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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L Jul 31. 2019

모순된 욕망과 한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사랑에 관한 철학적 담론



책 제목: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저자: 밀란 쿤데라

출판사: 민음사

출간일: 2009년 12월 24일

분야: 소설

가격: 11,000원

페이지 수: 484쪽






미리 보는 장단점

장점: 난해하지만 심도 깊은 인간 실존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성찰.

단점: 문화의 차이겠지만, 이해하기 힘든 개방적인 성문화. 불쾌할 정도로 반복되는 자기연민.






읽는 동안 참 어려움이 많았다. 대여섯 번은 읽다 포기했던 작품이다. 일단 인물들의 개방적인 마인드(섹스, 불륜 등) 때문에 몰입하기가 힘들었고, 화자의 개입과 뒤죽박죽 섞인 시간 때문에 어려웠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노벨 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언급되는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이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이 그 배경이다. <프라하의 봄>이라는 이름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네 남녀가 얽히고설키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중간중간 화자가 끼어들어 해설을 덧붙여 난해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인물들의 이야기는 어려울 것이 없는데 역사적 배경(소련군, 괴뢰정권, 망명 등)이 더해지고, 시간 축이 하나의 흐름대로 이어지지 않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봐야 한다. 화자가 바뀌는 와중에 시간까지 바뀌니 몰입해서 보지 않으면 놓치는 부분이 생긴다(꿈 속 광경마저 이야기 중간에 큰 비중을 두고 끼어든다).


주요 인물은 성 중독자이자 의사인 토마시, 사진작가이자 그의 아내인 테레자, 토마시의 불륜녀이자 예술가인 사비나, 그리고 사비나의 또 다른 연인 프란츠다. 이야기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언급하며 시작된다. 똑같은 일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사상을 무거움과 가벼움에 빗대어 설명하는데, 이 무거움과 가벼움의 모순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다. 삶과 죽음 역시 가벼움과 무거움의 측면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어떤 이(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다)의 죽음은 충격적일 정도로 무겁게 가슴을 짓누른 반면 어떤 이의 죽음은 허무하고 불쾌했다. 어찌됐든 주인공들을 통해 사랑의 무거움과 가벼움, 불필요하고 소모적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짧은 사랑과 불행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영원한 사랑 이야기 등이 이어진다.


토마스는 무거움과 가벼움이 공존하는, 어쩌면 가장 주인공에 걸맞는 인물이다. 테레사와 사비나, 그리고 다수의 여자와 끊임없이 사랑을 하며 살아간다. 반면 테레사(토마스는 그녀를 강에 버려진, 자신에게 떠밀려온 여자라 서술한다)는 토마스만을 사랑하며 지고지순한 모습을 보이는데, 다른 여자를 만나는 그의 가치관과 당연히 상충하게 된다. 갈등과 반목이 거듭되는 와중에 인간의 존재가 참을 수 없이 가볍다는 걸 깨닫고, 15년을 함께 한 뒤 한 번뿐인 삶을 동시에 마감한다. '카레닌의 미소'에서 알 수 있듯이 애초에 한 번뿐인 삶이기에, 하나뿐인 나 자신이기에, 하나뿐인 상대이기에 가볍기만 할 수는 없다. 자유분방한 예술가 사비나와 프란츠 역시 상황만 다를 뿐, 개인적으로는 둘 다 불쾌할 정도로 가볍다. 그리고 또한 무겁다. 프란츠의 마지막 이야기는 특히나 찝찝함의 정점. 세계적인 문학이고, 많은 사랑을 받는 글이지만 나에게는 참 지독하게 느껴진다. 나중에, 정말 나중에는 다시 한번 읽어볼지 모르지만 당분간은 손을 댈 것 같지 않다.





라틴어에서 파생된 동정이란 단어는 타인의 고통을 차마 차가운 심장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 한 여인에게 연민을 느낀다는 것은 그녀보다 넉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몸을 낮춰 그녀의 높이까지 내려간다는 것을 뜻한다. (...) 누군가를 동정삼아 사랑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_28쪽



인간의 삶은 마치 악보처럼 구성된다. 미적 감각에 의해 인도된 인간은 우연한 사건(베토벤의 음악, 역에서의 죽음)을 인생의 악보에 각인될 하나의 테마로 변형시킨다. (...) 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조차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곡한다. _63쪽



한 번은 세어질 수 없다. 한 번이란 영원이 아니다, 란 뜻이다. 유럽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보헤미아의 역사도 두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보헤미아의 역사와 유럽의 역사는 인류의 치명적 미체험이 그려낸 두 개의 초벌그림이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_257쪽



블로그: https://blog.naver.com/jubilant8627/2214679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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