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읽기 두번째 시간으로, <아무튼, 서재>를 폈다. 저자는 목수다.
서재라니, 몇년째 원룸에 가까운 곳 - 학교 기숙사, 고시원, 군대 막사, 회사 기숙사, 오피스텔 - 에만 살아와서 방에 구역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책상 바로 옆에 침대가 있고, 주방과 책장, 옷장이 한 곳에 뒤죽박죽 섞여 있으니 도무지 책 읽기도 글쓰기도 집중할 수가 없다. 의지박약과 집중력 부족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지만 은근히 공간은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온전히 한 작업만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을텐데. 저자에게 그곳은 서재이고, 나도 마찬가지다.
서재 안에는 뭐가 있어야 할까. '서' 자가 책의 의미를 담고 있기에 내게는 읽을 책이 가장 중요하다. 헌데 책을 보관할 책장은, 뭐 그냥 책을 꽂거나 보관할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책만큼이나 책장도 강조한다. 한국의 애서가들조차 책에만 집중할 뿐 책장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책에 담긴 내용만큼 책이라는 형식을, 그리고 책을 담는 육체와도 같은 책장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허나 책장 부분을 읽어도 딱히 와닿지는 않는다. 책장은 서재에 들어갈 가구 중에 가장 최하순위일 수밖에 없다. 책장은 책이 몸을 누이는 곳이지만 사람인 내가 몸을 맡기는 것은 책상과 의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목수로서 버지니아 울프의 선언을 빌려 말하자면 이렇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한 가지 의견, 즉 인간이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책상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책상 파트를 읽고서는 내 책상을 봤다. 통일성도 없고 무언가 뺴곡히 쌓여 있지만 내용은 부실하고 빈약하다. 그러다보니 뭔가 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서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이 드물다. 그저 공간만 차지하는 곳이 된 것이다. 필요없는 물건을 치우고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말짱 도루묵이다. 더 넓은 책상을 사야 한다는 황당한 결론에 이르렀지만 여러 물건들을 박아둔 내 방에 큰 책상은 어불성설이다. 난 이 부분에서 눈물을 머금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의자. 기숙사에서 나와 오피스텔로 나온 날, 가장 먼저 고른 가구는 의자이고, 가장 비싸게 준 가구도 의자였다. 의자의 중요성은 누구든 잘 알고 있다. 방에 들어와서 서 있거나 잠을 잘 때가 아니면 결국 엉덩이를 붙이고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 의자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든 게임을 하든 편안해야 하는데, 의자는 이에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의자에 선뜻 큰 돈을 투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가격이 낮은 물건도 얼마든지 있지만 품질이 좋을수록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지 체어를 권한다. 검색해보니 일반 의자보다 조금 낮고 다리를 올려 편안히 앉을 수 있는 제품도 있다. 추천하는 제품을 검색해보니 오마이갓 가격이 100 단위네... 게다가 이지체어는 지금 책상과 높이도 맞지 않아 함께 바꿔야 한다는 건데, 이렇게 되면 방 안 가구의 배치 또한 모두 변경해야 한다. 이렇게 욕심을 부리다보면 더 넓은 집을 원하게 되고 대출을 받고 이자를 내고 월급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렇게 나는 망하겠지...
하지만 내가 진짜 필요하다면, 그리고 내 주관과 취향의 깊이가 있다면 돈이 더 들더라도 넓은 공간과 좋은 가구를 마련하겠다. 럭셔리와 사치는 다르다. 럭셔리는 돈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 취향에 현명하게 돈을 사용할 줄 아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전에 돈이 많아야 한다고는, 바로 앞에서도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안될 거야...
어째 책을 읽다보니까 돈을 쓰고 싶고, 이케아가 가고 싶고, 럭셔리보다 사치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일기 비슷한 독서노트를 쓰고나니 묘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