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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겨를 없이 춤이 시작 되었다

폴 타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by 최서영


폴댄스를 처음 해보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놀란다. “너무 아픈데?” 폴은 두 번 타고, 세 번 타도 아프다. 폴은 언제든 타도 아프다. 타다 보면 손바닥에 굳은살이 생기고 몸 이곳 저곳에 커다란 멍이 들기도 하는데 이렇듯 사서 고생하는 운동을 굳이 왜 하나 싶지만 타다보면 아프다는 생각보다는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진다. 처음에야 멍을 보고 놀랐지 이제는 멍이 생긴줄도 모르고 멍이 생겨도 생겼구나 하고 또 폴을 탄다.


“늘 아파요. 아프지만 아픈 것에 집중 하지말고,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에 집중하면 다음 걸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누군가에게 폴댄스에 대해 소개 할 때, 나는 이렇게 말하고는 한다. 마음 먹은 것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 하더라도 해내어 보고, 그 해낸 마음과 힘으로 또 앞으로 나아간다.


폴에서 안 떨어지려고 용수철 처럼 튀어오를 때도 있고, 원숭이처럼 못 나게 올라갈 때도 있다. 폴댄스 학원에서도 선생님과 수강생들에게 동작을 잘 해내서 박수를 받는 게 아니라 안간 힘을 쓰며 버티는 모습에 “서영님은 힘 ‘은’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힘 좋다는 말은 살면서 딱히 들어본 적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수영도 못하고 자전거도 탈 줄 모르는,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산 사람으로 평상시 힘 자랑 할 일이 딱히 없었을 뿐 아니라, 산후우울증으로 몸과 마음의 기력이랄 것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약을 처방 받던 병원에서는 운동을 시작해보라 했다. 살 힘도 없는 사람이다. 운동할 힘은 당연히 없어 1년 가까이 별다른 노력 없이 내리 약만 먹었다. 그러다 우연히 아이가 아파 소아과를 가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앞에 붙어있던 ‘폴댄스 체험 무료’라고 적힌 배너가 내 마음 속에 쏙 들어왔다.


이제는 폴을 더 잘 타고 싶어서, 폴을 잘 탈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 재미난 다른 운동을 찾는다. 아무리 다른 운동들을 해보아도 폴댄스만한 것이 없다. 아직은 뻣뻣하기 그지 없어 학원만 가면 끙끙 앓는 소리를 내지만, 어느덧 살도 10kg가 빠졌고, 팔근육과 복근도 희미하지만 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폴댄스’라고 하면 몸매를 한껏 과시하며 높은 하이힐에 야한 옷을 입고 요염한 춤을 추는 모습을 떠올리고는 한다. 그런 이미지들이 내가 가진 이미지와 충돌하면서 하나 같이 “네가?”하는 표정으로 더 화들짝 놀라는 것 같다. 폴댄스를 하는 내 모습은 짧은 기장감과 깜찍한 외모로 인해 섹시함과는 거리가 멀어서, 선생님은 매번 귀엽다고 한다. 까치발을 들고 폴에 오르려는 내 모습은 백조가 되고 싶은 아기오리 같다. 내가 봐도 내가 귀엽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폴댄스를 통해 나는 나의 부족한 면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폴댄스는 그 어떤 운동 중에서도 여성의 몸을 자유롭게 해주고 삶까지 건강하고 아름답게 해준다. 언젠가는 킬힐을 신고 폴을 타는 이그조틱에 도전 해보고 싶고, 힘이 더 필요한 고정폴도 도전 해보고 싶고, 전문가반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는 1년차 초급반 수강생이다.


입문반에서만 1년 가까운 시간을 머물렀다. 폴댄스는 입문이라는 과정의 터널이 굉장히 긴 운동이다. 가지고 있는 피지컬과 연습기간 등 그 과정이 제각각이다. 2개월 만에 초급반으로 넘어가는 사람도 있고 나보다 더 긴 시간을 입문반에서 연습하는 수강생도 있다. 폴댄스를 잘 모르는 사람은 “이게 입문이라고?” 하는 반응을 보인다.


입문을 거치고 나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다.

지금 나는 “이게 초급이라고?”를 지나고 있는 중이다.


입문의 세계가 다르고, 초급의 세계가 다르다. 그 안은 우주 처럼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학원을 가는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오늘은 또 어떤 예쁘고 어렵고 신기한 동작을 배울까 기대가 되기도 한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온몸이 달달 떨리지만 ‘해냈다’는 마음으로 늘 돌아간다. 그 마음 때문에 또 학원을 간다.


오늘 배운 동작을 모두 성공하고 내려오면 이를 폴댄스 학원에서는 콤보를 완수했다고 해서 '완콤'이라고 부른다. 모두가 완콤을 목표로 폴 위에서 그것을 향해 가고 있지만 우리는 무수한 실패를 겪는다. 닿을듯 말듯 결국 실패를 겪어 아쉬운 콤보를 하고 내려오더라도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해보자’며 다음 차례를 기다리다 심호흡하고 다시 폴에 오른다.


이 책은 내 폴댄스 실력만큼이나 오류투성이다. 어쩌면 이 책의 대부분이 ‘아직도 오답인 상태’ 일 수 도 있겠다. 1년 동안 폴을 타며 써놓은 글을 다시 보며, ‘이때는 이랬구나’ 웃기도, ‘실은 이 동작을 할 때 이렇게 하면 안 됐는데’ 혼자 착각했던 잘못들을 발견하며 창피하기도 했다. 그러다 인지하지 못 할 순간에 나아진것들과, 어려웠으나 가슴을 뛰게 했고, 이제는 무감각해지고 달라진 모습들에 또 깜짝 놀라기도 했다.


나는 우리의 수많은 실패들을 믿는다. 우리의 실패는 그 자체로 찬란하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지나온 오답들에 감사하다. 글도, 폴도 수정하고 수정하며 새로고침 해나갔다. 돌이켜보면 그 오답들도 오답인 채로, 오답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전진할 수 있었다. 지금도 내 삶은 오답을 수정하는 과정 속에 놓여있다. 오답을 오답으로 내버려두지 않으려 폴을 다시 잡는다. 부족한 것이 보이더라도 자책하지 않는다. 해내자. 전부 다 해내지 못 하더라도 부족해도 최선을 다해 해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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