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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4장 나의 쓰기

[#독서] 독서의 세계 안에

by 김뜻뜻

+브런치북 소개

- 쓸모없어 보이는 취미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순간들.

- 게임으로 '연민'을, 캠핑으로 '사랑'을, 독서로 '지식'을 배우다.

- 취미의 쓸모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기록한 안내서.

우리는 종종 취미를 '쓸모없는 것'이라고 치부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이 브런치북은 평범해 보이는 게임, 캠핑, 독서를 통해 취미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탐구합니다. 취미가 어떻게 저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그 여정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의 취미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글쓰기라는 항해를 시작하며, 펜을 노 삼아.


""글쓰기는 내게도 '넘을 수 없는 벽에다 문을 만들고, 그 문을 여는 행위'였다."


"쓰기는 분명 다른 세계였지만, 그것은 독서의 세계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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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나의 쓰기 : 독서의 세계 안에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글을 쓰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산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숨 쉬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처럼, 혹은 매일 정원을 가꾸다 보면 어느새 식물의 속삭임을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책 속에서 만난 좋은 문장들은 보물을 발견한 듯 반가워 표시를 해 두고 정성스레 옮겨 적었다. 그렇게 모은 지식의 조각들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여갔고, 때때로 그 서랍을 열어 꺼내 먹었다.


  그럴 때마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도록 머물 수 있는 문장을 쓰고 싶다는 바람이 솟아올랐다. 책을 읽는 동안 내 안에 쌓인 문장들은 어느새 마음 밖으로 삐죽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 자라난 글쓰기의 싹이었다.


  머릿속 생각을 글로 옮기는 일은 안갯속에서 길을 찾는 것 같았다. 각 문장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한 줄도 쓰지 못할 때면 답답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래서 독서에서 만난 인상 깊은 문장들을 내 방식대로 바꿔보기로 했다. 『스토너』의 '지혜를 생각했지만, 발견한 것은 무지'라는 구절을 '그는 진리를 향해 달렸지만, 인생의 끝에서 마주한 건 의문뿐이었다'로.


  이렇게 바꾼 문장이 원래의 맥락과 어우러질 때면 퍼즐 조각을 맞춘 듯한 뿌듯함이 가슴을 채웠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문장 수집으로, 그리고 그 문장들을 재해석하는 놀이로 이어졌고, 그 과정은 나를 글쓰기의 세계로 이끌었다.


  나의 최초의 쓰기는 독후감에서 시작되었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독후감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내게 가장 친숙한 글쓰기 형태였다.


  줄거리를 요약하기보다는, 책을 읽으며 수집한 문장들과 그에 대한 나의 사색을 주로 담았다. 독후감을 쓰면서 글쓰기의 어려움은 '분량'이었다. 간결한 문장은 자신 있었지만, 긴 호흡의 글을 쓰는 것은 낯설고 어려웠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나만의 독후감 구조를 만들었다. 세 개의 단락으로 나누어 처음은 책과 작가 소개, 가운데는 인상 깊었던 문장에 대한 내 생각, 마지막으로 책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담았다. 이런 구조는 마치 글쓰기의 지도와도 같아서, 점차 독후감 쓰기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모든 책의 독후감을 한 틀에 맞추진 않았다. 존 월리엄스의 『스토너』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그 특별한 예였다. 일반적인 구조를 벗어나 소설 속 주인공에게 쓰는 편지 형식을 택했다.


  사회를 살아가며, 삶의 의미를 찾고자 애쓰는 그들의 내면의 고독은 나의 '삶의 변곡점'과 묘하게 겹쳤다. 서간체로 쓴 독후감에서 소설 속 인물들을 마치 오랜 친구처럼 대했다. 스토너에게, 요조에게 편지를 쓰며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안부를 묻는 척하며 사실은 내 안녕을 확인했다. 그렇게 글을 써내려 가다 보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마치 오랫동안 나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누군가와 나뉜 것처럼 편안해졌다.


  독후감을 쓰며 나는 점차 내 마음과 감정을 글에 담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간의 글들을 돌아보니, 단순한 책 요약이나 감상문을 넘어 책을 통해 얻은 통찰과 사고를 담아내는 독서 에세이로 변모해 있었다.


  아직은 미숙하고 부족하지만,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피드백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글을 공개함으로써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싶었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독서 전용 계정을 만들어 조금씩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관심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공개된 장소에 글을 올린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조금씩 글쓰기의 용기를 얻어갔다.


  나의 두 번째 글쓰기는 독서모임에서 비롯되었다. 여섯 명이 각기 다른 책을 읽고 오는 자유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기록하는 형태의 글쓰기를 경험했다. 이는 여러 색깔의 실로 하나의 천을 짜는 것과 같았다.


  모임 후기를 쓰는 목적은 대화를 보존하고 신규 참여자를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맛집 리뷰가 방문객을 끌어들이듯, 나의 후기가 누군가의 발걸음을 우리 모임으로 이끌기를 바랐다.


  첫 모임 후기를 쓰려니 막막했다. 회의록처럼 대화를 그대로 옮길지, 각 책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할지 고민되었다. 좋은 후기의 기준을 찾고자 다른 독서모임의 글들을 살펴보았지만, 대부분이 모임 사진과 '이번 모임도 너무 좋았다'는 짧은 문장으로 마무리되어 있었다.


  모임장으로서 후기를 쓰는 일은 줄타기와 같았다. '좋았다'는 감상은 너무 얕았고, 모든 대화를 옮기자니 불필요한 내용이 넘쳐났다. 이 고민은 모임이 거듭될수록 깊어졌고, 후기 글의 형태도 진화했다.


  첫 시도는 모든 책을 나열하고 각자의 책 소개를 발췌해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모임 내용 파악과 기록에는 좋았지만, 분위기를 담지 못해 홍보 효과가 미미했다.


  다음으로는 책 소개에 이어진 질문과 답변을 추가했다. 이로써 모임의 분위기와 참여자들 간 상호작용을 담아낼 수 있었다. 수정된 후기는 책의 내용, 참여자들의 생각, 모임의 분위기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하나의 입체적인 이야기로 탄생했다.


  시간이 흘러 모임 후기 글의 존재감이 희미해지자, 나는 색다른 시도의 필요성을 느꼈다. 한 참여자의 말에서 영감을 얻어, '이야기 엮기'라는 형식을 고안했다.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운명』, 『예민함이라는 무기』처럼 얼핏 무관해 보이는 책들을 '운명 속에서의 불안'이라는 주제로 모으는 식이었다.


  이는 단순 요약이 아닌 창의력이 있어야 하는 도전이었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운명이라 생각되었던 불안들이 줄어들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그날의 모임을 갈무리했다. 이 한 줄에 세 권의 책과 우리의 대화가 응축되었다. 다행히 이 새 형식은 모임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고, 매번 다른 책들을 하나로 엮는 과정은 창의적 글쓰기의 연습 기회가 되었다.


  나의 세 번째 글쓰기는 소모임에서 시작되었다. 그동안의 독서 에세이와 모임 후기가 경험 후의 감상문이었다면, 이제는 온전히 나만의 생각을 담아내고 싶은 갈망이 커지고 있었다.


  마침, 소모임 앱의 '글쓰기' 챌린지 콘텐츠를 발견했다. 이는 나에게 여러 의미가 있었다. 우선, 온전히 내 생각을 담아낼 기회였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글 쓰는 습관을 들일 좋은 방법이었다. 마지막으로, 다른 이들과 함께 글을 쓰며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었다.


  챌린지라는 형식은 적당한 압박감과 자유를 주었다. 정해진 기간 안에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었지만, 주제나 형식에 제약이 없어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글쓰기 챌린지 참여는 나에게 말 그대로 '도전'이었다. 매주 세 번 이상 글을 쓰고 인증하는 것이 목표였다. 챌린지는 '사랑', '취미' 같은 어휘 글감을 제공했다. 처음엔 일기처럼 하루의 소소한 일상을 썼다.


  점차 적응하면서 소설, 시 등 다양한 형태로 글감에 맞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최소 요구사항을 넘어서 매일 아침 출근 전 500자 분량의 글을 썼다. 이렇게 글을 쓰며 하루를 시작하는 습관은 일상에 활력이 되었다.


  약 3개월 동안 매일 글을 쓰면서 변화를 느꼈다. 처음엔 어색하고 힘들었던 글쓰기가 점차 자연스러워졌고, 때로는 기대되는 순간이 되기도 했다. 매일 조금씩 근육을 키우는 것처럼, 나의 글쓰기 능력도 조금씩 성장해 가고 있었다.


  나의 네 번째 글쓰기는 글쓰기 플랫폼에서 시작되었다. 플랫폼 '브런치'는 전업 작가가 아닌 일반인도 작가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글을 공개하려면 작가 인증이 필요했다. 꾸준히 글을 쓰고 있었지만, '작가'라는 단어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졌다. 내 글이 끄적이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플랫폼의 글들을 살펴보니 내가 쓸 수 있는 짧은 에세이와 문장들이 많았다. 용기를 내어 전에 쓴 독서 에세이 두 편으로 작가 인증을 신청했다. 이틀 후 인증되었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의 놀라움은 컸다. 이렇게 나는 작가라는 이름이 붙은 내 글쓰기 공간을 갖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공간을 얻은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내 글쓰기에 대한 인정이자, 시작점이었다.


  빈 도화지 앞에서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했다. 나만의 이야기를 펼칠 생각에 설렘이 가득했다. 플랫폼의 출판 기능으로 그동안 쓴 독서 에세이를 모두 등록했다. 처음엔 조회 수가 천을 넘어서며 많은 이들의 관심에 감사했다.


  하지만 그 열기는 오래가지 않았고, 이후 글들은 조회 수와 팔로워 수가 정체되었다. 고민 끝에 이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내 글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여겼다. 매주 일요일에 독서 에세이를, 화요일에는 시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플랫폼과 별개로 매일 책을 읽고 짧은 글을 쓰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독서 에세이에서 시로 영역을 확장하며, 글쓰기 스펙트럼도 넓어졌다. 때론 반응이 적어 실망도 했지만, 꾸준히 글을 쓰고 공유하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어느덧 플랫폼에 올린 글이 60개를 넘어섰다. 나만의 보물창고가 생긴 것 같았다. 전에는 다른 작가들의 문장을 모았는데, 이제는 내가 쓴 문장들을 모으고 있었다. 뭔가 다 가진 듯한 느낌에 만족스럽고 행복했다.


  지인과 동료에게 글쓰기 플랫폼에서 활동 중이라고 말했다. 내 글들을 소개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싫어할지라도, 많은 이들에게 읽히기를 바랐다. 어차피 소모될 거라면 땅에 묻혀 썩지 말고 볕을 보며 바래지길 원했다.


  지인들과 동료들은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언급하며 칭찬해 줬다. 내 글에 대한 칭찬보다는 글을 쓰고 있는 행위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칭찬이어서 더욱 기뻤다. 내 존재가 빛나고 있다는 증거 같았다. 글쓰기 플랫폼을 통해 내 존재에 대한 글쓰기를 연습할 수 있었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말처럼, 글쓰기는 내게도 '넘을 수 없는 벽에다 문을 만들고, 그 문을 여는 행위'였다. 책을 통해 독서의 세계에, 독서를 통해 쓰기의 세계에 발을 딛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세계는 오랫동안 막혀 있었다.


  역설적으로 글쓰기를 통해서야 비로소 쓰기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독서 에세이로 최초의 글쓰기를, 독서모임 후기로 창의적인 글쓰기를, 소모임 챌린지로 나만의 문장 쓰기를, 글쓰기 플랫폼으로 내 존재에 대한 글쓰기를 연습했다.


  글쓰기는 내게 단순한 기록에서부터 존재 확인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제공했다. 쓰기는 분명 다른 세계였지만, 그것은 독서의 세계 안에 있었다. 이제 나는 글을 쓸 때마다 새로운 문을 열고 있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성장하고, 변화하고, 그리고 존재할 것이다.





다음 화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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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방, 그곳에서 피어날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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