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보는 안목과 자존감
지금 부인과 연애하던 시절, 내가 그녀를 속상하게 한 적은 있어도 그녀가 나를 속상하게 한 적은 없었다.
2017년 여름, 나는 오랜 연수 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어쩌다 보니 연수 동기들과 그녀도 안면이 있던 터라, 연수 뒤풀이에 그녀도 함께했다. 내게는 연수 동기들과 연수 과정 속 추억을 나누는 자리였고, 그녀에게는 오랜만에 나를 만나는 자리였다. 뒤풀이를 마치고, 나는 데려다주겠다며 연수 동료 몇 명과 그녀를 내 차에 태웠다. 연수 동료들을 모두 내려주고, 그녀와 나는 비로소 단 둘이 되었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더니, 이내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소리 없이 흐느꼈다. 나는 당황했고, 그제야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리고, 그녀의 집이 아닌 그녀의 집 근처 카페로 향했다.
그녀는 카페에서도 한동안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주문한 음료가 나왔지만, 그녀는 음료에 손도 대지 않았다. 나는 두 차례 그녀에게 티슈를 가져다주었고, 그녀는 모두 사용했다. 주문했던 따뜻한 음료가 차갑게 식을 때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가 너무 찌질한 거 같아요"
놀랐다. 당장이라도 그녀의 입에서 나를 향한 서운한 마음, 속상한 마음이 튀어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을 먼저 탓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보고 싶었는데, 내게는 관심이 없어서 속상하고..."
나는 얼른 미안하다고 답했다. 나 즐거운 일에만 빠져 있느라 신경 쓰지 못한 거에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제대로 대하지도 못할 거면서 함께하는 자리에 불러서, 혼자되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속상한데,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하고... 내가 너무 찌질한 거 같아요"
나는 그녀를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호의가 자연스러운 사람이라 생각했다. 아마 그 생각 때문에 뒤풀이 자리에서도 그녀가 호의를 베풀어 주리라, 나도 모르게 생각했던 듯하다. 그런데 갑작스레 등장한 '찌질한 그녀'는 그녀 마음속 어린아이였다.
그녀는 그녀 마음속 어린아이를 찌질하다고 표현했다. 그녀의 어린아이는 속상해도 참고, 서운해도 참고, 화나도 참고, 불편해도 참는다고 했다. 다른 사람과 갈등이 불편해서, 자기 하나만 참으면 모든 게 해결되니까, 결국 그녀는 주변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어린아이에게 참으라고 해왔던 거다. 그러나 그녀의 어린아이도 늘 참을 수 있는 건 아니었고, 그럴 때 그녀는 운다고 했다. 잠자기 전,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운다고 했다. 그녀의 어린아이가 온전히 혼자가 될 때, 비로소 그 아이의 아픔이 터져 나왔던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어린아이의 아픔이 씻어지지는 않고, 울다 지치면 잠들기를 반복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내 옆에 앉아 울고 있었다. 그것도 카페에서 울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자리의 손님들이 힐끔힐끔 우리를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나의 옆자리를 이불 삼아 울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어린아이에게 무척 미안했고, 동시에 그녀의 어린아이가 무척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어떻게 이런 모자란 나를 이불 삼을 수 있을까?'
그때 내 마음속 어린아이가 마치 이불 속에 들어간 듯, 따뜻해졌다.
그날 이후, 나는 부쩍 자존감이 높아졌다. 유치하고 웃길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하니 나도 웃기지만, 정말 그랬다. 내 마음속 어린아이가 '나도 쓸모 있는 존재야. 나를 이불 삼아 쉬어가는 사람도 있다구!'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와 더 가까워졌다. 그녀에게는 내 마음속 이야기를 더 풀어놓게 되었다. 가족에게도 못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녀에게만 할 수 있는 내 속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점차 그녀는 내 마음속 어린아이의 모든 면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어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찌질한 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찌질한 게 그 사람의 진짜 매력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