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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Mar 01. 2021

삶과 죽음이 무서운 진짜 이유

워킹맘다이어리

새벽 세 시 반, 갑자기 남편이 커다란 머리를 내 품에 파고들며 말했다. “무서워.” 번지점프, 패러글라이딩, 공포영화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보는 다 큰 남자 무서울 게 무엇이람. 나는 이 새벽 이 머리 검은 남자가 더 무서운 것이다. “뭐가 무서워.” 유튜브에서 뭘 봤단다. 역시 유튜브가 제일 큰 문제다. 덕분에 잘 자던 잠이 깨서 날밤을 새버린 나였다. 잠결이라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학폭연예인 뉴스와 어떤 연예인의 불화설 기사를 읽다가 잔 것 같다. 젠장! 그래도 출근은 해야한다.

다음 날 퇴근 후 본가에 내려가게 되었다. 거리두기가 완화돼서 6개월 만에 하는 상봉이었다.

“여보, 새벽에 말이야. 뭘 봤다고?”

“특수청소라고 들어봤어?”

“알지.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도 있어.”

“거짓말!”

남편은 아마도 진짜 내가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나 보다. 나는 말 지어내는 걸 너무 많이 했고, 남편은 책을 읽는걸 너무 안 했다. 남편은 새벽 세 시 반까지 고독사 특수청소하는 영상을 유튜브로 봤다고 한다. 책으로 읽어도 무서운 이야기를 영상으로 봤다니 너무 용감했다. 속초까지 내려가는 차 안에서 그렇게 우리는 특수청소로 시작해 삶 다음에 우리에게 놓일 사후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는 또 똑같은 질문을 남편에게 하고 있었다.

“뭐가 무서워.”

“소속되는 게 무서워.”

소속, 소속이라니. 단어선정이 너무나 적절해서 메모장에 잊어버리지 않게 적어두었다. 남편은 이승에서 평생 소속된 채 살았는데, 저승에서도 끊임없이 소속된다는 것이 무섭다고 했다. 늦은 밤 속초에 도착했다. 집 문을 열자마자 얼굴이 누렇게 뜬 엄마의 얼굴이 나를 반겼다. 그 뒤로는 못 본 사이 더 앙상해 송장 같은 할머니가 서 있었다. 얼굴들을 보는 순간! 나는 무서웠다.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죽음에 가까이서 있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못 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딸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반장’이라는 별명과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 웃을 이야기 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엄마는 요즘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황달이라는 병에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가슴에 종양이 발견돼 4월에 작은 수술을 해야 된다고도 했다. 가끔 수술하다가 암을 발견 할 수도 있다면서 엄마 특유의 방식으로 겁을 주면서. 할머니는 내 얼굴을 가까이서 보면서 “네가 은정이니, 서영이니”라고 물었다. 같은 배에서 나온 '서현이냐, 서영이냐'도 아니고 다른 배에서 나온 은정이냐고 묻는 할머니. 할머니 치매가 더 심해졌구나 싶어 나는 또 무서웠다. 그런 나를 보며 아빠는 할머니가 일부러 그러는 것이라 했다. 더 자주오라고 겁을 주는 것이라고. 이렇게 차로 왕복 여섯시간 정도 떨어져 사는 가족들에겐 서로의 얼굴이란 젤리처럼 굳어버린 고깃국처럼 되지 않기 위해 끓이고 저어주고 불 앞에 서서 계속 들여다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엄마는 얼마나 일하는 게 힘들면 황달에 걸렸을까. 엄마의 누런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정년퇴임이 4년밖에 안 남은 사람에게도 일이 그렇게 고된 것구나. “일하는 게 신장이식 수술할 때보다 더 힘든 거야. 살면서 제일 힘들어.” 엄마는 또 무서운 말을 했다. 오죽 힘들면 죽을 고비였던 이식수술보다 일이 힘이 든다는 걸까. 내가 무서운 건 그렇게 힘든데도 일을 멈추지 못 하는 엄마다. 엄마에겐 일이란 도대체 뭘까. 죽을만큼 힘든 스트레스를 받고서도 버티는 삶도, 그렇다고 퇴임을 앞당겨 조기퇴임하는 것도 다 별로인 것이다.

소속된다는 것. 책임질 일이 있다는 것. 무서운 일이다. 나에게 일이란 무엇일까, 또 반문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하고 싶은 건 아닌데. 어떤 때에는 출구가 없어서 그저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어야만 하는 때도 있는거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선택한 무언가 때문에 내 소속이 지어진다. 삶이란 거대한 소속체인 것이고, 그 안에 크고 작은 소속체들이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지난 밤, 아이가 배탈이 나서 밤새 게워내다 결국 새벽에 응급실을 갔다. 같이 먹은 음식이 잘못됐건지 나도 밤새 토하고 오한으로 몸을 부르르 떨며 새벽을 보냈다. 내 속도 편치 않은데 축 처진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향하면서 생각했다. 죽어서도 정말 소속이 있을까. 내가 기꺼이 맨 십자가처럼 어떨 땐 내 자의로 선택한 것들이지만 그러나 때로는 자의가 아닌 선택들도 있는 것인데. 무엇이든 소속은 무서운 것이다. 그 끝이 있다는 것. 혹은 그 끝에 가까이 와 있다는 것들도 무섭고, 끝날 것 같은 소속도 결국 무한대로 이어지는 것이라는 게 무서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제일 무서운건 멈추지 못 하는 나다. 나는 또 이렇게 밤을 새고 아픈 배를 부여잡고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지어내는 소속체들에게 평생, 어쩌면 죽어서도 이어질 그 소속체들에게 둘러쌓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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