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미안해...
7월 4일 화요일 아침. 잠에서 깨어 침을 삼키니 목이 아팠다. 간밤에 선풍기 바람이 추웠나 보다. 1초도 채 지나기 전에 두통도 느껴졌다. 열이 나는 듯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감기에 걸렸다 하면 목이 부었고, 목이 부으면 자연스레 열이 올랐던 터라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21개월 아기, 나의 담박이가 깨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더 이상 컨디션이 무너지는 일만은 막으려 서둘러 옷을 벗고 화장실로 들어가 따뜻한 물을 맞았다. 한동안 몸을 데우니 목통증은 가시는 듯했으나 열 때문에 몽롱한 정신은 그대로였다. 꿈을 꾸는 듯, 이후부터는 습관이 나를 움직이는 듯했다.
최근 밑마음까지 감사함이 들어찼다. 남들과 비교하는 습관 때문이다. 최근 주변 사람들의 크고 작은 불행을 함께 겪었다. 때로는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때로는 덩달아 우울해질 만큼 큰 불행이었다. 잠깐이나마 그들의 불행을 함께 하고 나니 내게 주어진 것들 중 하찮은 건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온전히 내 힘으로 얻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내 삶 곳곳에 증여받은 흔적이 가득했다.
주변 사람들의 불행을 함께하며 또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불행의 씨앗은 대게 어렸을 때 심어졌다는 거다. 어렸을 때 받은 상처가 어른이 될 때까지 아물지 못했다. 오히려 깊어진 듯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학창 시절에 생긴 상처가 온전히 아물지는 못한 듯하다.
감사함 때문인지 기쁨으로 가득했다. 덩실덩실 구름 위에 있는 듯 가벼웠다.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하루하루가 좋았고 아이의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경이롭고 감동스러웠다. 딱, 아프기 전까지.
열이 오르니 가벼움은 몽롱함으로 바뀌었다. 강제로 구름 위에 유기되어 허우적허우적 움직였다. 똑같은 구름 위인데 주도권을 빼앗긴 듯했다. 아이는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고도 땀을 흘렸고, 나는 긴팔에 바람막이를 입고도 식은땀을 흘렸다. 아이는 어제와 같이 내 손을 잡아끌며 방안 이곳저곳을 누비고 싶어 했지만 내 손은 자꾸만 아이의 손에서 미끄러져 나왔다. 아이는 짜증을 내다 울었고, 나는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아이는 울기를 멈추고 혼자 장난감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천천히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방바닥이 차가웠다. 조금 열어놓은 창틈으로 들어오는 여름 바람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창문을 닫고 싶었지만 일어나기는 싫어 그냥 누워있었다. 하지만 금방 코가 막히고 머리가 더 먹먹해져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 아이는 일어나는 내가 반가웠는지 곧장 내 손을 잡아끌었고 내 손은 다시 미끄러져 나왔다. 아이는 짜증을 내며 울었고, 나는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따뜻한 곳을 찾아다니며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했고, 아이는 내 손을 잡았다 울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아빠가 없는 거보다는 나을 거야.’라는 주문을 외우며 아내가 퇴근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늦은 오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아내가 들어왔다. 아이는 늘 그렇듯 “엄마!” 대신 “약과!”를 외치며 엄마에게 달려갔고, 나는 소파에 좀비처럼 누워 눈을 감은 채 인사를 건넸다. 아내의 소리가 차가웠던 집안을 보드랍게 채웠다. 나를 걱정하는 아내의 목소리와 함께 손으로 약과를 까서 아이에게 건네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가방을 내려놓는 소리. 손을 씻는 소리. 부족했던 생기가 금세 가득 찼고 비로소 사람 사는 집이 된 듯했다.
아내는 저녁을 먹자마자 육아를 건네받았다. 육아에서 자유로워지자 배가 너무 고팠다. 아이 밥만 겨우 먹이고 누워있느라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탓이었다. 책상에 앉아 아내가 사다 준 죽을 서둘러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에 깜짝 놀랐다. 죽을 입에 넣는 순간 구역질이 올라왔다. 종종 체하기도 했던 터라 토할 듯한 메슥거리는 느낌은 익숙했지만 열감기와 체 증상이 동시에 오는 건 처음이었다. 당황스러워 손에 숟가락을 든 채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몇 번 더 죽을 먹었지만 먹을수록 토할 듯한 느낌이 거세져 결국 포기했다.
나는 어기적 어기적 옷을 벗었다. 식은땀을 가득 먹어 무거워진 옷이 툭툭 바닥에 떨어졌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화장실에 들어가 따뜻한 물을 맞는 일뿐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체온을 억지로 회복한 뒤 나는 잠자리에 누웠다. 아내에게 아이를 재운 뒤 요구르트 사다주기를 부탁하고는 정신을 잃듯 잠에 들었다.
이후로 내리 6일 동안 요구르트와 죽으로 연명했다. 지금 돌아보니 장염이었던 듯하다. 열감기와 급체는 많이 경험해 보았지만 장염은 처음 겪어보았고, 장염이 이렇게나 무서운 병인지 몰랐다. 육아를 하다 체력적으로 힘들 때마다 커피를 마신 게 탈이었던 듯하다. 하루에 마시는 커피가 점점 늘더니 그즈음에 커피를 하루 세 잔까지 늘렸다. 디카페인 커피였는데 마실 때는 행복했지만 이내 목이 마르고 속이 불편했다. 반면 끼니는 대충 때우는 식이었는데 그 업보가 쌓이고 쌓이다 장이 버티지 못했나 보다.
그 와중에 아이를 돌보는 일은 정신력으로 버텼다. 그래도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볼 때면 ‘존재가 아름답다’는 황홀함에 빠져 미소 짓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못난 아빠가 아픈 동안에도 아이는 하루하루 충실히 성장했고, 나는 아픈 와중에도 아빠로서 책무를 다한다는 뿌듯함마저 느꼈다.
다만, 어찌 비극은 운명을 피해 가지 않는단 말인가. 한 주가 흘러 내 건강이 괜찮아질 때쯤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생기가 넘치고 한 시도 가만히 있지 않던 아이가 축 늘어졌다. 유아차에 눕혀 거실을 뱅글뱅글 돌자 몇 시간이고 잠을 잤고, 기저귀에 남은 묽은 변에서 내 방귀와 닮은 냄새가 났다. 나는 그때까지도 체해서 그동안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증상을 보고서야 나의 장염이 아이에게 옮겨갔다는 걸 깨달았다. 장염에 걸려있는 동안 ‘후~후~’ 불어서 밥을 먹였으니!
글을 쓰는 지금, 다행히 아이도 장염에서 회복하고 있다. 잃었던 생기도 많이 되찾았고, 밥도 잘 먹는다. 못난 나는 ‘내가 아픈 거보다 네가 아픈 게 더 낫다.’라고 생각한다. ‘네가 아플 때는 돌보아줄 사람이 있으니까.’라는 변명으로... 이게 아빠와 엄마 사랑의 차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