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댄스 에세이 「폴 타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폴수업을 갔는데 폴댄스를 하기 전 웜업을 위해 항상 매트를 깔고 수업을 기다리는 수강생들이 오늘은 매트 없이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선생님, 오늘은 웜업 안 하나요?”
“네, 오늘은 루틴을 해볼 거에요.”
‘루틴이 뭐지?’ 아리송했지만 원래도 매번 새로운 걸 배우니 새로운 동작이겠거니 여겼다.
플로우 루틴은 바닥에서 폴을 이용해 춤을 추는 폴댄스다. 지금까지 배운 동작들을 활용해 음악에 맞춰 평소 수업보다 더 길게 동작을 이어 춤을 추었다. 플로우 루틴은 요즘 폴댄스 수업에서는 많이들 없어진 수업 방식 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했던 수업들 중에 가장 재밌었다. 폴 아래에서부터 춤을 추기 때문에 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유산소 운동이 되어 별도의 웜업이 필요가 없었다. 폴을 잡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루틴 동작들을 배워보았다.
처음에는 동작 외우기부터 난관이었다. 사실 오늘만 난관이었던 게 아니라 점점 이어지는 동작이 많아지면서 매 수업이 난관이었지만, 그렇다면 오늘 유독 난관이었다고 해야할까. 오늘도 난관이었다고 해야할까. 오늘도 난관이었지만 유독 마음만은 즐거웠던 그런 아찔한 난관이었다고 해야할까.
‘폴댄스는 정말 치매가 좋을 거’라는 생각을 매번 한다. 이 동작 다음에 이 동작. 허공에서 꿈틀거리며 외우기 바쁜데, 또 그러다가도 하다 보면 외워진다. 쉬면 또 금방 까먹기 때문에 별도의 쉬는 시간 없이 계속 꿀렁거리며 연습했다. 금방 온몸에 땀이 났다. 플로우 루틴은 지금까지 배웠던 동작들이 중간 중간 나와서 또 아는 동작이 나오니 신이 나서 반갑게 해냈다. 반대로 플로우 루틴에서 배웠던 동작들을 폴 위에서 하면 또 신나서 반갑게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했던 폴댄스 수업은 엄밀히 말하면 내게 ‘댄스’가 아니라 ‘운동’이었다. 물론 아직은 입문반인지라 폴을 탈 때 음악이 잘 들리지 않는 영향 탓도 있겠지만, 애초에 폴댄스 수업을 체험할 때부터 나는 폴댄스를 ‘운동’으로만 여겼다. 자고로 ‘댄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박자에 맞춰 폴 위에서 동작을 하며 돈다거나,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것처럼 음악에 어울리는 표정연기를 할 여력이 지금까지는 전혀 없었다. 그저 선생님이 알려주신 동작을 순서대로 정확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매번 수업 끝나고 영상을 돌려보면 폴 위에서의 내 얼굴은 항상 일그러져 있었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웃고 있었다. 폴 위에서도 이런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어지럽지만 어지러운 기색 없이 우아하게, 플로우 루틴 할 때처럼 폴 위에서도 이런 표정을 짓고 싶다. 그런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거울을 보며 내 춤 선이 잘 나오고 있는지 확인했다. 세상에, 내 인생에 춤 선이라는 것을 신경 쓰는 날이 오다니! 폴댄스 수업을 하면서 연습할 때 처음으로 춤추는 내 모습을 본 것이다. 오늘은 지금까지는 동작을 수행하는 데만 바빠 보지 못 했던 춤 추는 내 모습을 목격하는 날이었다. 처음 동작을 배울 때는 마냥 어려웠던 동작이, 춤이라고 생각하니 불필요한 힘이 빠지고 한결 가벼워졌다. 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주던 발악도 오늘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지만 폴댄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밀고 당기기, 강약조절을 몸소 체험하는 날이었다. 몸에 힘이 빠지니 동작이 훨씬 가벼워지고 부드러워졌다. 너무 당연한 이야긴데, ‘폴댄스’는 춤이다. 매우 뚝딱거리며 선생님 동작을 따라하느라 꾸물꾸물 리듬 타는 수달 같았지만 폴을 이용한 동작들을 평소보다 자신감 있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이렇게도 몸을 지배하는 구나’를 깨달으면서, 앞으로 폴을 이렇게 즐겁게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매번 한명 씩 돌아가며 영상을 찍던 것도 이번에는 수강생 끼리 팀을 이뤄 댄스그룹처럼 함께 루틴 영상을 찍기도 했다. 함께 하니 정말 댄스그룹이 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