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알아줄 거라고. 번거로워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과정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이 과정을 통해 선발되면 더더욱 나 자신의 쓸모를 증명할 수 있을 거라고. - 75P.
나는 전혀 잘나지 않았다. 똑똑하지도 않았다. 난 그걸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하거나 잘나지 않은 게 살면서 늘 걸림돌이 되어왔기 때문이었다.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내 가족밖에 없었다. - 236P.
나는 합평 때마다 깍두기처럼 앉아 있던 언니가 우리의 소설을 평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갑자기 목덜미가 차가워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 314P.
#연수 #장류진 #한국 #소설
3년 전에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으며, 일은 짜증이 나겠지만 취직하고 싶다고 말했던 한 졸업생이 있다. 그러다 취업에 성공했고, 비트코인을 하지도 않으면서 <달까지 가자>의 전자책 유통을 돕기도 했다. 그렇게, 퇴사자가 되어 <연수>를 읽게 됐다. <달까지 가자>를 읽으며, 퇴사 욕구가 들 때 한 번씩 볼 것 같다고 했는데, 결국 안 봐서 그런가.
출간 소식을 알리는 게시글을 보았을 때, 머리에 남은 게시글은 ‘펀펀 페스티벌’ 단편에 관한 내용이었다. 합숙 면접의 마지막이 장기자랑이라니, 정말 개 같은 상황이구나. 난 그래서 <연수>가 신입 ‘연수’인 줄 알았다. 아 그런데 웬걸 운전 연수였네. 정확히 안 읽었구나. 바보같이.
이전 작품들도 그랬지만 꽤 현실적이다. 실제로 있을법한 일들. 그 일들에서 오는 서러움과 기쁨, 다만 이번 작품집에 있던 내용은 대부분 신입, 혹은 새로운 시작과 관련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했다. 장롱면허를 다시 꺼내 보려는 이야기(연수), 신입 때와는 다른 입장이 되어버린 이야기(공모), 새로운 사람으로 인한 뻘짓(라이딩 크루), 모든 게 미숙했던 초짜 시절의 이야기들 등.
운전면허가 없고, 직원연수가 있는 큰 회사에 다녀 본 적이 없고, 아직 초짜에 가까운 내가 가장 재밌게 본 소설은 ‘라이딩 크루’와 ‘미라와 라라’였다. 독서모임에서 운영진을 하고 있기에, 자리에서 여미새, 남미새 이야기가 정말 종종 나오기도 하고, 별개로 한탄하는 사람들도 꽤 많이 보았기에. 물론 말이 그렇단 거지. 전반적으로 통통 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얼 탔던 모습들도 생각해보면서.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읽을 사람들에게 “잘하고 있어(연수 中)”라는 위로를 굳이 먼저 하고 싶지는 않다. 잘하고 있는 사람은 소설 속 말마따나 굳이 ‘소설 같은 거’ 읽으며 위로받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하지만 별개로 과거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의 차이를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취준 시절과 지금의 나에 대한 차이를 생각해보면서. 제발 바보 같은 뻘짓만 하지 말라고.
읽으면서 과거의 나에게 ‘그 직장 들어가지마!’라는 말보다는 너무 상처받진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처음일 땐 나 무겁게 다가오는데, 그걸 지금 읽으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전 직장에서 연수 수료했다고 생각해야 하나? 또 추억 보정 들어간다. 괜히 퇴사했겠나.
개인적인 감상으로 소설가의 소설 속 환경이 바뀔수록, 작가의 환경(나이)도 바뀐다고 생각한 건 김애란 작가 이후로 처음 와닿았던 것 같다. ‘공모’에서 김애란의 ‘비행운’이 생각나는 파트가 좀 있었어서. 다음 소설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실지가 궁금하다. 루틴대로 2년 내로 나오길 빌며.
한 가지 오해, 나는 장류진 작가가 현실적인 매체를 잘 잡기에, 단어는 금방금방 생각할 거라 착각했다. ‘아 그거!’ 하면서. 쓸 때도 재치 있게 통통. 하지만 강연에서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기 위한 노력에 대한 언급이 오히려 마음 깊숙이 남았다.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바보같이.
가장 큰 가지 의문은 강연 시간 7시로 잡은 건 누구의 의견이었을까다.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소설 강연을 이렇게 이르게 잡다니. 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