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가는 자』를 읽고 - 반야심경
최근 불교 철학에 관심이 생겨 『반야심경(般若心經)』을 해석한 최진석의 『건너가는 자』를 읽었다.
“더 채우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정확히 보기 위해 고정된 생각을 버린다."
반야심경의 핵심 개념은 공(空), 즉 모든 것은 변하며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특정한 틀이나 관점에 갇히지 않고,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과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사물의 본질은 그것이 다른 것들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일 뿐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사라지면 이것 또한 사라진다는 연기(緣起) 법칙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고 본다. 즉, 우리는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들은 이론을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경험을 통해 이론과 진리를 만들어간다. 아인슈타인이 등장하기 전에는 상대성이론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기하학에서도 유클리드 기하학이 절대적인 줄 알았지만, 나중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등장하며 기존의 개념이 확장되었다. 과학과 수학도 시대와 관점에 따라 변하는 것처럼, 우리의 사고방식도 유연해야 한다.
최진석은 『건너가는 자』에서 기존의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불교의 중요한 개념인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내가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붓다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탐구하고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반야심경의 '공' 개념과 연결되며, 기존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야 변화할 수 있다.
건너가는 자란, 하나의 깨달음에서 멈추지 않고 또 다른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다.
불교에서는 자아(自我)란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진정한 나를 찾는다는 것은 자아가 없음을 깨닫는 것, 무아(無我)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다. 공을 깨닫고 나면, 색(形)도 공하며,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바로 ‘무아’이다.
조금 엉뚱할 수도 있지만, 나는 운동을 하면서 기존의 틀을 깨는 법을 배운다. 1년 넘게 폴댄스를 하면서 힘을 빼야 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아야 하며, 그저 봉을 잡고 돌고 또 돌면서 기존의 배웠던 동작도 언제 배웠냐는듯 새롭게 다시 배워야 했다. 욕심을 부릴수록 더 힘들어진다. 반야심경이 말하는 '공(空)' 개념과 연결된다. 우리가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추려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고정된 틀에 집착할수록 삶이 더 힘들어진다. 모든 것은 변하고, 나도 그 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한다.
우리는 종종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집착하면서 스스로를 괴롭게 만든다. 예를 들어, 공부하지 않는 아들이나 술을 마시는 남편을 바꾸고 싶어 하지만, 결국 타인을 변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만든 기준과 기대에 스스로 갇혀 있지 않은지 확인하는 과정, 성찰이다.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우리가 경쟁 속에서 상대와 닮아가는 과정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쟁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경쟁을 넘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는 철학이 아니다. 철학이 남긴 부산물이다. 철학이란 책이 아니라, 사유하는 과정 자체를 의미한다. 반야의 지혜 또한 마찬가지다. 이름으로 테두리를 정하고 판단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만약 반야가 추구의 대상이 되고, 열반이 목표가 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개념에 갇혀버리고 만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갇혀버리고는 한다.
때문에,
『건너가는 자』는 특정한 목적지를 가리키지 않는다. 건너가기의 과정 자체가 목적이다. 붓다는 절에서 공양하고 염불 하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각자가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를 원했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변화하며, 스스로를 궁금해하는 삶. 우리 또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두려움 없이 세계를 다시 생각하고 새롭게 창조하는 용기를 가져 건너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