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봉』
어서 오세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인생을 바꾸는 ‘우물 밖 청개구리’ 우구리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장정희 님의 ⟪옥봉⟫, 조선시대 여류 시인 중 하나인 이옥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허난설헌 · 황진이 · 이매창을 조선시대 3대 여류시인으로 꼽는데, 가끔 허난설헌 · 황진이 · 이옥봉을 조선시대 3대 여류시인으로 꼽기도 하더라고요. 이처럼 이옥봉은 허난설헌, 황진이만큼 알려지지는 않은 인물인데 장정희 님은 이옥봉이 남긴 시 여러 편과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이옥봉의 삶을 ⟪옥봉⟫이란 책으로 살려내었습니다.
1592년 즈음 중국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 시체 하나가 떠밀려 왔습니다. 얼굴은 이미 물고기에 파 먹혔으나 칭칭 휘감긴 시 때문에 몸은 온전하게 남아있는 시체였습니다. 바로 옥봉의 시체였습니다. 여성이 시를 짓는 게 흠인 시절에 시에 휘감겨 바다에서 생을 마감했던 옥봉. 옥봉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어린 숙원은 서녀였지만 시에 재능이 있었고,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 대신 ‘옥봉’이란 이름을 스스로 택할 만큼 당돌했습니다. 옥봉은 시를 읽고 짓는 게 좋았고, 옥봉에게는 시가 곧 자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정 씨는 남편이 정체 모를 여자에게서 낳아온 것이 분명한 옥봉이 미웠습니다. 늘 따갑고 매서운 눈초리로 옥봉을 보던 정 씨는 열세 살이 된 옥봉을 별당으로 내쫓았고, 열네 살이 된 옥봉에게 두 명 중 한 명을 선택하여 시집가라고 명령했습니다. 어머니가 알아본 결혼 상대 중 한 명은 아내를 잃은 부자였고, 다른 한 명은 마흔이 다 되도록 본처한테서 후손을 보지 못한 양반이었습니다.
옥봉은 힘들고 괴로울 때 늘 시에 의지했습니다. 옥봉에게는 시가 세상을 보는 눈이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도구였습니다. 옥봉은 여자로 태어났지만 시를 통해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구나 여자로서는 더욱 그렇다. 주어진 삶을 따르기는 쉬우나 선택하는 삶이 어려운 것은, 선택에 그만큼의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나는 주어진 삶을 따르며 누군가를 탓하는 일로 생을 탕진하지 않겠다. 무엇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고 해도 끝까지 내 뜻을 좇으리라. 그것이 비록 운명에 맞서는 일이라 할지라도 내 안의 길을 따라간다면 결코 후회는 없으리니.
장정희, ⟪옥봉⟫, 강, 2020, p.125
옥봉은 제 삼의 선택지를 선택합니다. 아버지에게 당시 진사시에 장원급제한 ‘조원’의 소실(첩)로 보내달라 요청한 것입니다. 옥봉은 왜 어머니가 준 선택지가 아닌 ‘조원’을 선택했을까요?
“단, 조건이 있습니다. 저는 학문이 뛰어나고 도량이 넓은 사람이 아니면 싫습니다. 소실이 된다 해도 제가 존경하고 흠모할 수 있는 사람과 살고 싶습니다.”
장정희, ⟪옥봉⟫, 강, 2020, p.128-129
옥봉은 자신의 뜻대로 조원의 소실로 들어갑니다. 조원은 본처와 달리 부드럽고 여성스러우며 깊은 학식을 지닌 옥봉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조원은 옥봉을 밤에는 여자친구로, 술자리에서는 시녀로, 사랑방에서는 시를 나누는 도반으로 무척 아꼈습니다.
옥봉은 조원 덕분에 다른 명문 인사들 사이에 끼어 시를 나누곤 했습니다. 명문 인사들은 입을 모아 옥봉의 시를 칭찬했고, 이를 조원도 은근히 즐기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불행했습니다. 동인과 서인들의 싸움은 격렬했고, 정치 싸움에 밀린 조원은 한양 내부 관직을 받지 못하여 외직으로 지방 이곳저곳을 돌아야 했습니다. 마침내 ‘정여립 사건’으로 서인이 득세하였고, 불행히도 동인이었던 조원은 아무런 관직도 받지 못하였습니다.
득세한 서인 ‘정철’은 평소 미워하던 사람들을 모두 역당으로 몰아 처단했습니다. 조원과 절친했던 최영경은 역당으로 추정되는 인물과 외모가 닮았다는 이유로 오인받아 죽고, 좌랑 김빙은 바람병이 있어 찬 바람을 맞으면 눈물을 흘리는데 하필이면 정여립의 시체를 찢던 날 바람병이 도져 눈물을 흘렸다는 이유로 죽었습니다.
동인들은 자신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시빗거리가 되지 않도록 움츠리고 또 움츠렸습니다. 조원 또한 움츠러들었습니다. 사랑채 문을 닫아걸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누가 곧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 조원은 힘없는 짐승이 되었습니다.
쿵쿵쿵 쿵쿵!
그러던 어느 날. 별채 마당이 시끄러웠습니다. 마침 종가에 선조의 합제를 올리는 날이라 조원과 부인, 아들들 모두 집을 비운 날이었습니다.
옥봉이 문을 열어보니 한 아낙이 땅에 주저앉아 살려달라 살려다라 애원하고 있었습니다. 옥봉이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아낙은 파주 땅에서 조원 댁의 선영을 지키는 산지기의 아내였습니다. 이들 부부는 파주에서 조원 댁 선영의 묘답을 부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겨우겨우 소 한 마리를 사고 농토를 얻어 이제 좀 숨을 쉴 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즈음 이웃 마을에서 소를 잃어버린 사건이 일어났는데, 파주의 관원들이 남편을 소도둑으로 몰아 잡아 가두었다는 겁니다.
옥봉은 아낙의 처지가 안타까웠지만 함부로 도와주었다가는 어떤 화를 입을지 모르는 시기였습니다. 옥봉은 아낙에게 돌아가라 말했지만 너무나 절박하게 살려달라 애원하는 아낙을 끝내 내치지 못했습니다. 결국 옥봉은 아낙에게 소장으로 시를 한 편 써주었고, 아낙은 연신 감사하다며 절을 한 뒤 돌아갔습니다.
며칠 뒤, 파주 목사가 일행들과 말을 타고 조원 집에 들이닥쳤습니다. 파주 목사는 굉장히 불쾌하다는 듯 옥봉이 써준 소장을 조원에게 들이밀었습니다. 조원은 어안이 벙벙했고, 결국 자신의 소실 옥봉이 파주 목사 관할 송사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원은 화가 치밀었습니다. 작은 실수 하나가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시기에 자신의 소실이 남의 송사에 함부로 관여하다니! 조원은 곧장 옥봉을 불러 결단을 내립니다.
“아녀자가 감히 남의 송사에 관여하다니…… 이 무슨 경거망동한 짓이오!” (중략)
”그대는 하찮은 글재주를 뽐내며 나와의 약조를 비웃고 조롱했소. 그대는 무슨 이유로 관리들의 이목을 번거롭게 하여 옥에 가두었던 죄수를 풀어주게 하는 등 남의 송사에 끼어든단 말이오?” (중략)
”그대는 나의 믿음을 저버렸소! 나는 그런 사람과는 하루도 살 수 없소……!” (중략)
”그러니 그만, 내 집에서 나가시오!”
장정희, ⟪옥봉⟫, 강, 2020, p.268-270
옥봉은 멀리 떨어진 뚝섬 위에 다 허물어 가는 집으로 쫓겨납니다. 옥봉은 절망하고 원망합니다. 여자가 시를 쓰는 게 죄가 되는 세상에 절망하고 자신을 내친 조원을 원망합니다. 하지만 옥봉은 조원이 다시 자신을 찾아주길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조원은 옥봉을 찾지 않고,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쳐갈 즈음 옥봉은 다시 시를 씁니다.
시를 쓰리라! 내 삶을 조문하기 위해, 오직 나에게 바치는 글이어야 하리. 어차피 시와 함께 다 할 삶. 더는 부질없는 기약에 매달리지 않으리. 다시는 애걸하지 않으리. 내 삶을 증언하기 위해서 나는 쓰리라. 서녀로서 첩실로서 온전하지 못했던 내 삶에 온점 찍어주기 위해 기어이 써야만 하리.
장정희, ⟪옥봉⟫, 강, 2020, p.311-312
옥봉은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조원에게도 시를 한 편 써 보냅니다. 1591년 세자 책봉 문제로 서인이 실각하고 다시 동인이 득세한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동인은 다시 북인과 남인으로 쪼개져 당쟁에 휩쓸리던 시기여서 그랬는지, 조원은 답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1592년 임진왜란. 모두가 피난길에 오르는 때에 옥봉은 도망가지 않기로 합니다. 다시금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기로 합니다.
‘죽어야 산다!’ 집으로 돌아온 옥봉은 시고를 무릎 앞에 놓아둔 채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살아서는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질곡, 눈물과 한숨과 고통 속에서 필사적으로 버텨낸, 나의 분신이자 존재 증명인 시.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중략) 육체가 사라진다 한들 어찌 영혼까지 없어지랴. 내게는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영혼의 징표인 시가 있질 않은가. (중략) 나는 육신이 흔적 없이 지워진 그곳에서 지상의 별처럼 꽃처럼 피어나리라. 끝내 부활하리라!
장정희, ⟪옥봉⟫, 강, 2020, p.340
옥봉은 자신의 시가 담긴 종이에 들기름을 먹이고 치맛말기에 둘렀습니다. 치마끈으로 질끈 묶고 그 위에 저고리를 입었습니다. 끝내 절벽 위에 선 옥봉은 살기 위해 하늘로 뛰어오릅니다.
초등교사로서 살다 보면 ‘너무 가혹한 환경’에 놓인 아이를 마주하곤 합니다. ⟪옥봉⟫을 읽고 보니 조선시대에 태어난 여성들 또한 마찬가지였던 듯합니다. 서녀와 소실로 살아온 옥봉의 삶은 마치 감옥살이 같았습니다. 별당 또는 별채에 하루종일 머물면서 남편이 요구하거나 필요할 때에 맞추어 움직이는 삶이었습니다. 옥봉을 둘러싼 높다란 담벼락은 옥봉이 누구의 여자인지를 알려주는 표지판과 같았습니다.
옥봉이 지금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그저 시를 읽고 쓰기 좋아하는 문학소녀였을 겁니다. 문단에 등단하여 시인으로서 이름을 떨쳤을지도 모르고, 그도 아니라면 블로그나 SNS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 겁니다.
시대를 잘못 만났다는 말처럼 옥봉은 너무 빨리 태어났습니다. 여자가 시를 쓰는 게 흠인 시절, 여자는 남자를 위한 도구인 시절에 태어났으니까요.
‘나는 누구일까?’
참 오랫동안 저를 따라다니는 질문입니다. 알듯 말듯, 답을 찾았나 싶으면 또다시 멀어지기를 반복합니다. 아마도 평생 저를 따라다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처음에는 답을 밖에서 찾았습니다. 부모님, 선생님들, 교수님들이 시키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정답 같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했고 언젠가는 제가 누구인지도 자연스레 알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언제부턴가 답은 제 안에 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세상이 내게 기대하는 기준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기준, 내가 끌리는 기준,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기준을 찾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기준들이 모여 취향이 되고, 취향이 이끄는 삶 속에 제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답은 제 안에만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친구가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더는 그 친구와 함께 호흡할 수 없습니다. 그 친구와만 가능했던 대화, 여행, 놀이 모든 게 사라집니다. 오직 추억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친구의 죽음은 그 친구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제 일부도 함께 죽는 겁니다.
소중한 친구는 제 자신의 일부가 존재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제가 아들로 존재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저는 관계 속에 존재합니다. 관계가 끊어지면 저의 일부 또한 끊어집니다. 관객이 없어지면 배우 또한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옥봉은 왜 ‘조원’의 소실로 들어가기를 선택했을까요? 어머니의 제안대로 부자의 재혼 상대가 될 수도 있었고, 아들을 보지 못한 양반의 소실로 들어가 출산함으로써 본처의 자리를 누리며 살 수도 있었을 겁니다.
결국 옥봉의 선택 또한 ‘관계’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자나 양반과의 관계에는 없지만 조원과의 관계에는 있는 것, 바로 ‘옥봉이 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입니다. 옥봉이 부자나 양반을 선택했다면 시인으로서의 삶 또한 포기해야 했을 겁니다. 남편의 허락 없이 시를 쓸 수 없는 세상에 시에 관심도 없는 남편을 선택하는 일이니까요. 반면 조원은 진사시에 장원급제할 정도로 학식이 깊었고, 시에도 정통하였습니다. 조원의 부인이 된다면, 나아가 조원이 시인으로서 옥봉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받아준다면 옥봉은 시인으로서 삶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겁니다.
하지만 결말은 비극적입니다. 옥봉은 한 편의 시 때문에 남편에게 버림받았습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옥봉은 더는 시인으로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옥봉의 시를 기대하지도 허락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조선시대에 남편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는 모든 관계를 단절시키는 감옥과도 같았습니다. 옥봉은 평생을 남자라는 감옥 안에서 외로웠고, 여자라는 육체를 버리고서야 비로소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관계를 잃어버리고서야 시인이 된 옥봉의 삶이 참으로 헛헛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