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기된 행복과 어두운 우울의 파도를 감당해야 할 운명

감정 기복이 심해도 괜찮아

by 책뚫기

그런 부류의 사람을 처음 만난 건 대학생 때다. 신입생 OT부터 그녀는 남달랐다. 그녀는 170cm에 가까운 키에 마르지는 않았지만 오랜 춤으로 단련되어 오히려 날렵한 느낌이 있었다. 그녀는 대학 새내기의 풋풋함과 발랄함으로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대학 생활 초반 그녀의 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있었고, 그녀와 더불어 주변 사람마저 행복해 보였다. 수시로 터져 나오는 그녀의 웃음소리는 그녀의 존재를 더욱 어필했고, 그게 타인의 사랑을 갈구했기 때문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대학 생활 내내 아싸를 자처했기에 그녀와는 인연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특유의 고집이 있어 아싸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래도 같이 밥 먹을 친구 몇몇은 있었고, 아싸를 고집하던 주제에 동아리에 가입해서 알고 지내는 사람이 적지는 않았다.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을 뿐.


대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 어느덧 나는 그녀와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녀의 인간관계가 섬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싸였던 그녀는 어느덧 나보다 아싸가 되었고, 나는 마음씨 좋은 친구 몇몇을 만나 깊은 인간관계를 조금씩 늘려가던 중이었다. 섬이 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나와 친구들 무리에 다가왔고, 우리는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우리는 늘 그랬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았다.


우리는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을 그녀와 함께했다. 같이 밥 먹고, 놀러 가고, 조별 과제가 있을 때는 기꺼이 같은 조가 되었다. 그녀는 우리 무리 속에서도 발랄했다. 우리는 서슴없이 서로를 까내리는 장난도 쳤고, 그녀 덕에 우리는 더 많이 웃었다.


나는 그녀가 왜 섬이 되었는지, 다른 이들이 왜 그녀를 꺼리게 되었는지 고민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 같다. 너무나 빨리 그녀의 어두운 기운이 우리에게 흘러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밝고 행복해 보이는 만큼 속으로 어둡고 우울했다. 그녀와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그녀의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이 커져갔다. 나는 그녀의 우울함을 위로했고, 그녀가 행복해지길 바랐다.


그녀는 자주 갈아탔다. 남자 친구를. 어느 날, 그녀는 새삼스레 밝고 상기된 표정으로 한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우리는 혈기왕성한 20대 초반 대학생이었다. 남의 연애사만큼 재밌는 대화거리는 흔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녀의 썸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었다. 우리는 그게 썸이 맞는지 아닌지, 그 남자가 그녀에게 관심이 있는지 아닌지 열띤 토론을 했다. 토론 끝에 우리는 그녀의 썸을 응원했고, 더 대시해도 괜찮겠다고 조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연애를 시작했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우울해졌다. 그 남자와 관계가 나빠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녀의 말만 듣고, 어떻게 남자가 그럴 수 있냐며 화를 내주었다. 우리는 그 남자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그녀를 사랑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다. 토론 끝에 우리는 그녀를 위로했고, 헤어지는 것도 나쁜 건 아니라고 조언했다.


괴상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새로운 남자 친구 또한 우리처럼 그녀를 위로하고 응원하던 남자 중 하나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다시 우울해졌다. 남자 친구와 관계가 나빠졌다는 것이다. 그녀의 연애사란 비슷한 패턴의 반복이었다. 우리는 어느새 그녀의 연애사에 예전만큼 열렬히 토론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 또한 한동안 연애를 하지 않았다.


대학교 4학년이 되었다. 다들 고시 공부에 열을 올렸다. 우리는 각자 편한 친구들과 스터디를 만들고, 스터디에 격려와 족쇄의 의미를 부여했다. 나는 두 친구와 함께 스터디를 했고, 그녀와는 멀어졌다. 그녀는 나와 친한 친구들 몇 명과 스터디를 만들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녀는 다시 연애를 시작했다.


그녀의 연애 패턴은 비슷했다. 상기된 마음으로 한 남자를 만났고, 이내 그 남자 흉을 보기 시작했다. 그녀 주변의 남자들은 그녀를 위로했고, 그녀는 위로를 건네는 남자 중 하나와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나의 친한 친구 한 명과 연애를 시작했다. 당연히 오래가지 않아 둘의 사랑은 시들해졌고, 나의 친구는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리려 노력했다. 나는 그의 진심이 안타까워 그의 사랑을 응원하고 필요한 도움도 주었다. 그런데 내 눈으로 봐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갈아타기를.


그날은 카페에서 스터디를 하기로 했다. 골방 같은 학교 도서관에서 벗어나 환기하고 싶었다. 가장 먼저 카페에 도착하여 셋이 앉아 공부하기에 적절한 자리를 찾았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1층을 지나, 자리는 있지만 혹시 더 조용할까 하는 기대로 2층을 지나, 3층까지 올라갔다. 많은 사람들 중 그녀의 한껏 상기된 표정이 내 눈에 확 꽂혔다. 새로운 연애를 시작할 때, 바로 그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내 친구가 아닌 모르는 다른 남자였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도, 나도, 얼어붙다 못해 일그러졌다. 그 순간 세상이 바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그녀에게 놀아났다는 생각이 망치가 되었다. 그 망치는 그동안 차곡차곡 쌓았던 우리의 추억과 그녀에 대한 인식들을 강하게 때렸고, 추억과 인식은 다시 고치기 어려울 정도로 잘게 잘게 부서졌다. 그때 나는 그녀의 마음속에 거대한 공허가 있다는 걸 몰랐다. 그리고 그녀가 그 공허를 필사적으로 채우려 한다는 걸 알아차리고 배려할 만큼 충분히 지혜롭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생각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지나치게 밝은 사람은 조심해!


나는 그 뒤로 첫 만남부터 과도하게 밝은 사람을 멀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과도하지는 않더라도 유난히 밝은 사람을 경계하는 습관이 생겼다. 동전의 앞뒷 면처럼 사람의 밝음 뒤에는 어둠이 붙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감정 기복은 지나치게 밝은 사람의 것이었고, 애초에 잔잔한 사람에게는 감정 기복이란 표현을 꺼내지도 않는 걸 알아차렸다.


시간이 지나 나는 지나치게 밝은 사람을 연민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저만큼의 감정 기복을 견디려면 얼마나 힘들까? 그들은 늘 상기된 행복과 어두운 우울의 파도를 감당해야 할 운명을 타고났다. 반면 크게 기쁘지도 크게 우울하지도 않은 내가 다행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쾌락과 우울은 그들의 것, 잔잔한 행복은 나 같은 사람의 것, 나는 행복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부류의 선생님을 만났다. 그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보다 감정 기복이 컸다. 그 선생님은 대게 웃고 밝은 모습이었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애써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또한 아이들이 하교한 뒤 교실에 혼자 앉아 우는 선생님의 모습을 마주하기도 했고, 반 아이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고 부드럽게 표현하는 모습은 자주 보았다. 그분에게는 감정을 표현한다는 게 자랑할 일도,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었다. 그저 그 순간의 감정에 솔직할 뿐이었다.


예전 같았다면 나는 그 선생님을 가까이하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나는 그 선생님과 같은 연구회 활동을 하고, 그 선생님이 포함된 사적 모임에 함께 할 정도로 친하게 지내고 있다. 지금의 나는 그 선생님이 정말 멋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한 해가 저물어 갈 때쯤이었다. 각종 행사와 학생들의 다툼 그리고 학부모의 민원 등 다사다난한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였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평온한 공기가 어색하게 감돌았다. 아이들이 하교한 뒤 우리는 그 어색한 평온함을 즐기기 위해 한 자리에 모여 커피 한 잔을 마셨다. 하지만 우리는 평온함을 두려움과 긴장감 때문에 즐기지 못했다.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갈등과 민원, 그래서 우리는 너무 이 평온함을 즐기지 말자고, 정신 바짝 차려서 올 한 해 무사히 넘기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아니라고 말했다.


“어차피 벌어질 일은 벌어지잖아요. 저는 지금 이 평온함이 너무 좋아요. 저는 더 즐길래요.”


그때는 역시 선생님 답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았다. 이상하게 이 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더니 이내 충격적인 말이 되었고, 새로운 망치가 되어 ‘밝은 부류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다시 잘게 잘게 부수었다. 다시금 세상이 바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선생님의 감정 폭은 나의 감정 폭에 비해 얼마나 클까? 두 배? 세 배? 한 열 배쯤 될까? 어쩌면 그 선생님은 나보다 열 배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감흥 없이 덤덤이 흘려보내는 것들, 그 선생님은 그것들에 하나하나 감정을 담아 충분히 누리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기쁠 때는 자신이 충분히 들뜰 수 있게, 슬플 때는 자신이 충분히 눈물 흘릴 수 있게 시간을 주는 사람. 자신의 감정 기복을 수용하고, 그 감정 기복을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고 충분히 보살필 수 있는 사람. 그렇게 십 년이 지나면 나와 그 선생님의 경험은 백 배쯤 차이 나지 않을까?


그들은 늘 상기된 행복과 어두운 우울의 파도를 감당해야 할 운명을 타고났다. 반면 크게 기쁘지도 크게 우울 하 지도 않은 나는 잔잔한 삶 속 많은 것을 허투루 흘려보낼 운명을 타고났다. 쾌락과 우울은 그들의 것, 그러나 그들은 충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감흥 없는 무덤덤함은 나의 것, 그러나 나는 잔잔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다. 나만 행복을 타고난 사람인 게 아니라 누구나 행복을 타고난 사람들이었던 거다.


타고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각자 타고난 걸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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