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오고 말았구나

힘듭니다.

by 책뚫기

때는 2023년 9월 7일 수요일, 조퇴를 하고 일찍 오겠다던 아내가 어찌 된 일인지 때가 지나서도 아무 연락이 없었습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오늘 일찍 못 오는 거지?’라고 살포시 톡을 띄었고, 한참 뒤에 답이 왔습니다.


‘…’


점 세 개. 말줄임표. 짧고도 간결한 답이었지만 저는 그 속에서 짜증, 답답, 우울, 복잡, 불편, 화 등으로 얽히고설킨 감정들을 느꼈습니다. 동시에 오만가지 가능성을 상상하며 아내를 위로할 말과 마음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부부 초등교사입니다. 저는 10년 차, 아내는 8년 차 정도 되었습니다. 저는 올해 육아휴직을 써 아들 담박이를 돌보고 있고, 아내는 올해 육아 휴직에서 복직하여 다시 초등 교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최근 초등 교사들은 단체 우울감에 빠져 있습니다. 서이초 선생님을 비롯한 수많은 선생님들의 죽음, 서이초 선생님 사십구재 날에 뜻을 모은 ‘공교육 멈춤의 날’, 날벼락처럼 떨어진 교육부의 협박. 교육부는 ‘공교육 멈춤의 날’에 연가나 병가를 쓰는 모든 교원을 징계하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그 엄포에 잔뜩 졸아든 몇몇 교장 교감은 학교 선생님들을 협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제 아내 학교 교장이 그랬습니다. 자기는 절대 연가나 병가를 승인하지 않겠다. 우리 지역은 수백 명이 과원인 상태다. 교장의 뜻은 간단했습니다. 이번 공교육 멈춤의 날에 참여하면 나는 결코 방패막이되어줄 수 없으니 잘릴 각오를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국가에게 ‘개돼지’ 취급을 받는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가만히 있어라! 교육부가 알아서 생각하고 결정할 테니 나라의 녹을 받아먹는 너희들은 가만히 있어라! 너희들은 정당가입 및 집단행위가 금지된 나라의 개돼지 아니냐.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주던 녹을 모두 끊어버리겠다!



과거에도 초등 교사들이 단체 우울감에 빠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때입니다. 내 반 아이가 죽은 것도, 내 아이가 죽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세월호에 함께 탔던 선생님들도 아이들과 함께 세상을 떠났으니 교사들의 책임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초등 교사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으며 세월호 사고에 우리의 잘못도 있음을 느끼고 반성했습니다.


초등 교사들이 느낀 죄책감의 원인은 ‘가만히 있으라’는 문장이었습니다. 교사는 늘 아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존재입니다. ‘어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속담처럼 교사는 늘 아이들에게 정답을 가르쳐주는 존재이고, 아이들은 교사가 주는 정답을 잘 받아먹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학교는 말 잘 듣는 아이들을 길러내 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 잘 듣게 길러진 아이들이, 어른들의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고 따랐던 아이들이, 어떤 잘못도 하지 않은 아이들이 물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그동안 교육이 쌓아왔던 신뢰가 한순간에 우르르 무너졌습니다. 신뢰가 무너지는 건 둘째 치고, ‘그동안의 교육이 아이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선생님들은 길을 잃었고, 이후 다양한 교육 운동이 있었지만 새로운 교육의 길을 제대로 열어내지는 못한 듯합니다.




‘무슨 일 있어?’


아내에게 곧장 톡을 다시 날렸습니다. 아내는 아무런 답이 없었습니다. 복잡한 일을 해결하느라 바쁘겠거니. 괜히 방해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퇴근시간이 훌쩍 지나서도 연락이 없기에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행히 아내는 금방 전화를 받았고, 퇴근하는 차 안이었습니다. 학년 선생님들 그리고 교장 선생님과 체험학습 버스 때문에 회의가 길어졌다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지난 7월 경찰청은 교육부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현장체험학습 등에 전세버스를 운행할 때 어린이 통학버스 신고를 준수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는 작년 10월 법제처의 도로교통법 유권해석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모든 체험학습에 어린이 통학버스, 즉 노란 버스를 쓰라는 지시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전국 학교의 체험학습을 수용해 낼 어린이 통학버스가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이에 많은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리자 경찰청은 “현장 혼란을 최소화할 방안을 마련할 때까지 계도·홍보를 하겠다”라고 입장을 바꿉니다. 그러니까 어린이 통학버스를 쓰는 게 원칙인데 지금 당장은 구할 수 없으니 계도 기간을 운영하겠다는 뜻입니다.


전세 버스로 체험학습을 갔다가 사고가 났을 때 그 책임을 교사나 학교에 묻지 않을까?


서이초 선생님이 돌아가신 이유조차 밝히지 못했습니다. 이후에도 수많은 선생님들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같은 교사로서 너무 미안하고, 속상하고, 화가 나고, 공포스럽습니다. 더는 이 사회에 나의 생존권을 맡기지 않으리, 더는 선생님을 성스럽고 고귀한 직업이라 여기지 않으리, 나 또한 한 명의 노동자이기에 마땅한 권리를 주장하리.


아내와 아내의 동료 선생님들도 같은 마음이었나 봅니다. 그들은 교장 선생님에게 찾아가 현장체험학습을 취소하자고,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체험학습을 갈 필요가 있느냐고 제안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은 체험학습을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취소하고 싶으면 선생님들이 직접 학부모들을 설득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교사와 학부모의 요구가 충돌하는 불편한 자리에서 도망쳐 자신의 안위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교장이 리더라고 할 만한가? 갈등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함께 고민하고 함께 책임질 용기도 없이 도대체 왜 교장이란 타이틀을 달았나? 아내와 함께 분노하고 우울했습니다.


다음 날, 아내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삼 일이 지나도록 차도가 없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사를 해본 결과 코로나 확진을 받았습니다. 우리 세 가족의 첫 코로나 확진이었습니다. 빨리 알아차리지 못해 격리 수칙을 지키지 못했고, 안타깝게 다음날 아들 담박이가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열이 38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고, 그나마 다행이라면 39도를 넘지는 않았습니다. 뜨끈 뜨근한 불덩이 몸 때문인지 담박이는 자꾸 울음을 터뜨렸고, 잠잠해져서 잠에 드는가 싶다가도 깨어나 벼락같은 울음을 토해냈습니다. 최소 복용 간격인 네 시간마다 아세트 아미노펜(해열제)을 먹였고, 혹여나 해열제를 더 자주 먹여야 할지 몰라 덱시부프로펜(아세트 아미노펜과 혼합 복용이 가능한 해열제)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자 담박이의 체온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호흡기 쪽 증상은 없이 무탈히 코로나가 지나갔습니다.


9월 12일 화요일. 담박이는 회복했지만, 가엾게도 제가 담박이의 코로나를 이어받았습니다. 원래도 면역력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움직이면 두통이 더 심해져서 구토감을 느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침대에 누워 하루종일 잠만 잤습니다. 담박이는 병가를 낸 아내가 맡아주었습니다.




저는 코로나가 처음이어서 코로나가 이렇게 독한지 몰랐습니다. 목이 붓고 콧물도 쌓이고, 두통으로 머리가 깨질 거 같은데, 입 안에는 누가 약을 도포했는지 쓴맛이 가득하더군요. 때문에 음식을 먹어도 본래 맛이 느껴지지 않고, 양치를 하면 입안 전체에 쓴 맛이 생생하게 살아났습니다. 어찌 됐든 삼 일이 지난 9월 15일 금요일, 저는 생존했습니다.


금요일 오후, 할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로부터 제 소식을 들으신 모양이었습니다. 걱정하시기에 다행히 괜찮아졌고, 죽도 먹고 약도 잘 챙겨 먹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 다행이다. 할머니 바꿔줄 테니 할머니랑 전화해라. 할아버지는 다짜고짜 할머니에게 전화기를 넘겼고, 할머니는 다짜고짜 제게 말했습니다.


“아이고, 고생 많았지야~”


왜였을까요? 할머니의 ‘고생 많았지야~’에 담긴 묘한 것 때문에 울컥 눈물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내가 무슨 고생을 했다고 눈물이 날까? 누구나 코로나에 한 번쯤은 걸렸을 테고, 누구나 아이는 키우는 데 내가 무슨 고생을 했다는 걸까? 어디 가서 힘들다고 말하면 분명 ‘뭐 그런 걸로 힘들다고 그러냐!’라고 도리어 핀잔을 받을 것만 같은데……


저 사실 힘든가 봅니다. 아이가 고열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힘들었고, 단 며칠이지만 코로나로 아팠던 것도 힘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교사로서 자긍심을 잃은 것이 너무너무 힘들고, 같은 교사로서 동료 교사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것도 너무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눈물이 났나 봅니다. 힘들고, 억울하고, 분해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음이 트이기 시작한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