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사랑하고, 알게 되고, 보게 되니
- 쓸모없어 보이는 취미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순간들.
- 게임으로 '연민'을, 캠핑으로 '사랑'을, 독서로 '지식'을 배우다.
- 취미의 쓸모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기록한 안내서.
우리는 종종 취미를 '쓸모없는 것'이라고 치부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이 브런치북은 평범해 보이는 게임, 캠핑, 독서를 통해 취미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탐구합니다. 취미가 어떻게 저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그 여정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의 취미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책을 읽어 내려가며, 나는 역사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꼈다."
"내가 보는 세상은 더 넓어지고, 더 깊어졌으며, 더 다채로워졌다."
어느새 책은 나에게 물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하루라도 읽지 않으면 갈증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동료가 내가 읽은 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었을 때, 나는 말문이 막혔다.
'좋았다'는 막연한 감상 이상으로 느낀 점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을 좋아한다고 여겼지만, 어쩌면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책을 좋아하는 지인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책 내용을 삶에 적용하면 자연스럽게 기억에 남지 않을까요?"라고 조언했다.
그 순간, 책을 깊이 이해하고 오래 간직하려면, 단순한 독서를 넘어 그 내용을 일상에서 실천하고 몸소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세 권의 책을 '경험'해 보기로 결심했다.
첫 번째로 '경험'한 책은 현기영의 『순이 삼촌』이었다. 이 소설은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인 제주 4·3 사건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1940년대 후반에 일어난 이 비극적 사건은 정치적 혼란 속에서 제주도민 열 명 중 한 명이 목숨을 잃은 참혹한 역사였다.
책을 읽어 내려가며, 나는 역사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꼈다. 특히 사건 당시 가족을 모두 잃고 겨우 살아남아 정신적 충격에 시달리는 '순이 삼촌'을 묘사한 문장들이 가슴을 저몄다. 그녀의 침묵 속에 묻힌 비명이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역사책 외에는 알 길 없는 역사적 사건을 소설로 '경험'하면서, 나는 묘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학교 교과서에 역사는 몇 년도에 일어난 사건이며, 그 사건이 어떤 사건으로 이어졌다는 것과 같은 명료한 문장들로 서술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글로만 구성된 역사는 단순한 정보로만 다가왔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건들은 여전히 먼 이야기로 느껴졌다.
반면 소설은 교과서보다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인물들의 감정, 당시의 분위기, 그리고 사건의 세세한 맥락을 통해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듯했다. 마치 그 장면에 내가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고, 장면을 상상하니 그곳에 가보고 싶어졌다. 제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고, 지도를 펼쳐서 제주 4·3 사건의 배경이 되었던 학살터를 붉은색으로 마킹했다. 어느새 제주도 지도가 붉게 변해 있었다.
『순이 삼촌』을 손에 쥐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제주시에서 일주동로를 따라서 김녕항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조천읍 '너븐숭이 기념관'이었다. 『순이 삼촌』의 배경이 되는 학살 사건이 일어난 곳이었다. 주민들이 밭일하다가 돌아올 때 쉬어 가던 넓은 팡이 있어서 '너분숭이'라고 불린 이곳에는 학살 사건에 희생당한 스무여 기의 아기 무덤이 놓여 있었다.
마침, 방문한 계절이 봄이었기에 노란 수선화꽃이 무덤에 헌화처럼 드리우고 있었다. 그 뒤로 붉은 화산송이와 까만 현무암 위로 비석들이 사람인 듯 누워있었다. 자세히 보니 『순이 삼촌』의 문장들이 비석에 새겨져 있었다. 문장을 소리 내어 읽으니, 그때의 사건이 눈앞에 재생되는 것 같았다.
제주의 오름을 사랑해 자주 찾곤 했다. 수백 명의 무고한 생명이 스러진 곳이 바로 내가 즐겨 찾던 그 오름이었다는 사실이 나를 충격에 빠트렸다. 누군가에겐 평생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에서, 즐거움만을 누렸다는 사실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동시에, 이 부끄러움이 영원한 죄책감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비극적 역사를 마주하고, 그것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죄책감을 '책임감'으로 승화시켜야 했다. 역사의 피해자가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직접 경험한 것들을 기억하고, 이를 계기로 숨겨진 역사의 진실에 더 주의 깊게 눈을 돌리기로 다짐했다. 이렇게 소설 속 아픔은 생생한 경험이 되어, 내 마음에 역사의 무게를 새겼다.
두 번째로 '경험'한 책은 페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이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이자 독일의 철학자인 비에리가 2011년 그라츠 아카데미에서 행한 강연을 기록한 이 책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책임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들을 예리하게 분석하는 것이 특징이다.
비에리는 '자기 결정'이란 단순히 외부의 제약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기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결정'의 의미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비에리는 철학의 복잡한 개념들을 마치 오랜 친구와 대화를 나누듯 쉽고 친근하게 풀어냈다. '자기 결정'이 단순히 개인의 욕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타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는 것이라는 설명은 큰 울림을 주었다.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끊임없이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나는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지역아동센터에 후원을 시작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해를 넘어 체험을 통해 더 넓은 문화를 알아가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집 근처에 지역아동센터는 오래된 상가의 2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좁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바닥이 군데군데 찢어진 폴더매트가 깔린 공간이 나왔다. 입구에서 서성거리니 선생님이 나와서 무슨 일로 오셨는지 말을 걸었다.
후원 문의를 드리려고 왔다고 말씀드리니, 들어오시라는 말과 함께 음료를 내주셨다. 선생님은 이곳은 부모로부터 돌봄을 받기 어려운 아홉 명의 초등학생과 두 명의 고등학생이 이용한다고 했다. 그때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고구마 과자를 내밀었다. 받으며 고맙다고 말하려는 찰나, 아이는 후다닥 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물끄러미 아이가 사라진 쪽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선생님께 매달 후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기 결정』은 나에게 삶을 돌아보는 거울이자,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안내자가 되었다. 이 여정의 결과는 미지수지만, 나는 이제 내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것이 비에리가 말한 '자기 결정의 삶'의 시작점이었다.
지역아동센터 후원 경험은 자기 결정의 의미를 새롭게 각인시켰다. 그의 말처럼, 우리의 선택은 개인의 영역을 넘어 타인과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진정한 자유는 이러한 영향력을 인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지역아동센터 후원이라는 작은 결정이 누군가의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은 큰 의미가 있었다. 이렇게 철학적 개념은 구체적인 행동이 되어, 내 삶에 의미를 부여했다.
마지막으로 '경험'한 책은 이미화의 『수어 : 손으로 만든 표정의 말들』이었다. 이 책은 영화 에세이스트로 잘 알려진 작가가 순수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수어를 배우며 겪은 경험과 통찰을 담아냈다. 오래된 창문의 먼지를 닦아내고 처음으로 바깥세상을 본 것처럼,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수어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보여주었다.
책을 통해 나는 수어가 단순히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니라, 풍부한 표현과 문화를 담은 독립적인 언어임을 알게 되었다. 캠핑장에서 만났던 코다(CODA) 가족이 생각났다.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 2016년 수어가 한국의 제2 공용어로 공식 인정받아 '수화(手話)'에서 '수어(手語)'로 그 명칭이 변경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단순한 이름의 변화가 아닌, 농인들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진전을 의미했다.
작가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라는 말을 인용하며, 수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수어가 일반적인 선형적, 시간적 언어와 달리 3차원 공간을 활용한 동시적, 다층적 언어라는 점이 특히 흥미로웠다. 수어가 표정과 손동작을 함께 사용하여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비언어적 소통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수어는 어쩌면 '거짓말을 하기 어려운 언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동작으로는 말을 하면서 표정으로 다른 감정을 완전히 숨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어를 배우고 싶다는 호기심이 일었다. 그 전에 수어를 가르치는 학교인 서울 농학교에 가보고 싶어졌다.
서울 농학교는 경복궁 서쪽 서촌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말의 고요 속에 방문한 학교는 적막했다. 교문을 들어서자 독특한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숫자 '100'을 수어로 표현한 손 모양의 이 동상은 학교의 백 년 넘는 역사와 전통을 말해주고 있었다.
학교를 둘러보던 중, 놀이터의 경고문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미끄럼틀 정전기 주의 - 보청기 손상 위험"이라는 문구는 이곳이 특별한 장소임을 일깨워주었다. 농학교를 다녀간 후, 경기 학습 포털의 무료 강좌로 수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화면 속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 했다. '안녕하세요'라는 간단한 인사조차 생각보다 어려웠다. 손의 모양과 위치, 움직임의 속도와 방향, 그리고 동시에 표정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은 수어가 단순한 손짓이 아닌 전신을 사용하는 총체적인 언어임을 보여주었다.
서울 농학교 방문과 수어 학습을 통해, 소리 없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풍부한 의사소통 방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는 언어에 대한 나의 협소한 인식을 순식간에 확장시켰다. 손짓과 표정 하나하나에 담긴 깊은 의미를 이해하면서, 언어의 본질이 단순한 음성이 아닌 '의미의 전달'에 있음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수어를 꾸준히 배우고 농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로 마음먹었다.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에게도 수어의 아름다움을 열정적으로 알리고 싶어졌다. 마치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이 소중한 가치를 모두와 나누고 싶었다. 이렇게 책 속 언어는 손끝의 춤이 되어, 내 삶에 소통의 문을 열어주었다.
문화재청장을 지냈던 유홍준 교수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인다.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조선 정조 때 문장가 유한준의 명언을 재해석한 것으로, 사랑, 지식, 관점의 연결을 보여준다.
'보는 것'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체험이 필수적이다. 직접 경험을 통해 지식을 검증하고 삶에 적용할 때 비로소 새로운 관점을 얻고 시야를 넓힐 수 있다. 체험과 경험을 통해 『순이 삼촌』으로 역사의 그늘을, 『자기 결정』으로 선택의 책임을, 『수어: 손으로 만든 표정의 말들』로 언어의 다양성을 배웠다.
이 세 권의 책과 그에 따른 경험들은 나의 세계관을 변화시켰다. 역사, 개인의 선택, 언어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사랑하고, 알게 되고, 보게 되는' 과정을 거쳤다. 이제 내가 보는 세상은 전과 같지 않다. 더 넓어지고, 더 깊어졌으며, 더 다채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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