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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3장 나의 모임

[#독서] 마음에 대한 경청이라는 것을

by 김뜻뜻

+브런치북 소개

- 쓸모없어 보이는 취미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순간들.

- 게임으로 '연민'을, 캠핑으로 '사랑'을, 독서로 '지식'을 배우다.

- 취미의 쓸모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기록한 안내서.

우리는 종종 취미를 '쓸모없는 것'이라고 치부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이 브런치북은 평범해 보이는 게임, 캠핑, 독서를 통해 취미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탐구합니다. 취미가 어떻게 저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그 여정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의 취미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곳, 우리들의 독서모임


"책장을 넘길 때마다 누군가와 이 감동과 생각을 나누고 싶다는 갈증이 일었다."


"우리는 그저 허물없이, 편견 없이, 대립 없이 생각을 풀어놓으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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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나의 모임 : 마음에 대한 경청이라는 것을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지 3개월, 어느새 혼자만의 독서 시간이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누군가와 이 감동과 생각을 나누고 싶다는 갈증이 일었다.


  책을 좋아하는 지인이 독서모임 참여를 제안했고, 호기심에 이끌려 찾아보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발견한 독서모임은 지정 도서, 자유 도서 등 예상보다 다양했다. 서울 곳곳에 크고 작은 모임들이 있었고, 특히 강남, 사당, 홍대 지역에 모임이 많았다.


  안타깝게도 집 근처에는 독서모임이 없었지만, 이는 오히려 낯선 동네를 탐험할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와 맞는 독서모임을 찾기 위해 두 곳에 참여해 보기로 했다.


  처음에 간 독서모임은 지정 도서를 함께 읽는 모임이었다. 조용한 카페에 모여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품에 안고 앉았다. 한 명씩 돌아가며 생각을 나누는 동안, 같은 책을 읽고도 이토록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각자 삶의 경험이 책 속에 녹아 들어, 하나의 이야기가 수많은 색채를 띠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다음으로 참여한 독서모임은 자유 독서모임이었다. 이번에는 각자가 선택한 책들이 테이블 위에 모였다.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여러 이야기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때로는 대화가 한곳으로 모이지 않고 흩어지는 듯한 아쉬움도 있었다. 두 모임 모두 장단점이 있었지만, 공통점은 단체 채팅방에 참여한 정해진 인원들만 모이는 반강제성 모임이라는 점이었다.


  두 독서모임 경험을 토대로, 나는 독서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모임장 주도, 자유 독서, 강제성 없는 개방형 구조를 핵심 원칙으로 삼았다. 강제성 없는 개방형 모임을 위해 단체채팅방 대신 카카오톡의 채널 계정을 활용했다.


  채널 계정 이름은 '독서모임북사'라 정했다. 모임은 매주 토요일 오후 합정역 근처 카페에서 열기로 했고, 참여는 채널로 일대일 채팅을 통해 신청하면 되었다. 참여비는 없었고, 원하는 날짜에 자유롭게 신청할 수 있어 부담이 적었다.


  자유 독서모임 형식으로, 참여자가 원하는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별도의 채팅방 가입이 불필요하고, 나이, 성별, 직업 등의 제한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어 독서 후 생각을 나누는 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다. 다만 이런 개방적 구조가 추후 모임 운영에 어려움을 주기도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채널을 등록했다. 하루가 지나자, 채널 친구 수가 오십 명으로 불어났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선착순으로 참여자를 받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채널 등록 이틀 만에 모임 인원이 가득 찼다.


  드디어 첫 모임 날이 밝았다. 합정역 근처의 시끌벅적한 카페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우면서도 기대감으로 가벼웠다. 처음 만난 다섯 명과 마주했을 때, 긴장감이 감돌았다. 날씨와 회사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는 곧 각자가 가져온 책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카페의 소음 속에서도 책을 이야기하는 눈빛만은 선명히 보였다. 그렇게 어설프고 어색하지만 설렘 가득한 첫 모임이 마무리되었다.


  첫 모임을 시작으로 4년이 흘렀다. 채널 친구 수는 삼백 명을 넘어섰고, 예순두 번의 모임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모임의 규칙들이 자리를 잡아갔다. 참여자들의 이야기가 바람에 흩어지지 않도록, 책 소개가 끝나면 내가 마무리하는 말로 실을 묶었다.


  모임 규칙을 설명하는 모임 설명 카드를 직접 디자인했다. 유의 사항과 규칙, 자기소개 방식을 정성스레 적었다. "저기요, 이쪽 분"이란 말 대신 이름이 공간을 울리게 했다. 자리 앞에 놓인 이름표가 그 시작이었다. 모임이 저물 때마다 후기를 썼고, 참여자들과 나눴다.


  여러 번 발걸음한 이에겐 연말, 도서 상품권으로 마음을 전했다. 여름밤의 '야간 책맥'은 책과 맥주 거품을 뒤섞었다. 한강에서의 '한강 독서'는 강물 위에 글자를 띄웠다. 4년 동안 매주, 열정은 4년 내내 한결같았다.


  모임을 4년간 운영하며 백 명에 가까운 다양한 얼굴들을 마주했다. 성별, 나이, 직업, 지역의 경계를 허물었기에 더욱 그랬다. 갓 대학 문을 연 스무 살 새내기부터 늦둥이 아들을 군대 보낸 연세 지긋한 어르신까지. 언제 이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싶었다.


  인생을 살아온 궤적은 저마다 달랐다. 그 궤적들을 느긋한 카페에서 들여다보는 일은 행운과 다름없었다. 멀리서 본 궤적의 옳고 그름은 각자의 몫이었다. 우리는 그저 허물없이, 편견 없이, 대립 없이 생각을 풀어놓으면 됐다.


  가볍디가벼운 모임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주 찾아오는 이들과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다. 그 중엔 권재님, 윤혜님, 기준님이 있었다. 4년간 모임을 이어갈 수 있게 한 든든한 기둥들이었다.


  권재님을 만난 것은 모임 초기인 두 번째 모임이었다. 그는 늘 검은색의 비슷한 형태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하는 말은 모임마다 달랐다. 유쾌하면서도 때론 진중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내가 시시껄렁한 발언을 하면 받아주면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해주었다.


  동시에 이야기가 흩어지면 다른 길로 새지 않도록 모아주는 보조 모임장 역할도 맡았다.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아군이 생긴 느낌이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큰 힘이 되었다. 그러던 중 그는 회사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게 되었다. 모임 참여가 어려워지면서 점점 멀어졌다. 아쉬움이 컸지만, 그 덕분에 초기를 넘어서 무사히 운영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윤혜님과의 만남도 권재님과 비슷한 시기였다. 물 빠진 청바지에 와이셔츠를 즐겨 입던 수수한 그녀에겐 반전이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표정 변화 없는 무뚝뚝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재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것을 대수롭게 말하는 재주가 있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뜬금없이 풀어놓곤 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언제나 예상을 벗어났고,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그녀만의 특별한 재주는 무거운 철학책도 가벼운 에세이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 덕에 모임의 분위기는 늘 밝고 가벼웠다.


  그녀는 다른 참여자들에게 모임의 중요성을 말하고 나를 칭찬하며 장기 고객을 끌어오는 재주도 있었다. 그녀의 입소문 덕에 몇몇은 윤혜님처럼 단골이 되었다. 윤혜님과는 지금도 연락하며 지낸다. 가끔 책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근황을 묻는다. 모임을 다시 연다면 참여하겠다고 했다.


  기준님을 만난 것은 모임의 끝을 향하던 예순 번째 모임이었다. 그는 운동으로 다부진 몸과 뿔테 안경을 통해 감수성이 풍부한 얼굴이 묘하게 비대칭을 이룬 사람이었다. 말수가 적었지만, 매력적인 면이 있었다.


  그는 감수성을 가진 사람답게 소설만 읽었다. 편독을 독서모임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지만, 실상은 자신이 읽고 있는 재미있는 소설을 소개하기 위해 나온 사람 같았다. 그는 모임을 몇 번 나오더니, 사실 독서모임보다는 모임장님의 책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참여한다고 넌지시 말했다. 누군가에게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하니 기분이 퍽 좋아졌다.


  기준님도 윤혜님처럼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는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가끔은 책 추천도 한다. 모임을 다시 연다면 참여는 못 할 것 같지만 응원하겠다고 했다. 그의 말에서 아쉬움과 따뜻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밖에 기억에 남는 사람은 사이비 종교를 믿는 이였다. 일종의 '빌런'이었다. 무더운 여름날,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참여했다. 깔끔한 정장 차림에 구두를 신고 나타났다. 결혼식을 다녀왔다며, 입은 옷처럼 깔끔하게 자신이 가져온 소설을 이야기하고 갔다. 다음 모임에도 정장 차림, 구두를 신고 왔다. 또 결혼식이 있나 했는데, 이번에 든 책이 심상치 않았다.


  출판된 지 약 30년이 지나 절판된 해외 명상 책이었다. 그는 명상법을 설명하다, 자신이 믿는 신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신을 믿어야 명상을 잘할 수 있다는 궤변을 털어놓더니, 각자의 종교를 말해보라 했다. 참여자들은 모두 곤란한 듯 나를 쳐다봤다. 나는 말하기 불편한 이야기는 가능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말만 하다 갑자기 일이 있다며 자리를 떠났다.


  사건 이후, 모임 규칙을 보완했다. 종교와 정치 이야기를 금지하고, 참여 시 가져올 책을 미리 알리도록 했다. 하지만 이는 완벽한 방어책이 되지 못했다. 특정 상품 홍보, 과도한 개인사 공유 등 다양한 빌런들이 여전히 나타났다. '개방형 모임'을 포기하는 것도 고려했으나, 이미 우리의 정체성이 되어 쉽게 바꿀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조건부 유료 모임으로 전환했다. 참여 신청 시 비용을 받고 실제 참석 시 환불해 주는 방식이었다. 이에 따라 빌런은 줄었지만, 전체 참여자 수도 많이 감소했다. 모임의 열기가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고, 코로나19 확산으로 운영은 더욱 어려워졌다. 결국 우리는 독서모임을 지속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코로나의 그림자가 걷혀갔고, 우리는 조심스레 모임의 문을 다시 열었다. 예전의 활기찬 모습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참여하는 이들의 따뜻한 열정이 모임의 불씨를 지켜냈다. 그러던 중 이직으로 인한 이사를 하게 되어 모임 장소였던 합정역에서 멀어지면서 운영이 어려워졌다.


  더욱이 회사일과 업무 공부라는 과제들이 나를 바쁘게 만들었고, 모임을 이끌어갈 여력이 점차 부족해졌다. 내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면서 한때 뜨겁게 타올랐던 독서모임에 대한 애정도 서서히 식어갔다. 결단의 순간이 다가왔다. 아쉬움이 컸지만, 때를 알고 그만두는 것도 하나의 지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4주년 기념 모임을 하고, 몇 번의 모임을 더한 뒤 모임 영구 종료 메시지를 채널에 있는 분들에게 보냈다. 그렇게 나의 '독서모임북사'는 마지막 장을 덮었다.


  독서 모임을 운영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모임에 참여한 이들의 이야기는 각자 고유한 빛깔을 지녔다. 그 빛깔들을 조화롭게 섞어가며 서로를 탐험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다양한 관점의 가치를 몸소 체험했다. 질문하고 경청하는 기술을 익히면서, 나의 이해력이 깊어졌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말에 대한 경청을 넘어 마음에 대한 경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통해서 모임의 대화는 더욱 풍성해졌다. 한 권의 책을 들고 찾아온 이들로 독서 모임은 안락한 사랑방이 되었고, 때로는 마음을 달래주는 고해성사실이 되었다. 책 속 이야기를 거닐며, 나는 마음을 치유하는 힘을 사람들로부터 발견했다. 이는 독서 모임이 내게 준 소중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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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3부 4장 나의 쓰기 : 독서의 세계 안에

+글쓰기라는 항해를 시작하며, 펜을 노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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