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 집에 올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뭐라고요? 무슨 뜻인지?”
병상에 있는 친구에게 보내는 책 한 권!!
절 잘모르는. 때문에 저도 잘 모르는. 그렇지만 알고 있는 친구. 혹 그런 친구 있으신가요. 저도 그런 친구가 하나 있답니다. 오늘 괜히 말을 걸었다가 그것도 눈치없이. “새벽마다 운동 나가는 것 같은데 좋아보이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답니다. 녀석은 지금 병원에 누워있더군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입원을 했으니. 가해자의 사과도 없다며 투덜대는 녀석을 위해. 직업상 해줘야 할 일이 있었죠. 그래서 책 한 권을 소개해주려구요. 침대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침대 위에서 읽을 만한 책입니다. 그것도 밤에 말이죠.
밤 열 시가 지나면 비닐봉투 하나를 든 남자가 슬립 가운을 입은 여자가 열어놓은 문으로 들어옵니다. 그 봉투에는 뭐가 들어있을까요? 칼, 채찍, 주사기??? 이 셋 중에 하나를 선택하시면 여러분의 취향을 금새 알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그 안에는 잠옷과 칫솔이 있습니다. 샤워는 이미 자기 집에서 끝낸 남자가 여자와 한 침대에서 잠을 자려고 준비한 물건들이죠. 묘해지죠. 이 대목에서.
그리고 이 연인아닌 연인은 누워서 잠이 들 때까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합니다. 암에 걸린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낸 남자와 큰 딸을 잃은 여자는 침대 위에서 겪었던 일을 서슴없이 풀어놓습니다.
이 둘이 풀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옷고름이지요. 몇 날 몇 일을 아니 몇 주를 동네에 소문이 다 퍼질 때까지. 밤마다 비닐봉투를 든 남자가 그녀의 침대로 스며듭니다. 창 밖으로 은은하게 비추는 불빛에 그녀의 하얀 어깨를 보는 것. 그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호사입니다.
(이거 상상해도 되나?) 진도가 나가지요. 딱 손까지. 그런데 남자는 미동조차 하지 않습니다. 사실 여자가 훨씬 적극적이지요. 남자는 상대적 아니 절대적으로 소심합니다. 오직 여자의 허락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남자. 한 밤, 이 온건한 치정극(로맨틱 드라마라고 쓸 걸 그랬나?)을 연출한 건 여자 쪽입니다.
“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 집에 올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뭐라고요? 무슨 뜻인지?”
“우리 둘 다 혼자 잖아요. 혼자 된 지도 넘 오래 됐어요. 난 외로워요. 당신도 그러지 않을까 싶고요.”
그는 그녀를 바라 보았다. 호기심과 경계심이 섞인 눈빛이었다.
“아무 말이 없군요. 내가 말문을 막아버린 건가요?”
그녀가 말했다.
“그런 것 같네요.”
“섹스 이야기가 아니에요. 밤을 견뎌내는 걸, 누군가와 함께 따뜻한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말하는 거예요. 나란히 누워 밤을 보내는 걸요. 밤이 가장 힘들잖아요. 그렇죠?”
우리는 이 멋진 70대 싱글 남녀를 내년에 직접 볼 수 있습니다. Netflex에서 제작하는 드라마입니다.
여자는 제인 폰다, 남자는 로버트 레드포드입니다.
긴 이야기가 필요없는 이 드라마의 원작 소설이 운좋게 제 손에 있습니다. 첫 페이지를 펼치자 마자 맨 뒷페이지를 보는 데 까지 2시간. 여운과 울림은 다 읽고도 계속되더군요. 하드보일드식에… 60년대 미국 중산층의 도덕성에… 짧은 단문과 쉬운 단어… 몇 몇 가지 칭찬을 하며 저에게 이책을 선물한 출판사 기획자의 눈을 보며, 사실 진의를 의심하긴 했지만. 이 책은 소개글이 어쩌면 필요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에디의 방에 돌아온 루이스는 창밖으로 손을 뻗어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만져보았다. 그리고 침대 위로 올라가 그녀의 부드러운 뺨에 자신의 젖은 손을 갖다 댔다.’
좀 오버를 하자면, 이런 문장들이 곳곳에 숨겨져있습니다. 어릴 적 엄마가 한 번에 다 먹을까봐 숨겨두었던 과자를 꺼내먹는 맛처럼. 은밀하고 달콤하고 정신을 잃게 만들더군요.
불의의(?) 사고로 병상에 누워있는 녀석을 위해서도 설레는 호르몬 서너개를 꺼내서 빨리 쾌유하길 빌며 책을 소개해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그 침대가 더 이상 로맨틱하지 않을 때, 다른 잡다한 기술보다 이 책을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가 나오기 전, 바로 지금 그 글 맛을 느껴보세요. 양념 갈비를 먹고 생 갈비를 먹는 건 좀 그렇잖아요. 우선 생갈비 먼저~~!!
오늘 소개하는 책은 전미 베스트셀러 <플레인송>의 저자, 켄트 하루프의 유작 소설 Our Souls at Night <밤에 우리 영혼은>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침실용 소설을. 맨 정신에 ㅜㅜ 볕 좋은 가을날. 노천카페에서 읽다가. 울다 웃다. 별 짓을 다하며. 강한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사실 소개도 안하려고 했었죠. 좋은 건 혼자 먹어야 하잖아요.
“원하는 걸 다 얻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대요? 혹시 있대도 극소수일 거예요. 언제나 마치 눈먼 사람들처럼 서로와 부딪치고 해묵은 생각들과 끔들과 엉뚱한 오해들을 행동으로 옮기며 사는 거예요.”
병상의 녀석을 생각하며. 너무 서운한 생각들과 오해에 갇히지 않길 바라며. 이 책을 보냅니다.
가을같은 소설 한 권, 침대 옆에 놔두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