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싫다 1

학교폭력 속 투명인간 이야기

by 책뚫기

이십 대 초반까지, 자기소개서를 써보라 하면 나는 대번에 첫 문장을 다음과 같이 썼다.


'사람이 싫다'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칭찬과 인정에 목말랐다. 그리고 칭찬과 인정을 밖으로부터 찾았다. 나를 칭찬해줄 누군가, 나를 인정해줄 누군가, 나를 칭찬하고 인정해줄 대중이 필요했다. 어쩌면 나는 슈퍼스타를 꿈꿨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사람을 좋아해야 타당할 터다. 칭찬과 인정을 밖에서 찾았으니, 나를 칭찬하고 인정해줄 대중을 좋아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나는 정말 사람을 싫어했다. 사람에 대한 증오는 내 마음속 꽤 깊이 뿌리내렸고, 결국 나 자신 또한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나는 교실에 들어설 때 숨을 죽였다. 철희(가명)와 영복(가명)이 때문이다. 철회와 영복이는 우리 반 짱이었다. 둘은 담임 선생님의 눈을 피해 욕과 주먹으로 우리 반을 길들였다. 둘은 친구들의 숙제를 갈취했고, 수업 시간 늘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다. 특히 체육시간 축구를 할 때면 철희와 영복이가 가는 방향에 자연스레 길이 열렸다. 굴러가는 공을 잡기 위해 여럿이 뛰었지만, 결국 공을 차지하는 건 철희와 영복이었다. 어쩌다 불만을 터뜨리는 친구가 있었고, 철희와 영복이는 선생님 눈을 피해 그 친구의 배에 주먹을 질러 넣으며 말했다.


내가 공을 억지로 뺐은 것도 아니고, 비키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지랄이야?


'단 일 년. 일 년만 버티면 된다.' 그 생각으로 버텼다. 하지만 내가 버텨야 할 시간은 조금 길어졌다. 그 당시 교육청에서 중학교 배정을 귀찮게 여겼는지, 서너 명을 제외한 친구들이 모두 같은 중학교에 배정되었다. 심지어 다른 초등학교 일진들까지 같은 중학교에 모이면서, 철희와 영복이는 자연스레 일진 무리의 한 축이 되었다.

일진을 중심으로 피라미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몇몇은 자신의 숙제를 자진하여 바쳤고, 몇몇은 더 약해 보이는 아이의 숙제를 뺐어다 바쳤다. 돈이 많은 아이는 일진을 위해 돈을 썼고, 돈이 없는 아이는 일진을 위해 돈을 뺐었다. 자연스레 우리 사이에는 계급이 생겼다.


하루는 수학 숙제로 입체 도형을 만들어야 했다. 주어진 조건으로 전개도를 그리고, 그 전개도로 입체 도형이 만들어지는지 확인하기 위한 과제였던 듯하다. 나는 시행착오 끝에 겨우 입체 도형 3개를 만들었다. 실수한 탓에 도형 하나에 주름이 생겼지만, 더는 구겨지지 않게 보조가방에 소중히 넣어 등교했다.

그런데 수학 시간을 앞둔 쉬는 시간, 내가 만든 도형 중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주름진 도형 하나가 사라졌다. 사물함과 가방 속을 여러 차례 뒤졌다. 아침에도 개수를 세어두었던 터라 참 이상했다. 떨어졌나 하는 마음에 교실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그러던 중 영복이의 의자 위에 놓인 내 도형을 발견했다. 나는 도형을 찾은 반가운 마음에 영복이에게 말했다.


"어! 이거 내 거야."


영복이가 굳어진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뭐?! 네 거라고? 네 거라는 증거 있어?"


나는 금세 움츠러들었다. 영복이는 자기 옆에 서 있던 찬우(가명)를 힐끔 보더니 이어 말했다.


"이거 찬우 거라는데. 찬우가 나 준 건데. 네 거라는 증거 있냐고?!"


찬우가 몰래 내 도형을 훔친 모양이었다. 영복이가 과제를 준비하라 시켰고, 찬우의 눈에 내 도형이 눈에 띄었나 보다. 하필이면 내가 만든 도형이 친구들 꺼에 비해 컸기에, 찬우의 눈에 잘 띄었을지 모른다. 물론 찬우는 영복이의 기분을 맞춰주며 잘 보이려고 애쓰는 기쁨조였던 터라 영복이를 위해 자진해서 훔쳤을 가능성도 없진 않았다. 여하튼 나는 나의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 주름진 도형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주름진 도형이더라도 그건 나의 노력이었고, 그 노력을 인정받을 사람은 나였다.


"그거 내 거 맞아. 이거 한쪽 면이 주름져 있잖아. 내가 만들다가 선을 하나 잘못 그어서 그렇게 된 건데, 도형을 뜯어서 안 쪽을 보면 주름진 곳 바로 뒤에 볼펜선이 하나 있을 거야. 한번 확인해볼까?"


영복이는 갑자기 귀찮고 짜증 난다며 내가 만든 도형을 멀리 던졌다. 가져가라며 짜증을 냈다. 나는 잔뜩 움츠러들었지만, 화도 났지만, 그래도 내 도형을 찾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는 떨어진 도형을 주웠다. 그때 뒤에서 "억! 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영복이가 찬우를 주먹과 발로 때리고 있었다. 영복이의 주먹과 발이 찬우의 몸에 닿을 때마다 찬우의 입에서 "억! 억!" 소리가 터져나왔다. 마침 수업종이 울렸고, 우리는 싸늘한 분위기 속 자리에 앉았다.

수학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하며, 숙제를 검사했다. 선생님은 체크리스트를 들고 반을 돌며, 만들어온 도형의 점수를 매겼다. 그러다 내 차례가 되었다. 수학 선생님은 내가 만든 도형이 커서 보기 좋다며 칭찬했다. 그리고는 내 도형을 빌려갔다. 선생님은 수업 시간 내내 내 도형을 교구 삼아 설명했고, 수업의 끝에는 내 공로를 치하하고자 박수를 쳐주었다. 나의 노력을 인정받는 순간, 내가 원하는 그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 순간을 누릴 수 없었다. 선생님이 나의 노력을 인정할 때마다 영복이의 눈빛과 구타당하는 찬우가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 후로 혼자가 되었다. 내가 괴롭힘을 당하는 건 아니었지만,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내가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게 허락된 친구는 피라미드 제일 아래에 있는 아이들 뿐이었다. 그중 한 명이 삼희(가명)였다.

삼희는 수많은 친구들의 스트레스 해소용 장난감이었다. 처음에는 영복이나 철희 같은 일진의 장난감이었다. 숙제 심부름, 간식 심부름, 때로는 스트레스 해소용 샌드백이 되었다. 하지만 점차 영복이나 철희의 아래 피라미드에 있는 아이들도 삼희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나는 삼희와 하굣길을 함께 하거나, 쉬는 시간 조용히 대화하거나, 점심시간 학교 화단을 산책하곤 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기 힘들었다. 나는 투명인간이었고, 삼희는 장난감이었다. 나와 삼희가 조용히 산책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한 아이가 다가와 삼희를 데려갔다. 나는 늘 갑작스레 혼자가 되었고, 삼희는 늘 갑작스레 장난감이 되었다. 나는 그런 삼희를 도울 용기가 없어 고개를 돌려버리곤 했다.


사람이 참 싫었다. 학창 시절에 한하여 그 누구도 내 인생의 훌륭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다. 선생님들 앞에서 너스레 떠는 일진들, 그 일진들이 참 보기 좋다며 칭찬하는 교사들. 내 눈앞의 현실에는 모순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삼희를 외면하는 내 모습을 직시하는 순간, 나 또한 그 모순의 일부가 되었다. 나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나를 좋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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