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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L Oct 23. 2019

출판사 편집자란 직업에 대한 담론① 편집자란?

과거에 한겨레 출판편집학교를 다니던 시절, 블로그에 2개의 글을 올렸었다. 처음 강의를 들을 때 간단한 소회를 밝힌 글(https://blog.naver.com/jubilant8627/220907731370)과 전체 강의 일정을 끝마치고 느낀 소감을 담은 글(https://blog.naver.com/jubilant8627/220944747541)이었다. 편집자라는 직업이 그다지 정보가 많지 않기 때문인지 이 글로 블로그에 유입된 분들이 참 많은 질문을 남겨주셨다. 비밀댓글이나 쪽지 등으로 관련 정보를 묻기도 했다. 그들에게 나름대로 답변을 하면서 '언젠가는 지금 답변한 정보들을 정리해봐야지.'라고 생각했었다. 나 역시 그런 정보를 갈구하던 때가 있었으니까.


미리 이야기하지만 나는 햇병아리이고, 업계 선배들 입장에서는 코웃음 칠 수 있는 주제일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녀석이 무슨 '편집자'를 논하느냐고.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직업으로서의 편집자는 직업인으로서 갖춰야 할 철학이나 마음가짐, 업무 팁 등이 아니다. 정말 기본적인, 기본적이지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정보들을 조촐하게 정리했을 따름이다. 연차가 적거나 신입이거나 지망생인 경우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잔뼈가 굵다면(애초에 그렇다면 이런 제목의 글이 끌리지도 않았겠지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편집자란?', '취업은?' 2편으로 나눠서 소소하게 이야기해보려 한다.




 




편집자, 출판 편집자, 에디터, 북에디터, 출판사 직원... 부르는 말은 많지만 통상 편집자라 불리는 직업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보면 위와 같은 글을 볼 수 있다. 작가가 쓴 원고의 내용을 검토하고, 고치고, 디자인을 검토하고 어쩌고저쩌고... 대충 무슨 일인지 읽어보면 감이 올 것이다. 사실 직업에 대한 정의보다도 제일 중요한 건 '어떤 출판사'에서 일하는지다. 출판사마다 업무 프로세스가 다르고, 체계가 다르고, 주어지는 일의 범위가 다르고, 원고를 다룰 때 관련된 업무 권한이 어디까지인지도 다르다.


예를 들어 잡지를 출간하는 출판사라면 주간, 월간 등 마감 시간이 일반 출판사보다는 짦은 편이고, 어떠한 이유로든 데드라인이 지켜져야 하므로 문제가 생긴다면 야근을 하게 될 것이다(굳이 문제가 없어도 하는 곳은 많지만). 잡지사의 직원은 일반적인 편집자의 업무와는 조금 다른 일을 한다. 기자처럼 취재를 나갈 때도 많아 외근도 자주 나가게 될 것이다. 학습서를 주로 출간하는 출판사는 또 어떤가? 그들의 저자는 주로 교사나 강사다. 문학이나 실용서, 경제경영서 작가들과 다른 결을 가진 저자군이다. 또 윤문보다는 오탈자와 내용상의 오류 체크가 주된 업무일 것이다. 장르문학 출판사도 일반 출판사와는 좀 다르다. 작가를 관리하고, 연재처에 글을 올리는 등 그들 역시 그들만의 색깔이 있다. 이처럼 출판사의 성격에 따라 편집자로서의 역할이 달라진다.


나는 경제경영서를 주로 출간하는 종합 출판사에 다니므로, 교재나 잡지 쪽 영역은 잘 몰라 이쪽 분야의 케이스를 주로 이야기할 예정이다. 소설과 시 중심의 문학 출판사 역시 차치하겠다. 사실 '편집자란' 키워드에 물음표를 붙인 이유는 드라마든, 영화든, 책이든 대략 무슨 일을 하는지 보고 듣기는 했는데,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다는 질문을 너무 많이 들어서다. 최근에는 독립출판이 늘어나고 있고, 1인 출판 등 혼자 쓰고, 편집하고, 책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중 시장에서 빛을 본 케이스만을 보면 '편집자가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갖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를 펀드에 비유하고 싶다. MBA를 나온 수재가 펀드매니저로 붙어 있는 펀드와 그저 지수만 추종하는 인덱스펀드의 수익률을 놓고 비교했을 때, 만일 후자가 더 뛰어나다면 펀드매니저 직업 자체가 필요한지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경우는 드물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펀드매니저는 굳건히 지위를 지키고 있고, 오늘도 열심히 고객들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편집자 역시 마찬가지로, 그들이 없이 성공한 책도 있지만 인과관계를 놓고 봤을 때, "편집자 없이도 성공한 책이 있다.", "그러니 편집자는 없어도 된다."라는 흐름은 반박할 힘도 나지 않을 만큼 비약일 뿐이다.


편집자의 업무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원고 검토(투고 원고를 검토해 출간 여부를 결정)

원고가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지만 대개 투고 원고가 그대로 출간될 수 있을 만큼 퀄리티가 높지는 않다. 심할 경우 콘셉트만 남기고 전부 날린 뒤 다시 쓰게 되기도 한다. 물론 사전에 조율하므로, 작가가 원치 않거나 자기 글을 손대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면 출간 계약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2. 기획 도서 진행(기획안을 예비 저자에게 전달해 집필)

편집자가 콘셉트와 방향 등을 기획해 어울릴 만한 예비 저자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우선은 편집회의에서 '기획안' 자체가 통과되어야 추진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기도 한다. '기획'은 연차나 경험이 좀 있을 때 맡기는 경우가 많아 아직 입사 초기나, 지망생이라면 당장은 깊게 고민해보지 않아도 된다. 내 경우도 처음 기획한 책이 출간되기까지 1년이 넘게 걸렸다(물론 집필 시간을 감안해야 하지만).


3. 외서

에이전시를 통해 판권을 사고, 저자 대신 역자와 일하게 된다. 과정에 대해서는 알지만 우리 출판사는 외서가 거의 없어 이 부분은 생략하겠다.


4. 제목, 카피, 추천사, 보도자료, 광고 문구 작성 등

뭉뚱그려 표현했지만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가끔 이러한 업무에 머리를 싸맬 때면 스스로가 카피라이터인지 편집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만큼 중요하고, 또 창의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아무리 책이 예뻐도 제목이 이상하거나, 제목이 좋아도 카피나 광고 문구가 이상하거나, 이 책을 홍보해줄 사람들에게 전달될 보도자료가 시원찮다면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결과란 판매량을 말한다.



위의 4가지로 정리했지만, 사실 '정리'라고 하기 민망할 만큼 일부분이다. 큰 흐름만 다루었을 뿐 회사에 따라 좀 더 세세하게 나뉘거나, 추가될 것이다. 어떤 직업이라고 그렇지 않은 건 아니지만 편집자는 특히 관계가 중요한 직업이다. 직접적으로는 '작가-편집자', '디자이너-편집자', '마케터-편집자'의 관계, 회사 안에서는 '직장 동료-편집자', '대표-편집자'의 관계, 밖으로는 '독자-편집자', 간접적으로는 '서점 MD-편집자'의 관계까지. 다양한 관계 속에서 업무가 이뤄진다. 그러다보니 책이 좋아서, 책 속에 파묻혀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입사한 문학도 또는 책벌레 또는 애독가에게 참으로 어려운 과제들이 끊임없이 밀려온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까지 하게 될 때가 많다. 때때로 기획안을 들고 작가를 만날 때는 마케터나 영업자가 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저자 강연회 등 각종 이벤트에 참석하거나 일을 거들어야 할 때도 있다.


나처럼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을 가졌다면 여러모로 힘들 수 있다. 원고와 책을 매개로 저자(또는 역자), 감수자, 디자이너, 마케터 사이에 끼어 새우등이 터질지 모른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관계 속에서 일하기 때문에 일이 즐거워질 수도 있다. 여러 저자를 만나면서 인생의 멘토를 얻을 수도 있고, 평소 만나볼 수 없는 사람들과도 인연을 이어갈 수 있다는 건 참 매력적인 부분이다. 다만 책을 좋아해서 출판사에 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만들면서 그런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는 건 감점 요소다. 많이 팔린다고 좋은 책은 아니지만, 피고용자의 입장에서 본인의 책이 시장에서 반응을 얻지 못하면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애정을 쏟아 직접 기획하고 죽이 잘 맞는 저자와 힘을 합쳐 만든 책이라면 더 우울해질 것이다. 나중에는 개인적으로 읽을 책을 고를 때조차 잘 팔린 책인지, 아닌지부터 확인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말 좋아하는 책' 중에는 베스트셀러가 아닌 것들도 많이 있었다.


두서없이 이야기했지만 결론은 편집자는 분명히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것이다. 힘들 때도 많지만 처음 기획 단계에서 일이 착착 진행되고, 결과물이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으면 이보다 만족스러울 수 없다. 이 일이 재밌는 건 볼펜 한 자루 못 만드는 문과생인 내가 책이라는 유형의 무언가를 만들어냈을 때의 뿌듯함 때문이다. 그러니 만일 아직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편집자란 직업도 고려해보기 바란다. 다음 편 '취업은?'에서는 취업 준비 등에 관한 이야기와 업계 처우,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 외의 다른 곳에 취직한 편집자들의 사례를 함께 소개하겠다. 나름 객관적으로 쓰겠다 마음 먹었지만 몇몇 사례와 좁은 견문이 전부이므로, 내가 업계 전체의 상황을 대변하지는 못한다. 이번 글 역시 누군가에게는 너무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냥 이런 이야기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감안해주기 바란다. 만일 자신의 다른 경험이나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이야기해주었으면 한다. 댓글로든, 쪽지로든, 메일로든. 이 글의 제목이 담론(discourse)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블로그: https://blog.naver.com/jubilant8627/22154391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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