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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뜻뜻 Apr 20. 2024

살날보다 산 날이 많은.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예사로운 아름다움도 살날보다 산 날이 많은 어느 시기와 만나면 깜짝 놀랄 빼어남으로 빛날 수 있다는 신기한 발견을 올해의 행운으로 꼽으며 1982년이여 안녕.(P118)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하길, 정직하길, 조그만한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P216)


글 쓰는 것을 고민하는 소설가, 아들을 잃은 어머니, 남편을 여읜 여자, 손주를 사랑한 외할머니. 이렇게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이가 있다. 박완서 작가는 자신의 이름에 담긴 이야기들을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 너무 수다스럽지 않고 너무 과묵하지 않게 풀어놓는다. 그가 남긴 산문 660여 편 중 대표작 35편이 실려있다. 그 중 죽음에 대한 담담한 글들은 그의 사후에 읽힘으로써 떠나간 이의 뜻을 깊게 생각할 수 있게끔 한다.



에세이는 지극히 사적인 글로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에세이는 공감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30년대 일제강점기를 겪었던 일, 50년대 6.25를 겪었던 일 등. 이 모든 경험을 겪어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은 지금, 그의 글을 '공감'이라는 범주 안에 넣기에는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에세이가 잘 읽히는 이유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섬길 어른'으로서 앞으로 살아가면서 겪을 이야기들을 해준다는 것에 있다.



삶에 대한 그의 생각이 책에 곱다시 놓여있었다. 그의 글 중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는 문장이 퍽 와 닿는다. 그 문장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진실보다 거짓으로 마음을 내비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탓에 생긴 생채기들은 버즘처럼 일어나서 다른 것들을 괴롭히기를 부지기수였다. 그는 이런 나에게, 가망 없는 마음일지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진실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말한다. 그 진실들 속에서 행복감을 느껴보라고 권한다.



그는 애틋하게도 어머니와 닮아있다. 그럴 것이 '불혹'의 나이에 <나목>으로 당선되어 작가로 활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명절날 학교성적 이야기 대신 못 본 동안 자란 키를 물어본다는 글과 자식과 손주에 대한 사랑이 담긴 글들은 어머니를 생각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군대에서 읽었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을 접했다. 그때부터 매일 부모님께 전화드렸다. 그의 글이 철없던 아들을 무려 효자(?)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글은 이따금 밭일로 풀향이 몸에 밴 어머니를 생각나게 한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그 생전에 읽은 책이기에 '죽음'에 관한 글들은 크게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1년 뒤 그 책이 담낭암 투병 중 별세한 그의 마지막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죽음과 관련된 글들을 기억 속에서 더듬기 시작했다. "내가 그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듣고 보내오는 편지가 거의 없었다. 나는 허망감을 짓씹었다"는 글을 읽고 나니, 그의 고독함에 무게를 더 해드린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번졌다. 그렇기에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에 수록된 '죽음'과 관련된 글에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추(醜)가 없다면 미(美)도 없듯이, 슬픔이 있으니까 기쁨이 있듯이, 죽음이 없다면 우리가 어찌 살았다 할 것인가."라는 글을 통해 그는 죽음을 달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줄곧 생각해왔던 것 같다. '낙엽이 지는 가을에', '인생의 허무와 화해할 수 있는 일몰 무렵에', '집에서 평화롭게 소멸하고 싶다'는 문장들은 서로 뒤엉켜 흐릿하게 보인다. 그렇게 그는 나이 일흔에 아들이 있는 고향으로 표표히 떠나갔다.



박완서 작가는 떠났지만, 글은 오롯이 남았다. 남편과 아들을 여읜 삶을 버티게 해주었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며 쓴 글' 들은 엮이고 엮여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버티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는 나이 듦을 "이 세상에 섬길 어른이 없어졌다는 건 이승에서 가장 처량해진 나이"로 표현했다. 다행히도 그가 남긴 글 덕분에 독자들은 '박완서'라는 사람을 영원히 '섬길 어른'으로 여길 것이므로 처량함을 겪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의 글을 지금, 다시 만난 것은 '올해의 행운'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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