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서영 Aug 17. 2022

사마귀

워킹맘 다이어리

남편 샤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평상 시대로라면 평일 아침 알람이 먼저 울려야 하는데 이상해서 시계를 보니 지각이다. 부리나케 옷 입고 세수만 하고 밖을 나선다. 밖을 나서 대문을 닫으려는데 집 안에 사마귀가 들어와 버렸다. 엉겁결에 사마귀를 집안에 들이고는 부랴부랴 택시를 탔다.


한 5분쯤 지각했다. 어디 아픈가? 늦잠을 잔 것에 대한 자책보다는 안 하던 행동을 하는 나 자신이 무서웠다. 10여 년이 넘게 직장생활을 했지만 이랬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늦었다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어쩌다 집안에 들어오고만 사마귀가 신경 쓰여 나보다 나중에 출근하는 남편에게 "사마귀 좀 내보내라고" 톡을 보냈다. 하지만 남편은 이미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 등원과 출근을 마친 상태였고 사마귀를 보지 못 했다고 했다.


집안에 분명 들어온 사마귀를 보지 못 했다고 하니 머릿속으로 사마귀가 둥둥 떠다녔다. 우리 집 어디로 이동했을까. 이불 속에 들어가지는 않았을까. 부엌이나 화장실 같은 곳엔 들어가지 않았을까.


퇴근하고 집에 오니 사마귀는 들어왔던 그 자리에서 얼마 가지 못 하고 문에 붙어있었다. 벌레를 무서워하는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사마귀에게 종이로 부채질을 하여 바람을 불었다. 나도 모르게 소리까지 질러대면서. 덕분에 아파트 복도에 쩌렁쩌렁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마귀는 맥없이 문 밖으로 날아갔다. 저도 모르게 나온 공포에 쾅 세게 문을 닫아버리고는 복도를 뛰쳐나갔다. 그러고는 아이 어린이집 하원을 갔다. 나무 사이에서 매미들이 울어대고 엄청나게 더운 여름날이었지만 사마귀 때문인지 최대한 집에 가기 싫었다. 그것도 모르는 아이는 온몸이 땀에 절도록 숨바꼭질을 하고 솔방울을 모으며 놀이터에서 뛰어놀았다.

아이에게 우리 집에 사마귀가 들어왔었던 일을 설명하고 집에 다시 돌아와 보니 사마귀는 바람에 날아갔던 그 자리 그대로 서있었다. 참 마음이 간사한 게 그렇게 비명을 지르고 도망간 것이 무색하게 나는 아이와 함께 사마귀에게 목을 축이라고 물방울을 뿌려주었다. 우리 집 안에 있을 때와 우리 집 밖에 있을 때 마음이 이렇게나 달랐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려고 문을 열었더니 사마귀는 그 자리 그대로 쓰러져있었다. 서 있던 그대로 종이인형처럼 쓰러져 있는 게 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무서워서 치우지도 못 하고 계속 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누군가의 발에 밟히거나 청소하시는 분에게 걸려 쓰레기봉투에 담기겠지.


곤충 사마귀와 사람 몸에 자라는 사마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데, 사람 몸에 난 사마귀는 생겨난 위치에 따라 다르게 불린다고 한다. 입 주면에 난 사마귀는 먹을 복을 부른다고 해서 복사마귀라고 불리고, 눈 주변에 난 사마귀는 눈물 같이 보인다고 해서 물사마귀라고 불린다고 한다. 사마귀가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우환 같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처럼 또 출근해서 한참 일을 하다 보니 손이 콕콕 아팠다. 오른손바닥을 보니 웬 물집이 생겼다. 자세히 보니 중지에도 비슷한 물집이 생겼다. 전혀 기미도 없이 수포가 생겨버린거라 당황스러웠는데 두 개나 있으니 또 덜컥 겁이 났다. 수포를 보고 처음으로 든 생각은 전염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었다. 아이에게 옮을 수도 있으니 빨리 병원으로 가서 치료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점심에 근처 피부과를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손바닥에  물집을 더니  가지 질문을 했다. 손을 많이 쓰냐고. 많이 아프냐고. 딱히 많이 아프진 않고, 집안일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험한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라서  아니라고 대답했다.


약 처방을 해주셨고 물집을 터트려야 한다고 옆방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주사방으로 들어가 물집을 터트리는데 번질 수도 있고 다시 물집이 날 수도 있다며 터트린 자리 위로 칭칭 붕대를 감아주셨다. 어쩌다 생긴 물집인지, 이 물집이 무슨 병인지 아무 것도 모른 채로 다시 회사로 갔다.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만지는데 압박을 하고 나니 아까 전보다 더 아팠다. 진찰 받을 때는 별일 아니구나 안도했던 것 같은데 붕대로 감긴 오른손을 보니 이거 정말 별 일이구나 싶었다. 회사일뿐만 아니라 집안일도 이 오른손으로는 너무 어려웠다. 최대한 물이 안 닿게 하고 하루 두 번 소독해야 한다고 해서 손이 묶인 사람처럼 행동해야 됐기 때문에 설거지며 빨래며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힘들었다. 사마귀가 문제가 아니라 사마귀는 아프지 않는데도 사마귀 정체가 뭔지 모르니 불안한 마음이 문제였고, 터트리고 난 뒤에는 칭칭 감고 다녀야하니 문제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휴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