 애쓰는 아이처럼 지성으로 삶을 나아가려 하는 종종걸음을 걷는 일, 삶 앞에서 우리는 언제든 매일 애쓰는 어린아이가 된다.


『어떻게 늙을까』는 자기 계발서도 아니고, 제목에서 풍기는 심오한 철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지도 않다. 그냥 90세 할머니의 일기장이다. 제일 재밌게 읽은 부분은 섹스와 성욕 이야기였다. 섹스와 성욕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하긴 당장 매일 집에서 보는 남편도 나와는 섹스는 하지만 내 성욕을 알지 못한다. 60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성욕이 있고, 섹스를 졸업하고 있던 성욕마저도 서서히 사라진 후에야 더 명료히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고. 나는 그 대목이 어쩐지 이 책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대목이었다. 관계에 대한 욕구마저 스스로에서 사그라진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고 읽혔다. 작가는 끊임없이 삶 속에 유(有)를 찾는다. 심지어 무(無) 속에서도 말이다.  



우리 존재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보다는 우리가 이 세상에 거의 보이지는 않아도 실제적인 뭔가를, 유익하든 해롭든 간에 남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 죽어서 사라지는 것은 인생의 가치가 아니라 자아가 담긴 낡은 그릇이요 자의식이다. 그것이 무無로 사라지는 것이다. - 2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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