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가족이구나

동생

by 최서영

※ 본 에세이는 언니와 동생, 시인 엄마, 극작가 아빠 4인의 릴레이 에세이입니다.


어릴 적 나는, 언니가 누구에게나 사랑 받고, 활달하고 밝은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나와 똑같은 상황에서도 언니는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잘 나누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칭찬을 받곤 했다. 내 기준에 언니라는 사람은 완벽한 '외향형' 인간이었다. 어른이 되고 보니 언니는 여전히 사랑 받는 사람이지만 근본적으로 나와 비슷한 '내향형' 인간임을 알게 됐다. 평생 나랑은 다른 성질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나라는 사람과 생각 프로세스 자체가 똑같더라.


언니가 밟았던 길을 나도 똑같이 걷고 있었다.


물론, 언니는 항상 나보다 공부를 못했지만, 대학 진학 후에는 성적장학금을 받고, 취업까지 빠르게 했다. 어릴 적엔 맹하게 다니는 것처럼 보였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 뽈뽈 거리면서 여러 활동도 하고, 주어진 임무도 특유의 감각으로 턱턱 잘 해냈다. 언니가 학보사에 들어가서 부국장을 하는 것을 보고 나 또한 학보사에 들어갔는데, 나도 의도치 않게 부국장을 하게 됐다. 언니가 국회와 시청에서 홍보담당자로서 소셜마케팅을 수행했는데, 나도 자연스럽게 그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로 인턴부터 취업까지 소셜마케팅 분야로 하게 됐다.


나는 할머니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어릴 적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시장에 가면 할머니와 닮았단 이야기를 왕왕 들었고, 친구들 사이에서 별명이 할미일 정도였으니. 주 양육자였던 할머니의 말투, 자세, 생각까지 많은 것이 나의 특성이 되었다. 지금도 혼자 있을 때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거나, 앉아있는 모양새를 보면 문득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특히 나의 고집이 센 성격은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아,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고집쟁이가 되었다.


또, 가족과 관련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아빠랑 똑 닮았다'라는 것이었다.


얼굴이든 성격이든 운동 신경이든 아빠랑 똑 닮았다고. 그래서인지 아빠에겐 왠지 모를 동질감이 있다. 아빠가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내심 아빠 편을 들게 되고, 아빠는 왜 저럴까 싶다가도 그래서 그랬겠구나! 지레짐작으로 동감을 하곤 한다. 어릴 적 아빠는 엄마가 잔소리할 때 내 편을 들어 '네가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대학 진학 즈음해서는 아빠에게 논술 과외를 받기 시작하면서 내 대학 성적까지 꼼꼼히 챙겼고, 내 대학 생활과 취업은 아빠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 애를 써왔던 것 같다. 닮았다고 생각한 만큼, 아빠가 만족할 수 있는 아바타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와는 상대적으로 '닮지 않았다'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왔다.


항상 똑 부러지고, 부지런하게, 악착같이 성공해 내는 엄마.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외향적인 성격. 친구가 많고, 그 친구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사람. 언제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 글을 남들 앞에서 공유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사람. 맏이로 태어나 가족 행사에 항상 리더 역할을 하는 것까지. 내가 두려워하는 것, 못 하는 것을 언제나 해내는 엄마였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보니, 내 성격과 엄마 성격이 닮은 구석이 많았다.


첫 번째, 모범생 같은 면. 엄마는 몇 년간 투병 생활을 했고, 그간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 사항들을 철저히 지켜왔다. 모든 약은 알람을 맞춰 정확한 시간에 먹는데, 영화 보는 중이거나 비행기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쩜 저럴까?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나 또한 그런 사람이었다. 내 인생을 돌이켜 보면 일탈도 없는 지극히 모범생다운 삶을 살았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인생에 주어진 과제들을 착실하게 수행하려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두 번째는 한 번 꽂히면 즉시 시행하는 추진력과 계획적인 면. '폭주 기관차'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나는 해야겠다 결심하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신혼여행 계획도 반나절 동안 폭풍 검색으로 모든 예약을 마쳤고, 유튜브를 시작 하겠다 마음먹고 바로 카메라를 들어 촬영하고 어설프게 편집으로 실행한 게 반나절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엄마 역시 본인이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이 있으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고, 그것을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다. 가족 행사를 준비할 때는 물론이고, 주말에 우리가 고향 집 내려가면 무엇을 할지도 엄마가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실행한다. 어릴 적엔 엄마 말대로 해야 하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계획이 있고 그대로 움직이는 게 나에게 정말 맞는다.


마지막, 상처를 받으면 그 순간에는 쿨하게 잊으려 한다는 점. 없었던 일로 생각하면서 금방 회복이 되지만, 결국 마음속에는 상처로 남아 먼 훗날 다시 꺼내어보며 마음 쓰려 한다. 그리고 그걸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한다. 화가 난 당장에는 내 감정을 말하더라도, 뒤늦게까지 마음 아파하는 내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심정일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의 많은 면을 나도 모르게 체득하고, 닮아지고 있었다. 항상 강해 보였던 엄마에게서 어른이 된 후 약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또 엄마의 모습이라고 알고 있던 면과는 다른 면을 발견하기도 한다. 특히 사회생활 시작과 함께 내 삶의 태도를 견지하게 되면서 나는 나에게서 엄마의 성향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것이든 내가 만들어 낸 가족의 얼굴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아무튼, 나는 끊임없이 또 다른 엄마의 얼굴들을 마주하고 있다.


내 성격의 토대에는 할머니를, 내 외모는 아빠를, 내 삶의 태도는 엄마를, 방향성은 언니를 닮아가고 따라간다. 나의 성정(性情)도 가족에게서 왔겠지만, 가족들의 조각 조각이 모여 나를 만들었다. 또 이제는 내 가족을 꾸리고 내 자식을 낳게 되면서, 내가 그러했듯 아이에게 나의 속성들을 물려주게 될 것이다. 엄마가 엄마의 엄마에게 물려받고, 엄마가 될 나에게 물려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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