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내면의 목소리 찾기
나는 퇴직 이후 행복하고 멋진 삶을 살 수 있을까?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다 보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식 농사를 모두 마친 외할아버지의 눈빛은 무망 했다. 때가 되면 일어나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때가 되면 자는, 때에 맞춰 사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나는 퇴직 이후 나의 모습을 보았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삼십 년이 넘는 시간, 나는 왜 한 번도 나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던 걸까? 나는 처음으로 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일찍 일어나고, 10쪽 독서하고, 꽂힌 문장 글쓰기를 하며 내린 답, 나는 꿈이 없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지 않았다. 늘 타인이 주어주는 목표, 타인의 목소리에 맞추어 살아왔다.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한 목표가 아니라 타인이 주어주는 목표에 맞추어 살았다. 결국 나의 꿈이 아닌 타인의 꿈을 위한 도구로 살아온 셈이다.
어설프지만 글을 쓰다 보니 비로소 내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설픈 꿈이 생겼다. 나처럼 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돕고 싶다. 그리고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마중 나가 그들의 목소리가 세상과 연결되도록 돕고 싶다.
2년 전쯤, 나는 백종원의 골목식당 티브이 프로그램을 즐겨보았다. 백종원이 장사가 잘 안 되는 골목 상권을 찾아가 음식점들의 문제를 확인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방송을 탄 음식점들은 유명세를 얻어 이후 문전성시를 이루었기에 식당 주인들에게 골목식당 출연은 일확천금의 기회, 로또 당첨과 같았다.
장어구이집이었던가? 음식과 장사 모두 기초가 부실했고, 게다가 사장님이 비양심적이었다. 거짓말들이 하나하나 들통나면서 장어구이집 사장님은 시청자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인터넷 게시판은 악플로 도배되었고, 가게 앞을 지나다니는 행인들은 쯧쯧거리는 소리와 비난 가득한 욕설을 뿌렸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나니! 장어구이집 사장님은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시청자들의 뭇매를 맞게 했으니 백종원도 마음이 불편했을 거다. 백종원은 장어구이집 사장님을 성심성의껏 기초부터 가르쳐주었다.
백종원의 솔루션 중 하나는 매일 새벽 수산시장에 다녀오라는 거였다. 생선 구이집을 하려면 주재료가 되는 생선을 보는 안목을 기르라는 의미였을까? 장어구이집 사장님은 백종원의 솔루션을 잘 따랐다. 매일 새벽 수산시장에 출근 도장을 찍고, 수산시장을 한 바퀴씩 둘러보며 생선 구경을 했다. 한 바퀴 둘러보며 생선 구경을 한다고 무슨 안목이 길러질까 싶었지만, 하여튼 장어구이집 사장님은 약속을 지켰다.
2주쯤 지났을까? 백종원이 다시 장어구이집을 찾았다. 그동안 장어구이집 사장님은 수산시장 출석을 비롯해 여러 숙제를 착실히 해냈다. 백종원이 숙제를 검사하기 전 대뜸 물었다. “받았어유?” 무엇을 받았다는 거지? 백종원이 무엇을 받으라고 했던가? 내가 보다가 놓친 부분이 있나? 아니면 편집되어 생략된 부분이 있나? 아니나 다를까 장어구이집 사장님도 무슨 질문인지 알겠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네. 꾸준히 수산시장에 갔더니 명함을 주시더라고요.”
수산시장 명함. 그것은 비로소 생선 구이집 사장으로 인정한다는 상징이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경험에 장어구이집 사장님의 표정에 낯선 뿌듯함이 퍼졌다. 이후 장어구이집 사장님은 진짜 생선 구이집 사장님이 되었다.
‘오전 온라인 독서모임 하고 있어요. 함께 하실래요?’
블로그에 댓글이 달렸다.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나를 좋게 보았을까? 독서모임을 같이 해보겠냐는 댓글이었다. 이 것은 수산시장 명함인가?! 나도 비로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건가? 낯선 일이 닥치자 두려우면서 동시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쩌면 독서 모임을 통해 나의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내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처럼, 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돕는 데 독서 모임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독서 모임에 대한 내공을 쌓기 위해 수산시장 명함을 선뜻 받아들였다.
토요일 아침 6시 50분, 대충 물세수를 하고 무난한 맨투맨 상의를 입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줌(화상 채팅)에 접속하였다. 먹먹한 아침 정신을 산뜻하게 깨우는 재즈 음악이 흘러나왔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줌에 접속해 있었다. 평일 아침에는 6시 30분에 다른 책으로 모임을 한다는데 참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박 실망이었다. 비관 안경을 세 겹은 쓰고 말았다. 스읍~ 후~ 심호흡을 했다. 너무 섣부른 판단은 내려놓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만두더라도 세 번은 참여하고 결정하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삼 주가 지났다.
결국 나는 그 독서 모임을 그만두었다. 내가 실망했던 부분을 정리하자면 우선 참여자가 너무 많았다. 모임 시간은 한 시간인데 참여자는 이십 명이 넘었다. 모든 사람이 책에 대한 소감을 나누지도 못하는 시간이었다. 따라서 서로의 생각에 질문하고 답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개인적으로 더 이야기를 듣고 싶은 분이 있었다. 그분의 고민은 진짜 자기 고민이었고, 그 고민에 몰입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질문을 할 수 없었다. 모임이 끝나고 채팅방에 그분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고 했더니, 다음 모임 때 들으라며 칼 차단을 당했다. 당연히 다음 모임 때도 그분의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모임 운영이 중구난방이었다. 내가 모임에 처음 참여하던 날 방장은 우리에게 과제를 주었다. 그런데 다음 모임 때 과제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두 번째 모임 때는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더니 남은 설명은 다음 모임 때 하겠다고 말했다. 당연히 방장은 다음 모임 때 남은 설명을 이어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방장을 포함한 몇 사람의 말하기 형식이 귀에 거슬렸다. 자신이 좋은 정보를 알려준다는 뉘앙스가 가득했다. 자신의 소감이나 의견을 나누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설명하는 강연자 같았다. 그리고 방장이 중년 여자분이었는데 중간중간 젊은 남자 회원을 귀엽다고 하는 둥 예쁘다고 하는 둥, 나름 칭찬(?)을 던졌다. 나는 그런 말도 무척 불쾌했는데 상대를 귀엽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은 상대를 귀여워할 수 있는 사람, 즉 보다 높은 지위의 사람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자꾸 오프라인 모임에 와보라고 제안했다. 드림 보드 만들기, 연탄 봉사 등 오프라인 모임에 자꾸 초대했다. 서로 더 이야기 나누고 싶으면 결국 오프라인으로 만나자는 거였다.
나는 방장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이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목적을 다음 세 가지로 추측했다. 하나는 일찍 일어나기다. 이른 시간에 독서모임을 운영함으로써 스스로를 일찍 일어나게끔 하는 거 같다. 둘째는 동기부여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독서모임으로 시작하는 부지런한 사람들, 그 곁에 있다면 늘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될 거 같다. 셋째는 (가장 핵심이라 생각하는데) 사람들을 오프라인으로 유도하는 거다.
독서 모임의 삼 분의 일 이상이 (어쩌면 절반 이상) 네트워크 마케팅을 하는 분들이었다. SNS를 활용하여 마케팅을 하는 분들인가 싶었는데, 검색해보니 ‘다단계’라는 단어가 눈에 꽂혔다. 나는 다단계를 업으로 하는 분들을 특별히 싫어하지도 부정적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단계’라는 단어가 눈에 꽂히고 나니 독서 모임을 왜 그렇게 운영하는지 단번에 이해되었다.
동전의 옆면에 서서 나의 첫 독서 모임 경험을 돌아보았다. 동전의 뒷면이라면 내가 원하는 독서 모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때문에 3주 동안 토요일 아침 시간을 낭비한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반면 동전의 앞면이라면 ‘독서 모임’의 존재를 알아차렸다는 거다. 덕분에 ‘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로서 ‘독서 모임’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독서 모임의 운영 방식이 무척 중요함을 깨달았다. 자기 목소리를 꺼낼 수 있는 독서 모임,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을 수 있는 독서 모임, 이에 적절한 운영 방식을 찾는 게 중요한 과제란 걸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