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때로는 혼자, 때로는 함께
- 쓸모없어 보이는 취미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순간들.
- 게임으로 '연민'을, 캠핑으로 '사랑'을, 독서로 '지식'을 배우다.
- 취미의 쓸모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기록한 안내서.
우리는 종종 취미를 '쓸모없는 것'이라고 치부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이 브런치북은 평범해 보이는 게임, 캠핑, 독서를 통해 취미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탐구합니다. 취미가 어떻게 저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그 여정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의 취미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마음 한구석에 작은 불빛이 켜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캠핑은 나에게 쉼표이자 느낌표였다."
캠핑은 주로 혼자 다녔다. 타인과 낯선 환경에서 식사하고 잠자리를 함께하는 것이 나에겐 쉽지 않았다. 특히 그곳이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호텔 같은 곳이 아닌 자연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자연은 시시각각 변하기에 그에 맞는 대응이 필요했다. 눈이 오면 수시로 텐트 위에 쌓인 눈을 치워야 했고, 비가 오면 빗물이 텐트 안으로 스며들지 않도록 수로를 정비해야 했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면 그늘을 만들기 위해 타프(Tarp)를 설치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 모든 일에는 상당한 노동이 뒤따랐다. 캠핑하는 동안에는 새들의 지저귐에 귀 기울이고, 구름의 움직임과 바람의 세기를 끊임없이 살펴야 했다. 혼자 캠핑하러 간다는 것은 이 모든 일을 온전히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어김없이 가을 석양을 감상하던 강화도 캠핑장을 다시 찾았다. 일기예보를 살펴보니 캠핑 날짜에는 비 소식이 없었다. 가을은 날씨 변화가 심한 계절이었지만, 이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했다.
비도 없고 햇볕도 강하지 않아 타프를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잔디밭에 텐트만 설치했다. 땅에 팩(peg)을 박아 텐트를 고정해야 하지만, 예보에 바람이 강하지 않다고 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캠핑용품들을 꺼내 텐트 앞에 두고 잠시 숨을 골랐다. 그때 나무들 사이로 스산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겨울이 곧 당도할 것 같았다.
이윽고 밤이 찾아오고, 주변에서 피어오른 모닥불 연기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잠에서 깨어나니 텐트가 바람에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곧이어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에도 없던 갑작스러운 소나기였다. 재빨리 밖에 있는 캠핑용품들을 텐트 안으로 옮겼다. 캠핑용 삽을 찾아 텐트 주위에 물이 유입되지 않도록 수로를 팠고, 줄을 찾아 텐트를 주변 나무에 단단히 묶었다.
한숨을 돌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옆 텐트의 커플은 이미 비를 맞이할 준비를 마치고 여유롭게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혼자서는 버거웠던 순간이었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알게되었다. 때로는 혼자보다 함께일 때 더 쉽게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것을. 동시에 이런 경험들이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캠핑을 다니다 보면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과 마주치게 된다. 처음에는 두렵고 막막했지만, 하나씩 해결해나가면서 작은 성취감들이 쌓여갔다.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들을 해냈을 때의 뿌듯함이, 어느새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유년 시절부터 나와 함께했던 외로움은, 어느 순간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그것은 모든 이들이 경험하는 보편적인 감정이었다. 이런 깨달음과 함께 외로움은 점차 '고독'이라는 더 깊은 감정으로 변화했다.
고독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취향과 가치관을 찾아가는 여정이자, 스스로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성장해갔다.
다음 날 아침, 대형 승용차 한 대가 커플이 철수한 옆 사이트로 다가왔다. 차에서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내렸다. 오십 대 정도의 어른 둘에 십 대로 보이는 아이 셋. 새 식구의 도착으로 캠핑장에 활기가 더해졌다.
어른들은 오랜 시간을 함께한 듯, 아무 말 없이 텐트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사이트 주변을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때 이상한 괴성이 들렸다. 어른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말이 아닌 뭉개진 소리였다. 한 아이가 다가가니 남자 어른이 손을 바삐 움직이며 텐트를 가리켰다.
손으로 대화하는 수어(手語)였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어를 이해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반대편에 있는 다른 아이에게 향해 "아빠가 저기 폴대 들어 달래"라고 소리쳤다.
부모님은 청각장애인이었고, 아이들은 코다(CODA)였다. 그들은 용품 설치부터 음식 준비까지 조용하지만 아주 긴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모든 것을 함께 하면서 행복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텐트 설치가 끝나자, 한 아이가 하늘을 가리켰다. 캠핑장 너머로 펼쳐지는 황홀한 석양이 지고 있었다. 붉은빛이 구름을 물들이고, 오렌지색 햇살이 나무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들은 말없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늘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던 내가, 이제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고독 속에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내 생각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자연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었다.
나는 '혼자'와 '함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전 직장 동료였던 형들에게 연락했다. 회사를 이직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분들이라 자연에서 누리는 여유를 선물하고 싶었다. 형들은 흔쾌히 승낙했다.
출발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텐트 설치부터 철수까지 혼자 해야 한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포천의 캠핑장으로 향했다. 도착한 캠핑장은 울창한 숲이 포근히 감싸고 있었고, 맑은 계곡물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새로 구입한 텐트를 설치하기 시작했을 때, 형들이 도와주겠다며 나서서 텐트와 타프 폴대를 들어주었다. 혼자였다면 오래 걸렸을 텐트와 타프 설치를 금방 끝냈다. 시간을 아낀 것보다 소중했던 건 함께 일하며 나눈 웃음과 대화였다.
캠핑 오기 전의 걱정은 눈 녹듯 사라졌고, 대신 함께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안도감과 기쁨이 밀려왔다. 숯불을 지피고 그 위에 소시지와 삼겹살을 올려 굽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해감한 바지락과 어묵으로 탕을 끓였다.
음식 냄새는 저녁 공기와 어우러져 식욕을 자극했다. 계곡물에 담가 두었던 소주를 꺼내 잔에 따랐다. 돌부리에 부딪히는 계곡물 소리와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가 어우러져 텐트 주위를 맴돌았다.
형들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마웠다, 힘내라'와 같은 감사의 말, '미안했다, 실수했다'와 같은 사과의 말들이 오갔다.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솔바람이 기분 좋게 얼굴을 스쳐 갔고, 마치 자연도 우리의 대화에 귀 기울이는 듯했다.
밤이 깊어질수록 형들과의 대화는 계곡, 솔바람 등 우리를 둘러싼 자연으로 번져갔다. 숲 멀리서 반짝이던 반딧불처럼, 마음 한구석에 작은 불빛이 켜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형들과의 캠핑 이후, 자연에 대한 감정을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자 문득 부모님이 떠올랐다. '이런 마음으로 부모님은 우리를 캠핑에 데려가셨겠구나.'
그 생각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망설임 없이 부모님께 안부 연락을 드렸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주말에 함께 캠핑을 가자고 말씀드렸다.
어릴 적 우리를 데리고 캠핑하러 갔던 날들이 기억나시는지 따뜻하게 웃으시며 흔쾌히 그러자고 말씀하셨다. 캠핑 당일, 아버지께서 일이 생겨 함께 가지 못하고 어머니와 둘이 캠핑을 떠나게 되었다.
캠핑 장비를 챙겨서 어머니와 함께 전라남도 여수에 있는 캠핑장으로 향했다. 캠핑장은 돌산대교를 건너 돌산도 동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높은 지대에 위치해 남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봄을 맞아 활짝 핀 새빨간 동백꽃이 바다 절벽을 따라 울타리처럼 펼쳐져 있었고, 저 멀리 남해의 섬들은 마치 물에 뜬 오리 떼처럼 보였다. 지나가는 선박들은 뱃고동 소리로 여수에 잘 왔다고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어머니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니, 감포 바다에서 캠핑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기억 속 부모님의 얼굴은 또렷하게 떠올랐다. 눈앞에 광활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지만, 부모님의 모습에 비하면 그 장대한 풍경마저도 흐릿하고 멀게만 느껴졌다.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어머니와 함께 텐트를 설치했다. 봄이었지만 아직 추위가 완전히 물러나지 않아, 난로를 피워 어머니께 가져다드렸다. 어머니가 회를 좋아하시기에 돌산대교를 건너 중앙동에서 서대회무침을 사 왔다.
서대회무침에서는 바다의 싱그러운 맛이 풍겼다. 감포에서도 부모님과 자연을 먹었던 것처럼, 여수에서도 우리는 자연을 먹고 있었다. 어머니와 술잔을 기울이며 사회생활 이야기를 나눴다.
힘들어도 재미있다는 말로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의 이야기들은 끝내 꺼내지 못했다. 어릴 적엔 의미 없는 일들도 조잘조잘 떠들곤 했는데, 어느새 감춰둬야 할 일들이 많아진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때, 바다 멀리 유람선에서 색색의 불꽃들이 하늘로 피어올랐다. 어머니와 함께 텐트 밖으로 나가 불꽃을 바라보았다. 옆 텐트에서 구경 나온 사람들이 유람선의 폭죽을 보는 일은 흔치 않다고 말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어머니와 함께 폭죽을 바라보는 순간이 행복했다. 문득 감포 바다에서 가족들과 함께했던 폭죽놀이가 생각났다. 그때도, 지금도 덧없이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때의 파도 소리는 지금의 파도 소리와 이어져 있었고, 자연은 시간을 초월해 우리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아직 펴지 않은 동백 꽃봉오리를 보면서, 고장의 마늘밭 새싹을 떠올렸다. 아마 어머니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으리라.
이 순간,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한 뼘 더 깊어졌다. 어머니와 함께 캠핑을 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감정들이었다. 혼자 캠핑을 다니며 고독으로 성장했다면, 함께 다님으로써 행복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캠핑이라는 취미는 내 삶에 깊이 뿌리내렸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된 이 취미는 내 삶의 중심축이 되었다. 텐트 속에서 홀로 보낸 밤들은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었고, 모닥불 앞에서 나눈 대화는 타인과의 연결을 가르쳐주었다.
사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자연의 섭리를 배웠고, 예기치 못한 상황들을 헤쳐 나가며 내면의 힘을 키웠다. 때론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그 속에서 오히려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캠핑은 나에게 쉼표이자 느낌표였다. 앞으로도 나는 때로는 혼자, 때로는 함께 자연으로 향할 것이다. 그곳에서 나를 발견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성장해 나갈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취미의 쓸모 : 2부 캠핑편 끝.
+지식이라는 빛으로, 내면을 비추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