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개월 아기의 질문 폭탄
저의 아들 담박이는 태어난 지 19개월이 되었습니다. 올해 육아휴직 중인 저는 아직까지는 담박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보살피고 있습니다. 보고 있으면 사랑스럽고, 안고 있으면 마음이 충만해지고, 만지고 있으면 물립니다.
최근 담박이는 코감기에 걸렸었는데 자주 코를 닦아주어야 했고 그때마다 담박이가 무척 불쾌해하더라고요. 뭐 어쩔 수 있나요? 틈틈이 코를 닦아주었고, 또 코가 흘러나와 닦아주려던 참이었습니다. 제 손이 담박이의 코에 닿자마자 담박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양손으로 제 손가락을 덥석 잡더니 곧장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순식간이었습니다.
“아악!”
제 비명소리에 담박이도 놀랐는지 금방 제 손을 놓아주었습니다. 너무 아파서 한동안 물린 손가락을 부여잡고 있었는데 몇 분이 흘러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통증이 너무 오래가는 게 이상해서 물린 손가락을 확인해 보았더니 벗겨진 피부 위로 피가 흘러나오더라고요. 다행히 피부가 파이지는 않고 벗겨지기만 했습니다. 씁쓸한 마음으로 상처를 소독하고 담박이를 위해 사놓은 연고를 제 손에 바르고 밴드를 둘렀습니다. 멀뚱멀뚱 저를 바라보는 담박이가 예뻐 죽겠더라고요.
담박이는 사람에게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대신 사물에 관심이 많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도 아파트 주민 분이 아니라 주민 분의 손에 들린 물건을 만지려고 손을 뻗습니다. 그래서인지 또래에 비해 언어발달이 조금 느린 편입니다. “안녕”, “사랑해”와 같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표현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딱 하나의 말을 무한 반복합니다.
“이거!?”
마치 아기 불상처럼 오른쪽 검지손가락을 쭉 펴고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쏟아냅니다. “이거!? 이거!? 이거!?” 그러면 저는 담박이를 쫓아다니며 “이거는 감자, 바나나, 전자레인지, 자동차, 개구리, 표범” 등등 사물과 그림의 이름을 알려줍니다.
하루는 사물의 이름을 묻던 담박이가 무척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림 속 전자레인지를 가리켰을 때였습니다.
“이거?!”
“이거는 전자레인지”
담박이는 무언가 깨달았는지 그림 카드를 털썩 내려놓고는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달려갔습니다. 곧장 전자레인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연신 외칩니다.
“이거! 이거! 이거!”
“우와! 맞아! 이게 전자레인지야! 우와! 담박이가 전자레인지를 찾았네! 박수! 짝짝짝”
한 차례 박수 세례를 받은 담박이는 어벙벙한 표정으로 저를 보다가 이내 자기도 따라서 박수를 칩니다. 짝짝짝~
또 다른 날에는 담박이가 사진 속 배(과일)를 가리켰습니다.
"이거!?"
"이거는 배!"
그 순간 담박이는 웃도리를 제껴 올리더니 자기 배꼽을 가리키며 놀란 듯이 물었습니다.
"이, 거어!!!?"
저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흐흐흐. 맞흐자하. 흐흐흐흐. 그으헛도 배네. 흐흐흐흐"
요즘 담박이는 자동차에 꽂혔습니다. 저는 아내 그리고 담박이와 매일 저녁 산책을 나갑니다. 아직까지는 담박이가 유아차를 거부하지 않아 다행히 유아차 산책을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담박이는 유아차 산책 시간이면 자동차 구경을 하느라 바쁩니다.
“이거?! 이거?! 이거?!”
쉴 새 없이 지나가는 자동차를 하나씩 하나씩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연신 묻습니다.
“이 것도 자동차. 이 것도 자동차. 이 것도 자동차. 우와 자동차가 엄청 많네!”
이 차도 다르고, 저 차도 다르고, 그 차도 다르지만 저는 그냥 “자동차~”라고 답할 뿐입니다. 그러다 담박이가 갑자기 숨이 턱! 막힌 듯 그리고 이내 터져 나오는 소리로 물었습니다.
“이!!! 거어어어!?!!”
“우와~!!! 엄청나게 큰 트럭이네!”
담박이의 질문에 덩달아 저의 마음도 부풀어 올랐습니다. ‘우와! 트럭이 진짜 크잖아! 트럭이 원래 이렇게 컸던가?’ 담박이의 시선이 제게도 전해졌는지 평소에는 별 거 아니던 풍경이 별 거처럼 보였습니다. 그나저나 트럭이 정말 정말 크더라고요.
담박이는 매일매일 지치지도 않고 “이거!?”라고 묻습니다만, 제가 제때 답을 못할 때도 있습니다. 솔직히 지치고 힘들 때도 있고, 집안일을 하느라 미처 신경 쓰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거!? 이거!? 이거!? 이거!? 이거!? 이거!? 이!!!!!!”
점점 소리가 커지다 이내 짜증을 팍! 어휴 꼬락서니 하고는… 완전 저를 닮았습니다. 제 아들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최근 담박이는 저를 끌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이거!?’ 하다가 반응이 없으면 두다다닥 달려와서 제 바지끄덩이를 잡아 끕니다. 저는 담박이의 손에 끌려갑니다. 그걸로는 모자랐는지 담박이는 끌려온 저를 아래로 잡아당깁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쪼그려 앉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담박이의 표정이 한결 풀리는 듯합니다. 담박이는 다시 “이거!? 이거!? 이거!?’ 묻고, 저는 다시 담박이 손가락 끝에 닿는 물건의 이름을 말해줍니다.
하루는 담박이와 저의 술래잡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담박이가 저를 끌어다 앉히면 저는 몇 번 물건의 이름을 답해주고 담박이가 다른 곳을 보는 사이 도망갔습니다. 담박이는 다시 저를 끌어다 앉혔고, 저는 잠시 후 도망치기를 반복했습니다. 한 서너 번을 반복했을까요? 다른 곳을 보고 있던 담박이는 고개를 돌렸고, 이내 아빠가 또 사라졌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유유히 방문을 나서고 있는 제 뒤로 한숨 소리가 들렸습니다. “에휴~”
‘에휴? ……? 에휴?’
19개월 아기도 한숨을 쉬나요? 놀란 마음과 동시에 미안함 마음이 몰려오더라고요.
미안해. 아빠가 잘할게…
하루는 감기 기운에 너무 힘들어 소파에 누워 있었습니다. 반면 감기에 걸렸다가 컨디션을 되찾은 담박이는 팔팔하게 돌아다니며 “이거!? 이거!?” 묻기에 바빴습니다. 담박이는 소파 앞 쪽에 자리를 잡고 그림 카드를 펼쳐놓았습니다. 역시나 “이거!? 이거!? 이거!?” 묻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소파에 누워 졸려 꺼져가는 목소리로 “개구리…”, “자동차…”, “핸드폰…”이라 답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담박이는 소파에 누운 채로는 보이지 않는 위치에 놓인 그림 카드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누운 채 답했습니다.
“담박아… 그거는 가려져서 안 보여…”
“이거?!”
“응. 가려져서 안 보여.”
“이거?!”
“가려져서 알 수가 없네.”
“이거?!”
담박이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눈빛이었습니다. 이 카드 속 물건 이름이 ‘가려져서 안 보여’는 아니었는데, 아빠는 비슷한 말을 반복하고 있으니 의아하다는 눈빛이었습니다. 아빠가 장난치는 걸까? 아니면 물건의 이름이 바뀌었을까?
담박이는 자신이 보이는 건 아빠도 보일 거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담박이는 나와 하나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저, 담박이는 담박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어쩌면 담박이는 ‘아빠와 나는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습니다. 저는 늘 그렇듯 명확하게 선을 긋고 경계를 세우고 있었는데, 담박이는 아직 어떤 선과 경계도 없는 순수한 세계에 살고 있나 봅니다. 그 세계에서는 저도 담박이와 하나인가 봅니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니 제가 담박이를 감싸주고 있는 건지, 담박이가 저를 감싸주고 있는 건지 헷갈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