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동행자 이야기 1 - 하준이 엄마 이야기
첫 임신…… 그때의 설렘이 기억난다. 우리 ‘튼튼이’는 남자아이일까? 여자아이일까? 정말 많이 궁금했다. 물론 아들이든 딸이든 다 좋지만, 그냥 신기함을 증명받고 싶은 느낌이었다. 진료할 때마다 ‘딸이에요? 아들이에요?’란 말이 입에 맴돌지만, 선뜻 말하지 못했다. 의사 선생님은 그 마음을 어찌 아셨을까? 진료실을 나가는 우리 부부에게,
“파란 옷이 잘 어울리겠네요.”
라며 혼잣말을 하셨다. 그때, 그 감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마치 백수 시절에 읽던 『명탐정 코난』의 범인을 찾은 후 혼자 만족해하던 느낌이랄까? 아무튼,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우리 부부는 눈이 마주쳤고 나의 눈빛 신호를 이해한 남편이 당연하다는 듯 백화점 방향으로 출발했다. 그동안 눈 여겨둔 옷과 신발들을 샀다. 어느 엄마나 그렇듯 나도 아기용품을 사기 위해 주말 쇼핑만 기다렸다. 당연히 육아 선배들의 글들을 보면서 ‘국민○○○’이라는 것들을 샀다. 아기 머리가 흔들리면 뇌에 안 좋다길래 당연히 유모차는 비싼 것을 샀다. 손수건도 50여 장을 삶고 젖병도 소독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구수한 청국장을 먹으면서도 클래식 듣기는 잊지 않았다. 태교 여행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매 순간 새로운 가족을 상상해 보고 ‘튼튼이’의 미래도 그려보며 행복을 만끽했다. 그렇게 열 달 동안 함께 자라온 ‘튼튼이’가 태어났다. 열심히 세상을 향해 나와준 내 ‘튼튼이’가 너무 기특하고 대견했다.
그렇게 우리는 ‘튼튼이’에게 ‘하준’이라는 멋진 이름을 지어주었다. 하준이는 우리 부부의 사랑을 양껏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생후 24개월쯤, 하준이가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다툼이 잦아졌다. 원래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안 되면 싸우는 존재 아니겠는가? 몇 번 사과하면서 모든 아이가 다 그러려니 하며 지내왔다. 그런데 사과하는 횟수가 점점 많아졌고 결국 원장선생님과 상담을 하게 되었다. 원장선생님은,
“어머님, 우리 예쁜 하준이가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 보여요.”
사실 나도 어느 정도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조금 늦게 발달하는 중이라 생각하고 싶었나 보다. 장애와 관련해서 검색해 볼수록 우리 하준이가 약간 늦은 발달 정도는 아닐 것 같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결국, 남편 몰래 병원에 가서 장애 진단 검사를 했다. 결과를 받기 전까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장애가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아니야 남편도 어릴 때 말이 늦게 트였다고 했으니 하준이도 조금 느린 아이겠지. 그런데 혹시…… 많이 느린 건가?’
이런 생각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떠올라서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그렇게 오지 않길 바라던 검사 결과 날이 왔다. 나는 밥도 못 먹고 병원에 갔다. 예상한 대로 아이의 발달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복잡한 감정이 순서도 없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 장애…… 말로만 듣던 장애라는 단어가 나에게도 찾아오는구나…… 그런데…… 정말 그런데…… 왜 나야? 내가 뭘 잘못했어? 나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었는데…… 그 꿈이 너무 과한 거였나? 엄마…… 나 어떻게 해야 할까?’
눈물이 새어 나왔다. 오늘따라 돌아가신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하준이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잠시 눈길을 주더니 조용히 한마디 했다.
“엄마……”
내가 너무 슬퍼 보였나 보다.
“왜 하준아?”
“밥…… 줘……”
“아…… 그래…… 하준아…… 뭐 먹고 싶어?”
‘내가 언젠간 너에게 위로를 받고 말 거야.’