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세계의 변화
우리는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살더라도 서로 다른 의미 세계 속에 살아간다.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자기 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한다. 그래서 사람은 저마다 고유한 의미 세계 속에 살아간다. 이때 의미 세계란 그 사람이 해석한 세상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직장에 출근하면 '교사'라는 의미 세계에 들어간다. 퇴근과 동시에 '교사' 세계에서 벗어나 한 아내의 '남편'과 '휴식' 의미 세계에 들어간다. 주기적으로 오프라인과 온라인 연구회에 참여하는데 그때는 '탐구자'라는 의미 세계에 들어간다. 나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나의 존재 의미를 다르게 인식하고, 같은 공간이더라도 아내와 함께할 때와 연구회 화상 회의에 참여할 때 나의 존재 의미를 각각 다르게 인식한다.
의미 세계가 바뀌고, 그에 따라 존재 의미를 다르게 인식하면 나의 말과 행동이 달라진다. '교사'로서 하는 말과 행동은 다소 긴장감을 담고 있고, 학생에게 필요한 지 아닌 지를 따진 뒤에 표현한다. '남편'으로서 하는 말과 행동은 훨씬 부드럽고, 보다 뇌의 필터를 거치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한다. '휴식' 세계에서는 말과 행동을 거의 하지 않고, 생각 또한 멈춰있는 편이다.
담박이가 태어난 지 이제 오십일 쯤 흘렀다. 담박이는 2주 동안 조리원 생활을 마쳤고, 이후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담박이가 집에 온 첫 2주 동안 나는 출산 휴가를 사용하여 아내와 함께 육아에 매진했다. 그럼에도 담박이가 집에 온 첫 주, 멘탈이 흔들렸다. 평소 느끼지 못했던 우울이 스멀스멀 나를 잠식했다. 이래서 산후우울증이 오는구나 싶었다.
담박이가 집에 온 첫 주, 나의 의미 세계는 대부분 '보육자'였다. 게다가 초보였다.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담박이를 보육하는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담박이는 잘 자는가 싶다가도 불쑥불쑥 울었고,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담박이 상태를 살폈다. 아내와 나는 수시로 정보를 검색하고 토론했고, 조금씩 조금씩 해결책을 찾아가야 했다. 문제는 잠자는 시간도 그래야 했다. '교사, 남편, 탐구, 휴식' 등 다양했던 나의 의미 세계가 '육아, 육아, 육아, 육아'가 되었다.
몸이 지치니 정신도 지쳐갔다. 문득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이래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자 우울이 몰려왔다. 도대체 나의 어머니는 연년생인 나와 동생을 어떻게 키웠을까? 그래서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잘 때는 시간을 정해서 번갈아 담박이를 볼까?"
나는 아내에게 우리의 의미 세계에 '온전한 휴식'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아내도 그게 좋겠다고 답했다. 아내는 저녁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나는 새벽 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육아 퇴근'을 하기로 했다. 이후 나는 '교사'로, 아내는 '보육자'로 다시 출근한다. 그렇기에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교사'의 삶이 쉬운 건 아니지만, '육아, 육아, 휴식' 보다 '교사, 육아, 휴식'으로 의미 세계가 다양하게 변하는 게 정신 건강에 나은 거 같기 때문이다.
일과 삶의 균형, 워라밸의 등장은 개개인의 '의미 세계 불균형'을 지적하는 듯하다. 그 불균형은 사회 구조에서 오는 것으로, 우리 사회가 원하지 않는 의미 세계를 지나치게 강요하고 있다는 걸 반증하는 셈이다. 나는 운이 좋게 공무원이란 기득권 자리를 차지했기에, 분명 다른 이보다 훨씬 균형 잡힌 의미 세계 속에 살아가고 있을 테다. 게다가 2주 간의 출산 휴가까지 누렸다. 그럼에도 '육아'라는 의미 세계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이미 균형이 무너진 의미 세계에 사는 사람이 자신의 삶에 '육아'라는 의미 세계를 더하고 싶을까? 물론 담박이는 무지무지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아이고... 글이 널뛴다. 이만 줄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